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주위에서도 이런일이 생기다니...
친구의 친구일이지만 남같지가 않네요.
오늘 미니홈피에서 웃는 얼굴 사진을 봤는데.
울컥 가슴이 뭉클해지네요..
사연은 즉..
제 친구 정주영군이 2004년 10월 17일 의정부 2167부대에서 사망했습니다.
당시 이등병이었던 제 친구는 부대 측의 조사에 따라 탈영 후 자살로 처리되고 있었습니다.
부대측에서는 처음에 10월 17일 일요일 정주영군이 교회를 간다며 나간다고 하고
부대를 탈영하여 근처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자살했다고 유족들에게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너무도 이에 대해서 의혹이 많았습니다.
부대 측에서는 신원확인만 하고 즉시 시신을 화장시키려 했으나
가족들이 화장을 저지하고 국군수도병원에 빈소를 마련한 후
부검과 재조사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정주영군은 부모님께 사고 당일 몇일전에
"유격훈련을 나갑니다. 남자니까 잘 해낼수 있을것같아요."
라는 내용의 통화가 있었고, 100일 휴가도 정신이 헤이해 진다며 유격훈련을 마친후 가겠다고 미뤘습니다.
그러던 아이가 유서도 없이 갑자기 무작정 자살했다니 믿기지 않았습니다.
부대는 가족들에게 연락하여 먼저 정주영군이 실종되었다고 알렸고
가족들은 18일 새벽 4시부터 7시까지 근처 산을 수색했습니다.
그러나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후에 시체가 공사현장에서 발견되었다고 가족들에게 알린 뒤
자살로 결정 짓고 시신을 화장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부대의 입장은 이렇습니다.
-이병 정주영군은 10월 17일 실종되었고 수색을 해 본 결과
근처 아파트 공사현장 엘리베이터 설치구역에서 발견되었고 15층에서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탈영 후 자살한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가족들은 화장을 저지하고 부대와 재조사를 시작했습니다.
군부대의 입장은 정주영군이 탈영을 한 후 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문은 아시다시피 보초병들이 보초를 서고 있습니다.
그러면 담을 넘었다는 건데 조사결과 담을 넘은 흔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정문아니면 제2의 문으로 통과를 했을텐데.. 보초병들은 그것을 그냥 놔두었단 말입니까?
정주영군은 하늘로 날라서 공사장으로 갔습니까??
또 한 일요일 아침 7시 반부터 공사장 인부들이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대의 설명에 의하면 공사현장에 접근해서 15층까지 올라가서 자살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인부들은 그런 사람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과연 납득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15층에서 떨어졌다면 그 소리를 못들었을까요? 소리가 꽤 많이 컸을 텐데 말이죠.
그리고 부대의 설명에 의하면 자살하기 전, 모자와 주머니의 돈1000원을 꺼내서 놓고 투신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재조사 후 안주머니에서 월급과 펜이 발견되었습니다.
주머니에 몇만원 넣어놓고, 천원짜리는 왜 꺼내놓았을까요.
가족들에게 부대에서 아들의 실종소식이 도착한 후,
아버지하고 어머님은 아들이 탈영했다고 하니까
그 주변의 산을 새벽 3시부터 7시까지 이 잡듯이 뒤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이런말을 하더군요.
"아, 이미 애들 50정도를 산에 풀었습니다. 수색하고 있어요."
4시간동안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밤이겠거니 하면, 손전등이 왔다갔다 거리는 거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무엇보다 떨어져서 낙사를 했다면 사람이 보통 널부러지게 됩니다.
그런데 정주영군은 머리쪽을 양손으로 가리고 다리를 움츠린채
그렇게 사후경직에 걸려있었다고 합니다.
보통 맞다 죽으면 이런 자세를 취하게 되겠지요.
보통 그 높이에서 사람이 떨어졌다면 머리가 깨지고 목과 팔들이 다 부러집니다.
하지만 정주영군은 갈비뼈가 부러지고 내장이 다 파열되었습니다.
피부 외상은 떨어질때 다친 멍자국입니다.
또한 떨어진 주위에 핏자국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부검결과 사인은 타살로 인한 내장파열로 규명되었습니다.
부대에서는 15층에서 떨어졌다며 증거로 소지품을 제시했지만
수사 결과로는 5층에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였습니다.
주영군의 이동흔적은 5층에서 끊어져 있었습니다.
아파트 계단에는 마르지 않은 시멘트 때문에 군화자국이 있었습니다.
부대는 이 발자국이 정주영군의 것이라고 했지만
중요한 것은 주영이의 군화에는 시멘트 가루하나 묻어있지 않았습니다.
부대 측에서는 정주영군을 탈영으로 몰고 가기 위해서
17일 오후 5시, 즉 실종 당일 이후에 주변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그 번호는 수첩 제일 앞에 써있는 번호였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 번호는 정주영군의 가족이나 친지, 혹은 친구의 번호가 아니었습니다.
친구들과 가족의 번호는 모두 외우고 있었고
그 번호는 훈련소에서 만났던 다른 병사의 연락처였다고 합니다.
나중에 제대하면 연락하기로 했던 사람이라고 가족들에게 말했던 친구라더군요.
그런데 부대는 정주영군이 탈영 후 저 사람에게 처음 전화를 걸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통화 상대는 전화한 사람이 뜬금없이 "xx있어요?"라고 묻고
너 누구냐고 물었더니 "나 주영이요" 라고 말하고 바로 끊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전화는 수신자 부담으로 걸려왔다고 하는데요
주영군의 주머니엔 월급이 들어있었습니다.
부검 결과가 결국 나왔습니다.
그런데 정주영군은 부대측의 주장과는 달리 전화기록이 있는 17일 일요일 5시에는 이미 죽어있었습니다.
위 속의 내용물을 살펴본 결과 오전에 나온 간식이 그대로 소화되지 않은 채로 그냥 남아있고
다른 신체적 징후를 살펴 보았을 때, 정주영군은 10월 17일 일요일 오전 11시에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타살로 인한 장파열로 죽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조사해 본 결과, 그 수신자 부담으로 걸었던 전화는
부대 내에서 발신된 전화였습니다.
부대는 18일 새벽에 주영군이 탈영했다고 가족들에게 전화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 이미 주영군은 죽어있었고 전화를 걸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군부대 측에서는 더 이상 자살이라고는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가족들의 적극적인 태도로 이 정도 조사가 진행되자
갑자기 군장으로 군악대 동원하여 장례를 치러주겠다고 하면서
조사의 중지를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기에 가족들은 계속 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직 조사는 완료되지 못했습니다.
친척분들이 PD수첩에 이미 제보를 한 상태입니다.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정주영군은 이제 자살로 죽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 판명되었습니다.
이미 죽은 정주영군을 자살로 치부하여 두 번이나 죽인 부대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가족들은 이미 외로운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친구인 저는 단지 이렇게 글을 써서 작게나마 도울 뿐입니다.
앞으로 전개되는 상황과 새롭게 밝혀지는 상황을 계속 알리려고 합니다.
진실이 뭔지, 정주영군은 왜 죽었는지 꼭 알고 싶습니다.
친구의 일이지만 이렇게 밖에 퍼트리는겄밖에 할게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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