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있으려고 했지만(이런 분위기에선 다수 의견에 반대하는 의견을 냈다간 이지메를 당하기 십상이라서), 아래 어느분이 여기엔 찬성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을 거라고 단언 한 것을 보니 찬성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밝혀야 할 것 같아서요...
저는 귀여니 소설들을 읽지 않았고 따라서 팬도 아닙니다만...(하도 유명하길래 동네 대여점에서 몇쪽 뒤적여 보았더니 제 취향이 아니라서 덮었습니다.) 귀여니의 특례입학에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연전에 <야간비행 표절사건>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어느 돈 많은 집 학생이 유명 만화의 글 부분을 짜집기해서 자비 출판으로 <야간비행>이라는 소설집을 내고, 그것을 근거로 고대에 특기 입학을 하려다 좌절된 사건입니다. 그때 표절 사실을 제보한 것이 같은 반 학우들이었다는 얘기도 있었지요. 저는 그때 입학이 허용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명백한 표절이었으니까요.
귀여니의 경우는 그것과는 다르다고 생각됩니다. 돈 많은 부모 덕에 자비 출판을 한 것도 아니고, 상업적 가치를 인정받아서 책이 나왔고, 그 재미를 인정한 많은 독자들이 책을 사주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많은 독자들을 즐겁게 해주었다는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아가사 크리스티가 자신의 집필 목적을 "나는 내 독자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쓴다"고 했던 것에 저는 감명받았답니다.)
공부하지 말고 '소설이나' 써서 대학 가자는 식으로 냉소하는 이들도 많지만, 귀여니가 '소설이나' 썼다고 해서 입학이 허용된 것은 아니지요. 소설을 썼기 때문이 아니라 그 소설들이 베스트셀러가 된 작가이기 때문이지요.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많은 대중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고, 이는 대중문화의 꽃이라는 영화계에서도 매우 높이 평가받고 있는, 그러나 매우 귀한 재능입니다. 그 재능을 인정하여 입학을 허용한 것이지요.
수능을 안보고 대학에 가는 것이 부당하다는 식의 말도 있는데...
수능점수에 의해서만 대학에 갈 수 있다면 특기니 특례니 하는 입학방식을 따로 마련할 필요가 없겠지요. 수능이나 내신 같은 시험점수로 평가할 수 없는 가능성을 평가하기 위해 이런 제도가 생긴 것 아니었던가요? 그래서 경직된 입시제도를 개선한 바람직한 시도로 받아들여지기도 했구요.
(이우혁님이 나도 받아주겠느냐고 질문한데 대해선 참 의외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당연히 받아줄 것 같아서요. 이우혁님 정도라면 대부분의 학교에서 환영하리라고 생각되니까요. (대부분이라는 말을 쓴 것은 학교나 학과에 따라서는 창작을 달가와하지 않는 곳도 있기 때문입니다. 창작보다는 학술적인 연구를 중시하는 학풍을 가진 곳도 있으니까요.) 마찬가지로, 무협소설 작가도 충분히 같은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장안의 화제가 된 작품을 잇따라 써낸 작가가 있다면 그 특기를 살려서 입학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국어파괴라는 비난에 대해서...
불과 몇 쪽 넘겨보았을 뿐이지만, 이모티콘을 사용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문장이 특별히 엉망이었다는 기억은 안 나는군요. 대부분의 인터넷 소설이나 대중소설들이 그리 빼어난 국어구사력을 보이고 있지 않은 형편이라서 더욱 그랬던 것 같네요. 이모티콘 빼고 읽으면 평범한 책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모티콘이 국어의 일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저는 이모티콘은 '기호'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언어나 문자도 기호이긴 하지만... 언어와는 다른 체계의 기호라고 보고, 그것이 언어를 보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삽화가 이해를 돕는 역할을 하고 시각적인 면을 더해주는 효과를 내듯이...
귀여니가 연대에도 지망했다는 소문이 있더군요. 저는 연대 입학설을 먼저 들었는데 그때 떠오른 생각은 "역시 연대!"라는 것이었습니다. 고대나 서울대에 비해 훨씬 자유분방한 학풍을 가진 연대니까 그렇겠지... 하는 생각이었지요.
그런데 성균관대라니! 저는 정말 반가웠습니다. 가장 고루한 학교, 정문을 들어서면 '가족법 개정 절대반대' 어쩌구 하는 플래카드가 휘날리는 학교에서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었다니! 이제 성대도 뭔가 달라지고 있구나...
그런데, 그런 성대에서도 할 수 있는 생각을 젊은 인터넷 세대가 안하고 있다니 참 놀랍더군요. 저는 귀여니가 베스트셀러 대중소설 작가 자격으로 학생 아닌 강사(겸임교수니 뭐니 해서 현장의 경험을 살린 외부 전문가들의 강의가 도입되었지요.)로 특강 같은 걸 한다고 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소설은 아무나 쓸 수 있지만, 몇십만부 팔리는 베스트셀러는 아무나 쓸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대중문학도 문학의 일부로 인정받고 학술적으로 연구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으로서 이번 입학결정은 참 흐뭇했습니다.
성대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횡설수설 한번 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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