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이다. 우리나라의 일년 삼백육십오일 동안 내리는 강수량의 반 이상이 퍼붓는
장마철이다. 꼭 이맘때쯤이면 언제나 어김없이 장마가 찾아왔고, 그 장마에 더불어 곳곳에서 물난리를 겪곤 한다. 뿐이랴. 비록 침수가 되지 않는 지역이라 해도 매일매일 쏟아 부어대는 빗줄기에 괜스레 화를 내거나 태양을 보지 못해 안타까운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이런 이유 등으로 인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저 비가 오는 것이라면 몰라도 이렇게 쏟아 붓는 장마를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장마가 좋다. 비만 오면 우수에 젖는 로맨티스트도 아니고, 비오면 훈련을 안 받는 군인(물론 비온 뒤에 뒷처리가 힘들다고들 하지만)도 아니지만 나는 장마를 좋아한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뭐 무슨 일이든지 거창한 이유가 있어야 된다는 법은 없지만 나는 이상하리만치 아무 이유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장마가 좋다. 한 쪽에서는 장마로 인해 수해를 입는데 배부른 소리 한다고 할 지도 모르지만 좋은 걸 어떻하랴. 단지 퍼부어 대는 빗줄기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무언가 가슴이 뻥 뚫리며 시원해 지는 것 같아 좋을 뿐이다.
꼭 장마철이 아니더라도 나는 평상시에 구름끼거나 비가 오는 날씨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렇다고 비를 맞는 것을 좋아하는 변태는 아니지만 어쩐지 우중충한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줄기를 보고 있노라면 온 세상이 모두 밝게 보인다. 실제로 나는 비오는 날에 화도 잘 내지 않을 뿐더러 평상시보다 더 유쾌해 진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도중에도 밖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다. 비가 오니 쓸떼없이 지껄어고 싶어져서 이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년에 보름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장마철은 더운 여름날 나에게 커다란 활력을 준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보면 난 아마도 전생에 지렁이나 달팽이가 아니었나 싶다.
비가 온다. 그것도 억수로 온다. 지금 쏟아 내리고 있는 빗줄기 하나하나가 돈다발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괴상망측한 상상도 해 본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을 보면 장마는 나에게 뛰어난 상상력을 안겨 주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시험도 비오는 날에 더 잘 봤던 것 같기도 하다.
이제 장마철이 새로이 시작됬다. 2003년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장마. 비를 싫어하거나 언제나 수해를 입는 지역에 사는 분들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나는 이번 장마가 어느때보다도 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치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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