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순신, 류성룡, 원균이 어린 날 ‘지기’였다는 설정에 대하여..
허균의 『성소부부고』에 이순신, 류성룡, 원균이 ‘건천동’에서 살았다는 기록이 보입니다. (허균 또한 건천동 출신입니다) 당시 한 마을에 가구 수가 얼마 되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세 사람이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드라마를 쓰는 작가는 이 한 줄의 기록을 통해 다양한 상상을 해 보게 마련입니다. 세 사람이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면 능히 한 서당을 다닐 수도, 긴밀히 교유할 수도 있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 추리는 소설가들이나 하는 것이지 역사드라마 제작진이 할 바는 아닌것 같군요. 물론 과거 수차례 방영된 역사드라마에 허구적스토리를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마지막 남은 성웅을 그리는 데는 좀 더 신중했어야 했습니다. 너무 경솔한 감이 듭니다.
원균을 비롯하여 유성룡, 이순신장군이 같이 살았다는 것은 허균의 소설책에 나오는 글 몇자가 전부입니다.
어느 역사서나 기록... 더구나 원균행장기 등에서도 원균이 어린시절을 평택에서 보냈다고 나옵니다.
그런데도 제작진은 허균의 소설책에 있는 글 몇자만을 보고 추리를 시작했다니 기가 찰 노릇입니다.....(똑바로 말하면 원작인 김탁환씨의 불멸을 똑같이 옮긴것 뿐이겠지만)
소설가(허균)들은 본래 상상력이 풍부하고 과장이 생리적으로 심합니다
어느 역사서에서도 같이 살았다는 기록을 볼 수가 없고...
원균을 맹장으로 부각시킨 책에서도 물론이고..
이순신장군의 개인적 일기인 난중일기에서도.. (나이 40이 넘어서 임진왜란 중에 처음 만났는데 사실 계급은 동급이거나 조금뒤 이순신이 위가 되는데 원균은 거의 무시아니면 하는 행동이 맘에 안들다고 하지요)
그리고 유성룡이 쓴 책에서도 마찬가지... (원균과 동무였다면 원균관련 기록에서 빼 놓을리가 전혀 없다)
수많은 증거들을 묵살하고(원균과 서로 모르던 사이라는 사실) 오직 허균의 소설에 등장하는 글자 몇자를 가지고 추리하여 동무였다고 한다면...
민족의 영웅이신 이순신장군 관련 드라마를 만든다고 하면서 거의 가능성이 없는 어릴적 설정을 그리 고집했던게 신선한 접근이었다고 kbs는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원균과 이순신장군과의 엄청난 악연을 무시한 너무 경솔한 설정입니다
결국 이러한 어거지 어릴적 설정이 이야기를 묘하게 이끌어 나가는 원인이었음에는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2. 이순신이 ‘겁쟁이’였고, 원균을 ‘형님’으로 믿고 따랐다는 설정에 대하여..
이 부분이 가장 큰 논란을 불러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이순신에 대한 심각한 ‘폄훼’가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이순신은 후일 조선과 일본간에 벌어진 7년 전쟁에서 23전 23승, 불패의 신화를 창조한 ‘영웅’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론 만으로 어려서부터 용맹성이 극에 달했을 것란 추론은 너무 상식선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순신은 28세의 늦은 나이로 무과에 처음 응시했으며, 32세에 식년무과에 병과(12등 정도)로 급제했던 다소 평범하고, 같은 장수들과 상대평가하자면 오히려 열등했던 이가 아닌가 여겨집니다.
작가는 이 부분에 주목해 보았습니다. 타고난 것이 많지 않은 ‘노력형의 인간’이 바로 이순신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지금도 유년기의 아이들은 누가 키가 더 큰지, 또 누가 더 힘이 센지로 우열이 가리지 않던가요? 그러나 힘세고 키 큰 아이들이 다 우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삶의 긴 여정을 통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겁’이 많은 아이의 이면은 ‘생각’이 많은 아이입니다. 많은 생각이 그 아이에게 사려깊음과 지혜로움이란 선물로 주겠지요.
이순신이 후일 조선 최고의 지장이 된 이면에는, 어린 날 그가 다른 사람이 보기엔 유약하나 다분히 ‘생각 많은’ 아이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또한 지금도 “사내가 왜 그리 맥이 없고, 용기도 없냐”는 지청구를 받는 그 수많은 아이들이 사실은 ‘생각 많은’ 아이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진정한 용기는 나의 부족함을 인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부족함을 인정하고, 나보다 뛰어난 사람에게 겸손히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배우려는 자세를 가진 이. 그를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나도 용감해 지고 싶은 거야, 균이 형님처럼..”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어린 날 순신이야 말로 참된 용기를 가진 아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사실 거의 궤변에 가까운 논리 입니다
말이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될 수도 있는 도구 입니다
이순신의 무력이라는 것도 식년병과시험이 3년에 한번씩 열리고 총 28명을 뽑는데서 12등이라는 등수는 그리 낮은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늦은 나이에 무과 시험을 준비한 그로써는 오히려 원래 보통사람 이상의 능력이였다고 볼수 있겠지요. 또한 그때의 무과시험이라는것이 특별한 설정이 없어서 비리도 상당했습니다. 아무런 빽도 없이 실력만으로 붙은 이순신의 무예실력은 특히 활쏨씨는 어릴적부터 상당한것으로 인정됩니다.
설령 어릴적 유약했다고 하더라도(백번 양보해서) 원균과 어릴적 같이 동무였다는 것은 참으로 믿기 힘듭니다. 이순신이 7살이면 원균은 12살이고 이순신이 10살이면 원균은 15살입니다. 한 두살 차이면 같이 놀지 15살이면 결혼할 나이입니다...
원균은 씩씩하고 용감한 골목대장.. 이순신은 유약한 사내아이..
더구나 기막힌 것은 이순신의 우상이 원균...
정말 이런 설정밖에 없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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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진정한 용기는 나의 부족함을 인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부족함을 인정하고, 나보다 뛰어난 사람에게 겸손히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배우려는 자세를 가진 이. 그를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나도 용감해 지고 싶은 거야, 균이 형님처럼..”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어린 날 순신이야 말로 참된 용기를 가진 아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내말이 이말이오. 왜 제작진은 자신들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오? 하루빨리 부족함을 인정하고 시청자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역사학자들에게 배우려는 자세를 갖추시오. 내 묻겠소. 제작진은 이 드라마를 찍으며 난중일기를 몇번이나 읽었소? 난중일기 읽어는 봤소?
무과에 늦게 급제했고 성적이 별로였다=어릴적 유약해서???
어릴적 용맹이 무과의 정규시험 과목과 꼭 일치하는 것도 아닙니다
어릴적 용맹했다고 무과의 성적이 높을거라는 이야기야 말로 추리입니다
무과에 한 번 떨어지고(처음에는 시험도중 말에서 떨어져서) 두번째 성적이 보통이었다는 것을 추리해서 어릴적엔 유약했지만 노력형 인간이었을 것으로 설정했다는데...
이순신장군의 캐릭터를 어느 정도 정해 놓고 한 쪽으로 몰고 가는 경향이 강합니다.
이순신 관련, 어릴적 역사적 기록은 이순신을 모두 용맹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역사적 기록들을 전혀 무시하면서 왜 무과 성적을 들먹이면서
어릴적 성격을 추리해 가는지.. 추리 실력이 이정도면 수준급???
아버지가 역적이라는 것도 지어낸 이야기지요)
제작진의 글을 읽고 느낀 느낌은 어떻게든 이순신장군의 옥의 티를 찾아내서 그것을 자신들의 설정으로 이끌어 갈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제작진의 잘못은 그저 소설책(불멸)을 가져다가 옮긴것 밖에 없는것 같지만)
그리 많은 설정들을 다 제쳐두고 왜 이순신 장군을 폄하 할 수밖에 없는 설정을 찾는 건지...
이건 한마디로 본래 이순신 장군의 캐릭터는 모범생이니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야 시청률이 오르지 않을까하는 시청률 지상주의의 결과입니다
제가 볼 땐 얼마든지 다른 허구의 설정들로도 드라마를 재미있게 만들 수 있을 터인데.. 어이하여 문제 투성이의 설정만을 고집하는지??
3. 원균 재평가에 대한 논란에 대하여...
‘불멸의 이순신’ 홈페이지를 통해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하여 수군전체를 자멸의 길로 몰고 간 패전지장을 미화하려는 이유가 뭐냐?“는 우려의 소리를 많이 접했습니다. 물론 제작진도 원균을 지나치게 미화할 의사는 없습니다. 그는 ‘패전의 장수’였으며, 이순신이 난중일기 곳곳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수많은 오류들을 범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순신이 승전의 장수라서 태생적으로 용맹하고 완벽했다는 상식을 탈피해 보고자 했듯이 원균이 실패한 인간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용렬한 인간이라는 상식도 뒤집어 보고자 했습니다. 기획의도를 통해 밝혔듯이 선 아니면 악, 나 아니면 모두 적이라는 양자택일의 논리는 이 드라마에서 철저히 배격해 갈 것입니다. 한 인간이 성공을 했다면 왜, 또한 한 인간이 실패를 했다면 왜.. 바로 그 ‘왜(why)’에 주목하는 것이 드라마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원균이 육진에 있을 무렵 여진족들과의 사이에서 벌어지던 국지적인 전투에서는 크고 작은 전공을 세운 것이 사실입니다. 오히려 이 무렵 이순신은 녹둔도에서 참혹한 패배를 경험하고 ‘백의종군’의 치욕을 감내하게 됩니다.
그러나 7년간 조일전쟁에서는 이순신은 한번도 지지 않는 괴력을 발휘하고, 원균은 칠천량에서 수군 전체를 잃고 자신마저 목숨을 잃는 그야말로 철저한 패전의 장수가 됩니다. 왜 였을까? 여기가 문제의식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장수와 '전투'에서 이길 수 있는 장수는 다르다는 것이 우리의 결론입니다.
"부하의 마음'만' 잡을 수 있는 장수"는 '전투'에서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나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부하는 물론이거니와 민심, 나아가 적의 마음까지 잡는 장수”라야 한다 여겨집니다. 전자는 원균이요, 후자는 이순신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잡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요? 끝없는 자기회의와 혁신을 통해 가능한 일이라 여겨집니다. 어쩌면 녹둔도 패전의 기억이 이순신에게 이 모진 고행을 감내하게 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역으로 육진에서 승리의 기억이 오히려 원균에게는 발전을 저해하는 장애물로 작용했던 것은 아닌지..
원균은 실패한 사람이지,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원균은 분명 맹장이었고, 맹장이었다면 부하들에게 압도적인 신망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긍정적인 면을 드라마에서 부각하는 것이 이순신의 영웅적인 면모를 폄훼하는 일이라 여기지 않습니다. 어느 일간지의 기자가 그랬듯 그것은 “달빛이 아무리 밝아도 햇빛을 가릴 수 없다”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원균의 실패를 통해 대중이 실패하지 않는 법을 배워나간다면 그 또한 역사를 통해 “온고지신”의 혜안을 찾아나가는 한 방법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 제가 제일 실망스런 부분입니다
제작진의 역사의식이 이정도라니..ㅜㅜㅜ
끝까지 궤변만 늘어놓다니요.. 그리고 제작진이 얼마나 역사서들을 탐독하고 이야기를 그려가는지???
원균의 여진족관련 승리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선조실록에도 찾기 어려운 기록입니다...즉, 없는 기록이라는 거지요...
물론 선조가 한 말들만 보면 맹장이 될수도 있겠지요! , 하지만 객관적 자료가 없이 주관적인 왕이 한 말만 믿어야 할까요?
또한 선조임금이 원균을 일등공신으로 올렸다는 사실을 제작진도 이야기 하는 것 같은데..
선조임금이 원균을 많은 신하들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굳이 일등공신으로 추대한 사건의 전말을 정말 제작진은 모르고 있는지?
신하들은 2등 공신도 과하다고 주장했을 정도였습니다.
4 .원균이 육진에 있을 무렵 여진족들과의 사이에서 벌어지던 국지적인 전투에서는 크고 작은 전공을 세운 것이 사실입니다. 오히려 이 무렵 이순신은 녹둔도에서 참혹한 패배를 경험하고 ‘백의종군’의 치욕을 감내하게 됩니다.
반론 : 우선 원균은 여진족의 국지적인 전투에서 크고 작은 전공을 세운 적이 없소. 만약 제작진에서 그렇다고 주장하고 싶다면 정확한 근거를 대시오. 내 한참동안 실록을 뒤졌지만 여진족 토벌과 관련하여 원균이 공을 세웠다는 기록은 달랑 하나 찾았소. 계미년 여진족 토벌전에서 공을 세워 진급했다는 단편적인 기록이오. 이 전투와 관련한 대부분의 기록은 신립장군에 대한 것이오. 토벌후 선조가 재능있는 무장을 추천하라고 하자 당시 병조판서였던 정언신이 이순신을 추천하였소. 당시 조정대신중 아무도 원균을 추천한 사람이 없었소. 원균이 여진족과 전투에 공을 세웠다는데 왜 아무도 추천을 안한 것이오? 왜냐고? 공을 세운 적이 없으니까!!!(이부분과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송우혜氏의 글을 참조하시오. 이 게시판에 여러번 올라왔소.)
또 녹둔도 전투는 참혹한 패배가 아니였소. 당초 이순신은 적의 침입을 예견하고 상급지휘관이던 이일에게 병력의 증원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소. 이순신이 여포도 아닌데 적은 병력으로 많은 여진족을 이길 수는 없소. 또 당시 기록에 보면 이순신과 그 부하들은 수적열세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싸워서 잡혀가던 조선인 포로 60여명을 되찾아왔소. 참혹한 패배란 단어가 어울리는 상황이 아니오.
또 백의종군의 치욕 어쩌구하는데 이부분만 봐도 제작진이 얼마나 무식한지 극명하게 알 수 있소. 백의종군이 뭔지는 아시오? 당시 백의종군은 무장에 대한 처벌중 가장 약한 것이오. 처형-유배-파면 이런 것들이 무서운 처벌이고 백의종군은 지금으로 치면 보직해임같은 것으로 상징적인 의미일뿐 실질적인 처벌은 아니오. 기록을 보면 백의종군한 상태로도 부하들의 보고를 받고 평소와 같이 사무를 처리하고 녹봉도 받았소. 이걸 이상하게 "이등병강등"으로 이해하는 분들이 있는데 아니오. 상징적인 징계일 뿐이고 나중에는 이걸 너무 남발해서 별 실효가 없다는 기록도 나오오. 제발 백의종군이 치욕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시오. 무식한 티나오. 이런 역사의 상식도 모르면서 드라마 만들고 있었단 말이오?
6. 원균은 실패한 사람이지,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원균은 분명 맹장이었고, 맹장이었다면 부하들에게 압도적인 신망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긍정적인 면을 드라마에서 부각하는 것이 이순신의 영웅적인 면모를 폄훼하는 일이라 여기지 않습니다.
반론 :
맹장이었다면 부하들에게 압도적인 신망을 받았을 것이란것은 추리지요.
오히려 칠천량 전투에서 도망간 사실으로써 원래 신망을 받지 못했다고 해석하는것이 상식이지요...
그리고 자꾸 원균이 맹장이라고 우기는데 제발 근거를 대시오. 맹장이라는 말은 용맹한 장수라는 뜻인데 도대체 원균의 그 용맹함은 역사의 어디에 등장하오? 원균이 17 vs 1로 싸워서 이겼다는 기록이라도 있소? 지레 겁먹고 싸우지도 않고 무기와 배를 불태우고 부하버리고 도망가는 장수가 용맹하다는 결론은 도대체 머리에 무슨 충격을 받으면 내릴 수 있는 것이오? 부하들의 압도적인 신망?
7. 이순신을 드라마화 하기로 결정하면서 제작진 내부에서는 갖가지 기록과 이순신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들을 검토했습니다. 원칙은 ‘그 시대를 제대로 조망했거나 인간 이순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하고 있다면 다양한 원작을 확보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반론 : 이 드라마의 제작원칙이 참으로 황당하오. 그 시대를 제대로 조망했는데 이순신, 원균, 유성룡이 충청도와 서울과 경상도를 고속전철 타고 출퇴근하면서 쎄쎄쎄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단 말이오? 있지도 않은 이순신의 내연녀가 그것도 모녀가 대을 이어 등장한단 말이오. 이순신이 상단에 들어간단 말이오? 닌자가 등장한단 말이오? 조선시대를 조망한 것이 아니라 반지의 제왕 중간계를 조망한 것이 아니오?
인간 이순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더 황당하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대로 된 해석이오. 많은 국민들이 이순신을 존경하지만 실제 그의 업적이 어떠한지 삶이 어떠한지 어떤 역경과 슬픔을 이겨내고 전승을 이룩했는지 잘 모르오. 난중일기 읽어보면 가슴에서 피가 끓어 오르고 눈물이 흘려내려 제대로 읽을 수가 없소. 국민의 세금으로 만드는 드라마. 이걸 제대로 만들어서 국민들에게 보여줄 의무가 있소. 새로운거 말고 제대로 된거!! 제대로 된 걸 원한단 말이오.
다양한 원작의 확보라는 말에는 헛바람밖에 안나오오. 그럼 이 드라마는 짜집기란 말이오? 신념을 가지고 하나의 큰 기둥을 세우고 만드는 것이 아니고 이것저것 모아서 무리뭉실 헤처모여 한 각본이란 말이오? 조선왕조실록, 이충무공전서, 난중일기 이거 세 개만 제대로 읽고 해석해도 역사에 길이 남을 대작품 만들 수 있소. 뭐가 더 필요해서 왜곡된 소설들을 재료로 삼는단 말이오. 쓸데없는 상상력 발휘하지 않아도 인간 이순신의 삶은 너무나 비장하오. 그는 살아서는 아무런 부귀영화를 누리지 못했소. 곧은 성격탓에 하급장교로 장년시절을 보냈고 높은 관직에 올랐을 때는 조국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절대절명의 상황이였소. 설마 이순신이 승진했다고 좋아했겠소?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에서 고문당하고 있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소. 아들도 전란중에 죽었소. 조국의 국토가 조국의 힘없는 백성들이 왜군에게 유린당하는 것을 지켜보았소. 간신배들이 비열한 방법으로 그를 모함했지만 그는 결국 조국을 지켰고 조국의 바다에 자신을 묻었소. 솔직히 이정도면 아무런 상상력없이 있는 그대로만 드라마 만들어도 명작에 대작이오. 상상력이랍시고 어줍잖게 곁가지 붙이는 것이 더 어색하오. 무슨 얼어죽을 새로운 해석이고 다양한 원작이란 말이오. 원작이란 말이 무슨 뜻이지나 아오? 원작이란 하나뿐이라서 원작이오. 원작이 둘이면 이미 짜집기요. 이순신이 인생 두번 살았소? 하나뿐인 영웅의 하나뿐인 삶. 그걸 있는 그대로 만드는 것이 그리도 힘들단 말이오? 재미? 있는 그대로 만들면 더 재미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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