'불꽃 하이킥' 미르코 크로캅(38·크로아티아)과 '플라잉 젠틀맨' 레미 본야스키(36·네덜란드)는 국내 팬들 사이에서 유독 인기가 높다.
돋보이는 외모에 뛰어난 패션 감각, 더불어 출중한 기량까지 갖춰 여성팬들도 적지 않다. 국내에 격투기가 인기 스포츠로 자리한 배경에도 이들의 역할이 컸다.
물론 맹위를 떨친 무대는 다르다. 크로캅은 K-1 파이터로도 유명하지만 종합격투기 프라이드를 통해 인기를 증폭시켰다. 날렵한 스텝을 바탕으로 두꺼운 허벅지가 뿜는 하이킥은 팬들의 ‘판타지 로망’을 충족시켰다. 남성들에게는 닮고 싶은 대상으로, 여성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으로 깊이 박혔다.
크로캅이 수컷의 냄새를 강하게 풍기는 타입이었다면 본야스키는 별명처럼 샤프하고 지적인 분위기로 팬들에게 어필했다. 은행원 출신이라는 커리어에서도 알 수 있듯, 정장을 차려입고 안경을 쓰고 있는 그의 모습은 엘리트 신사의 풍모가 풍긴다.
균형 잡힌 팔등신의 그가 링에 올라서면 또 다른 매력을 온몸으로 풍긴다. 군살하나 없는 탄력적인 근육질 몸매를 바탕으로 한 마리 흑표범이 돼 거구의 상대들을 거침없이 때려눕힌 것. 선 수비-후 공격 스타일로 인해 그를 평가 절하하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 K-1 월드그랑프리 3회 우승은 결코 비범한 기량 없이는 불가능한 위업이다.
크로캅과 본야스키는 얼마 전까지 은퇴를 선언한 상태였다. 크로캅은 노쇠화로 인해 패가 늘어나면서 MMA 무대를 떠났고, 본야스키는 눈 부상으로 인해 경기를 치르기 어려웠다. 하지만 격투에 대한 이들의 열정은 식지 않았고 결국 차례로 복귀를 선언했다. 입식무대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지만 크로캅은 K-1, 본야스키는 '글로리(Glory)'에서 활동하게 됐다.
본야스키는 지난 7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있었던 '글로리(Glory) 2' 대회에서 앤더슨 '브래독' 실바를 판정으로 꺾고 복귀전을 치렀고, 크로캅 역시 16일 있었던 'K-1 라이징 2012 - 월드그랑프리 파이널 16'에 출전해 랜디 블레이크를 꺾는 등 연승하고 있다.
같은 무대에서 뛰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없겠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세계 입식격투시장은 다수의 스타들을 고르게 포용할 메이저 단체가 없다. 어쨌거나 팬들 입장에서는 크로캅-본야스키를 계속해서 볼 수 있다는 자체로 흐뭇하다.
불꽃 하이킥 VS 플라잉 잰틀맨
크로캅과 본야스키는 과거 K-1 무대에서 한 차례 격돌한 적이 있었다. 아직도 회자되고 있는 '2002 K-1 후쿠오카'에서의 둘의 대결로 들어가 본다.
둘은 난타전을 즐기지 않으면서도 강력한 화력을 갖춰 기회가 오면 무섭게 몰아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스나이퍼(sniper)' 스타일의 크로캅은 거리를 유지한 상태에서 상대 공격을 피하다가 빈틈이 보이면 날카롭게 공격을 꽂아 넣는다. 반면 본야스키는 회피능력도 좋지만 어지간한 공격은 두꺼운 가드로 막아내면서 상대의 공세가 주춤할 때 맹공을 퍼붓는 '슬로우 스타터(Slow Starter)'다.
베테랑과 신예의 차이일까. 당시 대결에서는 자신감과 여유가 느껴지는 크로캅과 달리 본야스키는 왠지 다소 위축된 인상이었다. 매섭게 쏘아보며 눈싸움을 감행하는 크로캅에 비해 본야스키는 슬쩍 눈을 깔며 시선을 피했다.
그러한 기의 우열은 경기가 시작되자 바로 드러났다. 전형적인 아웃파이팅을 구사하는 선수답지 않게 크로캅은 공이 울리기 무섭게 성큼성큼 전진 스텝을 밟으며 본야스키를 압박했다.
선제공격은 가볍게 주변을 돌던 본야스키가 먼저 시도했다. 펀치와 로우킥으로 이어지는 선공으로 본야스키가 포문을 열어봤지만 크로캅은 충격을 받지 않은 듯 오히려 더욱 강한 콤비네이션으로 맞불을 놓아버렸다. 본야스키의 공격은 다소 가벼운 느낌마저 주고 있었다.
둘은 번갈아 가며 펀치와 발차기를 시도했다. 대부분 상대 가드에 막혀 큰 데미지를 주지 못했지만 힘이 실린 정도에서는 역시 크로캅 쪽이 우세했다. 이에 본야스키는 점점 더 공격적으로 변모, 1분여가 지날 무렵 조금씩 크로캅을 몰아가기도 했다. 조금씩 몸이 풀리는 듯 특유의 탄력 넘치는 발차기도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다.
그런 본야스키를 상대로 크로캅이 새롭게 뽑아든 무기는 다름 아닌 접근전에서의 강력한 펀치 연타. 발차기를 막아내며 거리를 좁힌 크로캅의 펀치가 송곳처럼 본야스키의 안면과 복부에 꽂혔고, 펀치 공방전이 이어질수록 분위기는 점차 한쪽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복싱싸움에서 절대적인 우세를 점한 크로캅은 더 이상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좀처럼 난타전을 즐기지 않는 그였음에도 쉴 새 없이 본야스키의 가드 위를 두들겨댔는데 일부는 안쪽으로 들어가며 계속해서 충격을 가하고 있었다. 펀치가 통하자 하이킥과 미들킥도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기세에서 밀려서는 안 되겠다고 느낀 듯 본야스키는 2라운드가 시작하기 무섭게 니킥 공격을 감행, 더욱 적극적으로 공세를 펴기 시작한다. 하지만 크로캅의 자신감은 이미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1라운드부터 이어진 펀치연타는 잔뜩 달궈져 있었다.
게다가 자신보다 장신인 본야스키의 접근을 앞차기로 밀어내며 거리싸움에서도 우위를 점하려 했고, 원거리와 근거리에서 다양한 공격을 내뿜었다. 어쩌다 본야스키가 클린치라도 시도하면 거칠게 바닥으로 내던져버리며 분위기가 반전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
결국 본야스키는 가드를 두껍게 하는 것 외에는 다른 해법을 찾지 못했다. 주도권을 잡은 크로캅은 대놓고 펀치연타를 쏟아냈다. 물론 본야스키도 일방적으로 당한 것만은 아니었다. 중간 중간 기습적으로 니킥 공격을 감행하며 방심한 크로캅의 허점을 노렸지만 아쉽게도 정확도가 떨어졌다. 오히려 안면과 복부에 쏟아지는 공격이 더 많아지고 있었다. 결국, 견디지 못한 본야스키가 첫 번째 다운을 당했다. 급히 일어났지만 크로캅의 식을 줄 모르는 펀치세례는 더욱 거칠게 다가왔다.
본야스키는 자신도 모르게 코너로 밀려갔고 이후부터는 양 훅과 어퍼컷 등 크로캅의 일방적인 펀치만이 링을 달궜다. 급기야 심판은 경기를 중단시켰고, 크로캅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가볍게 손을 들어올렸다. 레이 세포 등을 물리치며 겁 없는 상승세를 타고 있던 본야스키가 기존 강호의 파워를 절감한 순간이었다.
-윈드윙-
Commen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