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시 사십분이 좀 넘어서 투표소를 갔는데 벌써 앞에 한 열 명쯤 되는 사람이 줄서있는 걸 보고 대단하다 생각했는데, 여섯시 삼 분쯤에 투표 시작하니 뒤를 돌아봤는데 투표소였던 초등학교 입구까지 길게 늘어선 줄이...
투표소 준비는 미흡해서 드나드는 문은 양쪽으로 열리는 유리문 하나 그마저도 반 칸.
학교측 협조를 못 받았는지 여섯 칸 유리문 중 네 칸은 자전거자물쇠로 잠겨있고 한 칸은 보안키로 잠겨있어서 혼잡해질 오후엔 어쩌려나 싶었네요.
그다음엔 투표용지.
뭔놈에 정당이 이따위로 많은지, 이름은 왜 그리도 다 비슷한지.
미리 알고 간 게 아니면 비례정당투표는 무효표가 참 많이 나오지 않을까 싶더라구요.
드나드는 문이 한 칸이라 들고 나는 사람들 눈치싸움에, 오늘은 그래도 오 분 거리 투표소인데다 외부활동이 없을 예정이라 마스크 까는게 아쉬워서 전에 입원했을 때 몇개 얻어뒀던 일반마스크를 꼈는데, 이게 참... 그 얇음에서 오는 불안함이란 게 있더라구요.
저녁이라기엔 이른 오후쯤 되니 대구는 뭐, 이미 결과가 나왔었습니다.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또 한편으론 꽤 화가 나더라구요.
제 선거구 후보는 한쪽은 재선에 경제관료출신에 논란도 제법 있었던 그러니까 정치인이라 할법한 사람이었는데 대경과 종편에서 요즘 잘 나가는 정권심판론까지 들고나왔고, 한쪽은 지역사회에서 꽤 중요한 고향도 다른 곳, 거기다 앞서 두 차례 국회의원 및 지방선거에 여기저기 나와서 다 낙선, 특이사항이라곤 죄 경북대학교 학연에 기대는 연혁 몇 줄.
정당을 떼고 보면 둘은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정당을 붙이기까지 하면...
얇디 얇은 선거 책자를 흉보는 건 아니나, 현실성은 둘째치고서라도 준비한 성의가 있는 공약 한 줄 보이지 않는 후보를 내보내는 건 애초에 전력투구할 생각조차 없는 게 아닌가 싶었고, 심지어 많고 많은 선거구 중 그나마 이유랍시고 내세울 게 있는 이쪽 선거구를 선택한 것처럼 하는 말은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솔직히 여기서 밥벌어먹고 사는 사람이라면 누굴 투표해야 더 많은 이익을 가져올지 너무나도 뻔한 후보자였거든요.
새삼 인터넷과 현실의 차이는 컸습니다.
중앙정치와 지방정치의 차이도 컸구요.
또, 극단적인 득표율이 가져오게 되는 무성의함과, 그로 인해 소외될 수밖에 없는 지역에서 무조건적인 변화가 가능할지도 의문이 들었습니다.
선택의 여지를 주지도 않고서 욕하는게 맞는 건가 싶기도 했고.
그래도 전체적인 선거 결과는 걱정과는 달라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년의 그 격렬했던 분노는 온데간데없고, 언론부터 웹사이트까지 요즘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 싶었었거든요.
정치는, 투표는 뛰어나고 잘할 사람이라 기대하고 뽑는 게 아니라, 똥밭에서 개똥이냐 사람똥이냐 고르는 거라고 말하곤 합니다.
똥은 똥이지 뭐가 더 깨끗하고 뭐가 더 더러운지 구분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각자의 기준이 있겠죠.
근데 이번 투표는 좀 많이 불편했습니다.
후보의 객관적으로 드러난 능력의 격차가 너무도 컸고, 그 상황에서 투표해라. 강권하는 게 맞는 건가 하는 의문을 지울 수가 없었거든요.
결국 그 득표율에 유의미한 차이를 만들 수 없는 한 표일지언정, 어차피 당선자가 정해져있다고 확신하면서도 투표장을 찾았습니다만 화도 나고 한심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자존심도 챙기고, 실리는 남들이 챙겨줄 거고.
개표 현황이라고 지도가 올라온 걸 보면 또 빨갛고 파랍니다.
노랗고 빨갈 때보다 더 보기싫은 건 제 마음이 심란해서일까요.
정치적 논란에 앞서, 정치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유권자들은 대체로 후보자의 연혁에서 믿음을 주기 마련입니다.
한데 이 저울추가 너무도 심각하게 기울어있다면, 이 투표는 요식행위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그로 인해 부당한 비난이 또 한 차례 시끌벅적할 걸 생각하면 또 괜히 답답해집니다.
채널A가 급부상하는 뉴스 채널이라지요.
어르신들에게 열광적인 인기를 끌었던 미스터트롯, 재방송 사이에 뉴스 배치 등으로 인해 어머니도 즐겨 보십니다.
뭐, 요즘 뉴스 채널 중에 믿고 볼 채널이 있기나 한가 싶고, 어차피 전 티비를 보지 않지만요.
코로나19 탓에 대화할 시간이 늘었겠다, 뉴스 볼 시간도 늘었겠다, 요즘 선거철이겠다.
어머니가 뉴스를 보시고 질문을 하면 종종 설명을 해드리곤 하는데, 그래서 누가 해야겠노, 하고 물어보시면 대답이 궁했습니다.
전부 원론적인 이야기들밖에 할 수가 없었죠.
당만 보고 하는 투표가 옳은건가, 싶다가도 후보자 개인이 당색을 떠나서 정치할 수 있나 싶다가도...
어쨌든 결과로 나온 숫자는 그나마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만 피부에 와닿는 현실은 한층 더 답답하게 느껴지고 또 극단적이라 여겨져 늘어놓은 푸념입니다.
때가 때인지라 오래 집안에 계신 분들은 체력 저하와 건강 조심하시고, 또 생업 때문에라도 바깥 출입이 잦으신 분들은 아무쪼록 무탈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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