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나보고 말한다
"넌 강사병이야 그것도 중증~~!"
맞다!
난 강사병에 걸렸는데, 이 병이 날로 증세가 도지고 있다.
누가 지나가는 말로라도 뭘 물어보면, 필요없을 정도로 자상히,
모르는 일이라면 다른 곳에 물어서라도 대답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
이건 초기 증상이고, 요즘은 길을 가다가 누가 길을 물어보면 -
주로 지하철역에서 입구를 찾는 물음에 - 나를 향한 질문이 아닌데도
대답하는 사람의 말을 유심히 듣고나선 틀리게 가르쳐 주거나,
모른다는 대답이 나오면 얼른 가서 대답(거의 강의다)을 하고야 마는 것이다.
며칠 전에는 버스를 타고 가는데 - 난 버스 맨 뒤자석의 바로 앞자리를
제일 좋아한다.- 맨 뒷자석에 머리엔 무스를 바르고 꽃핀을 꼽고
교복이 분명한데 당최 그 차림새는 거의 힙합에 가까운 옷을 걸치고
끊임없이 수다를 떨어대는 중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 아리송한
두 명의 여학생이 있었다.
꾸벅꾸벅 졸면서, 속으로 '무지 시끄럽군'이라는 말을 되뇌이며
듣지 않으려고 해도 들어오는 그들의 대화에 나도 모르게 귀기울이고 있었다.
혜화동을 지나자마자 둘이 툭탁거린다.
"야 다왔다 여기가 돈암동이야. 이번이잖아?"
"응 그래~? 지나칠뻔 했네 XX~~"
속으로 아닌데를 연발하며, 말을 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다
결국 나의 강사병은 도지고야 말아 삼선교에서 후다닥 내리려는
그 두 여학생중 한 명의 웃도리를 잡고 늘어졌다.
"여기 돈암동 아니에요"
놀라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그 여학생 옆에서 친구가 한마디 한다.
"그래 어쩐지.. 야 다음이잖아 이그 이 XX야~~"
거기서 끝냈어도 좋았을 것을 나는 결국
"아니요, 이번은 삼선교고 그다음에는 돈암초등학교구요 그 다음이
돈암동이에요"
하고 나도 모르게 강의톤으로 말을 하고야 말았다.
버스 안의 사람들이 다들 나를 쳐다보는 걸 느끼고야
내가 평소 20~30명이 모여있는 강의실에서 강의하던 그 볼륨으로
버스정류장 안내를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때의 그 무안함이란~~
말이 나왔으니, 사실 내가 근무했던 사무실에선 이런 일이 허다했다.
조용한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우리팀 선생님들은
보통은 전화가 와도 조용조용하게 받는다.
그런데 가끔 그 적막을 깨뜨리는 소리
갑자기 남자 강사 한명이 전화를 받고 조금 지나더니,
우렁차게 울리는 목소리로
"아 그건요 화면 위쪽에 무슨무슨 단추 보이세요? 아니요 그게 아니고
맨 위줄 오른쪽에서 두번째 아이콘에 ..."
조용하던 사무실 안은 갑자기 강의장이 되어 40명을 커버하고도 남는
강의소리에 다들 아무 일을 못하고, 그 남자 강사를 쳐다보고만 있는다.
열강하느라 그 따가운 눈총도 눈치채지 못한 나만큼 중증인 강사병 환자는
그 설명을 다 끝내고 수화기를 놓고 나서야 우리들의 시선을 알아차린다.
"저~ 좀 목소리가 컸나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보니 우리 사무실에선 서로 누가 중증인지에 관해
가끔씩 키재기를 하기도 하곤 했다.
여하튼 이 강사병은 통신에 빠져있는 지금도 여전해서,
누가 무엇인가를 물어보기만 하면, 대화방에서 열심히
수다를 떨다가도 쪽지로, 일대일로, 그리고도 모자르면 전화를
동원해서까지 설명을 해야만 하는데,
나의 통신친구들은 이러한 내 성격을 잘 아는터라,
요즘은 "나 누가 모 물어봐서~~ 잠깐~~" 하는 한 마디면
아예 포기하고 만다.
음 이것도 직업병이 분명한데,,
어떻게 산재처리는 안될런지..
나의 강사병이 나를 휘두를때 가끔씩 생기는 무안함과 민망함의
정신적인 보상은 누가 해줘야 하느냔 말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지금 우리 언니가 물어보는 말에
다시 강의톤으로 대답해야 하기 때문에
이 글을 맺어야만 한다.
- 알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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