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고무림에도 아래 글을 쓰신 분과 같은 경험을 하신 분들이
또는 아직도 그렇치 않으신 분들이 많겠죠??
저도 고졸이지만 꽤나 책을 읽었고 그럴싸한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대학을 들어간 친구들을 통해서 알게 된 새로운 지식은 참으로 충격적이었죠,
고교까지 배운 지식이 얼마나 허망한지, 고1때부터 열심히 읽어 온 좆선일보가
얼마나 쓰레기 지라시인지 ...
전태일 평전을 읽으면서 알게 된 노동의 의미.
일본인으로 끝까지 살다가 간 박정희.
비디오로 알게 된 광주의 처절함.
독립운동과 해방, 그리고 미군의 임정때까지 우리 민중을 위해서
그리도 열심히 치열하게 활동해 온 민족주의자들와 사회주의자들.
이승만과 또라이 우익, 양키들에 의해서 민족정기가 좌절된 반민특위.
우리땅 주변에 깔려있는 통일을 죽자고 훼방놓는 제국주의자 놈들.
등등...
이런 지식들을 저는 대학을 다니던 친구들을 통해서 그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그게 아마도 제가 직장생활을 시작하던 20살때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전까지 제가 책이나 신문을 통해서 알게 된 지식은 거의 다
기득권자들의 충실한 논리 답습,세뇌이자
저 같은 힘 없는 대중들을 개별화 시키는 작업에 불과했던거죠,,,
제가 여기에 주로 펌글을 올리는 이유도 이 맥락의 연장선입니다.
우리가 정말 제대로 알아야 할 것들이 많은데..
그걸 찾아가는 방법이 더디지 않나하는 노파심- 물론 저 혼자만의
지금은 인터넷이라는 훌륭한 매체가 있는데도,,,,
여서부터 펌글입니다. ---------------------------------------
나의 고백
속아 살던 세월이 너무 억울하군요
초딩 5학년 때. 어느날 담임이 종이를 한 장씩 나눠준다. 제목은 「국민교육헌장」. 무조건 외워야하며 다 외웠으면 발표하란다. 무조건 달달 외우다보니 20분만에 다외웠다. 난 당당하게 손을 치켜들고 다외웠노라고 하니 읇어보란다.
“우리는 민족중흥에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평소 암기엔 소질있던 내가 전교 일등을 먹은 순간이다. 담날 아침 조회시간에 전교생이 모인자리에서 당당히 상장을 수여받는다. 난 그 순간이 히로히토 천황의 신민이 되어있음을 뒤늦게야 알았지만 너무 어린 나이니 그냥 봐줄 수도 있는 사건이다.
중딩 2학년 때 ‘유신’이라는 단어가 온 세상을 뒤덮는다. 난 교우들과 유신이 무엇인가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인 기억이 있다. 도덕선생에게 배운 대로 유신은 세상을 새롭게 개조하는 것이라며 유신을 잘 모르는 놈들에게 입에 거품을 물며 가르치던 기억도 있다.
말하자면 유신의 적극적인 찬양자였다. 얼마 전 박00 여사께오서 국민을 개조시키겠다고 당당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적이 있다. 내가 배우고 말하던 유신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말을 하신 것이다. 난 박00 여사님과 동급이었나 보다. 그러나, 겨우 중딩 2학년. 그래도 어린나이니 봐줄만하다.
중딩 3학년 때 효창운동장에서 전교생이 참여하는 서울시장님배 마스게임을 했던 기억이 있다. 울학교의 마스게임 제목은 ‘총화유신’과 ‘멸공통일’. 멸공통일은 알겠는데 총화유신을 뭘까, 라는 생각을 하며 잠시 딴 생각한 사이 아뿔싸~내가 대열에서 이탈해있다. 일사분란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나 땜에 망쳐버린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울 학교가 3등, 울학교가 너무 자랑스러웠다.
중딩 3학년 1학기 학비가 없어 내질 못하니 담임이 자퇴를 권유한다. 이것이 내 학벌의 전부다. 그리고 난 아직도 총화유신이 무엇인지 헷갈린다.
나이 열일곱. 조선일보 보급소를 찾아갔다. 배달을 하겠다고. 새벽 네시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배달을 나가 동네한바퀴 돌며 배달을 마치면 일곱시쯤 된다. 신문한부를 집으로 들고와 열심히 정독을 한다.
조선일보는 한자가 유난히 많다. 배우지 못한 욕구가 한자 읽는 재미로 충족을 한다. 모르면 옥편 들고 열심히 찾아가며 읽는다. 지금 내가 아는 한자는 전부 그때 조선일보를 보며 읽힌 것들이다.
난 조선일보가 최고의 신문인 줄로 알았다. 그러나. 이때 나이는 불과 열일곱이다.
방위소집을 받았다. 이른바 똥방위다. 그리고 몇 개월 후 존경하옵는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신다. 난 하늘이 무너지는지 알았고 하늘이 울 나라를 버리는지 알았다. 빈소가 마련된 동사무소에서 난 내 인생의 가장 엄숙한 생각과 자세로 박정희 대통령각하께 거수경례를 했다. 난 만약의 경우 북괴가 밀고 내려오면 비록 방위지만 박정희 대통령 각하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노라고 다짐했다. 나이 스물셋. 이젠 다 큰 나이인데도 난 유신과 박정희 대통령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제도고 훌륭한 대통령각하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내가 자랑스럽다.
어느 날 광주에서 폭동이 일어난다. 공비들이 호남곳곳에 출몰하고 폭도들이 경찰서를 습격하여 총기를 탈취하고 방송국을 접수했단다. 큰일이다. 드뎌 염려하던 사태가 벌어졌다. 난 다짐한대로 더욱더 방위근무에 매진한다. 이것만이 존경하는 박대통령각하께 충성을 보이는 길이다. 다행히도 ‘찬란히 떠오르는 태양’ 전두환 장군이 공수부대를 특파하여 무장공비와 폭도들의 난동을 진압했단다. 역시 영웅은 난세에 나타난다더니 전두환 장군, 대단한 위인이다.
88년 올림픽이 열리던 해. 이젠 장가도 가고 애가 둘씩이나 달린 가장이다. 어느 날 나의 조그만 사업장에 웬 낮선 이가 찾아온다. 〈한겨레신문〉에서 나왔는데 구독 좀 하란다. ‘한겨레를 보면 노동당 기관지인지 빨갱이 신문인지 모르겠다’며 강력한 면박을 줘서 돌려보냈다. 이런 내가 흐믓하다. 감히 빨갱이가 날 찾아오다니…….
92년 대선에서 영삼이가 당선이 된다. 정말 다행이다. 빨갱이 디제이가 됐으면 나라 망하는 건 시간문제 아닌가. 영삼각하의 개혁이 진행된다. 하나회숙청, 금융실명제 전격 도입, 전두환 노태우 줄줄이 구속, 신난다. 영삼각하가 혹시 암살이라도 당할까봐 걱정스럽다.
94년 어느날. 아이가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울고 돌아온다. 이유를 물으니 컴터를 하는데 친구엄마가 못하게 한다며 서글퍼한다. 홧김에 즉각 컴터를 구입했다. 몇 개월 지나니 아이들이 피시통신이란 게 있다며 전용선을 깔아달란다. 기왕에 비싼돈 주고 사용하는 건데 나도 좀 배워야겠다는 생각으로 천리안이니 나우누리니 따위의 통신망에 접속해본다. 이것저것 뒤져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만의 세상이 뒤집어지는 사건들을 알게 된다. 유신이란 무엇이며 박정희는 어떤 인물이며 디제이는 어떤 인물이며……. 기가 막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실들을 알게 된다. 사십 가까운 나이에 세상을 바로 보게 된 나. 미칠 것만 같다.
데모를 하면 할 일없는 놈들이 저지르는 줄만 알았던 나. 명지대생 강경대가 죽었을 때 공부도 지지리 못하는 놈이 데모하다 죽었으니 잘된 것이라던 나. 연대생 이한열이 죽었을 때 아무 것도 모르는 애들이 주사파들의 선동에 놀아나다 죽었으니 죽은 애만 불쌍하다던 나. 서울대생 박종철이 죽었을 때 빨갱이놈 간첩질하다 죽었는데 뭐가 잘못된 것이냐던 나. 그외 숱한 사건들에 대한 나의 편견과 오만과 아집스런 모습들.
배우지 못함을 이때처럼 절실히 느낀 때가 없었으며, 나를 다 키우지도 가르치지도 않고 세상을 뜨신 부모님들이 그토록 원망스러울 수가 없다. 난 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돈 속에서 좀처럼 빠져나올 수 없었다.
비록, 문교부 혜택은 받지 못했지만 나름의 독서를 통하여 제법 많은 상식을 알고 있으며, 세상을 충실하게 살았노라는 자부심을 지녔던 내가 일순에 허망하게 무너져버린다. 세상을 다시 살수만 있다면……. 피골이 상접해감을 느끼며 나날을 보낸다.
사십이 다된 나이에 나의 무지함과 몽매스러움을 탈피하고자 그간 잊고 살았던 독서를 하기 시작한다. 체게바라가 누구인지, 칼융이나 촘스키가 어떤 인물인지, 트로츠키가 왜 쓸쓸히 죽어갔는지, 정조가 왜 암살당했는지, 김구와 조봉암은 어떤 인물인지, 미당은 무엇을 보고 그리 슬프게 소쩍새가 울었다는 표현을 한 건지, 지식인이라는 김동길이 밤낮 무얼 보고 ‘이게 뭡네까’라고 하는 건지, 박정희란 어떤 인물인지, 알기 시작했다. 세상사는 재미가 생겨난다. 마치 검은 안경을 벗어낸 느낌.
안다는건 무지 행복한일이다.
ⓒ 칼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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