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트호벤에서 뛰고 있는 이영표 선발 출전경기를 보니 어느새 시계는 새벽 4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시험이 끝난 이후로 간만에 느긋한 새벽을 보내고 있자니 괜스레 웃음이 나온다.
지난 일주일간 시험기간이라고 이리 뛰고 또 저리 뛰고 한 것을 생각해 보면 여유롭게 소프트빵이나 뜯으며 축구경기를 관람하고 있는 것도 참 신기하게 느껴진다.
벌써 오월이다.
계절은 완연한 봄으로 접어들어 낮에는 싱싱한 녹음이 우리 주변 곳곳에 녹아 들어 있고 점심을 먹고 난 후에는 유혹처럼 뻗쳐오는 식곤증을 물리치느라 힘겨운 투쟁을 벌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나에겐 그런 여유를 느낄 시간이 없다.
아침 0교시 부터 시작해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학원 다니고... 소위 말하는 '별보기운동'이 나의 일생이 된지 오래다. 그나마 1학년때는 여유가 있었지만 고2로 올라온 이후에는 대입이라는 대한민국 특유의 거센 압박감에 밤잠마저 설칠 지경이다. 그런 상황이니 오월이 어쩌고 봄이 어쩌고 하는 소리는 나에겐, 아니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에겐 사치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연휴를 맞이해 간만에 잠시 뒤를 돌아볼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너무 틀에 박힌채로만 살아왔다. 내 나름대로의 개성은 전혀 찾아볼수 없는...
그런 와중에서도 무협이라는 일탈은 나에게 커다란 힘이 되었다. 때에 절은 옷을 깨끗이 해 주는 표백제 같은 역을한 한다고나 해야 할까? 아니면 지친 대지위에 고요하게 흐드러지는 달빛같다고 해야할까...
어쨌든 개학 이후의 삶동안, 나의 일상은 같은 패턴의 연속이었고 무협은 틈틈이 그 패턴속에 이지러진 나의 마음을 가볍게 보듬어 주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내 옆에는 무협소설 두 권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비록 휴일을 맞아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있지만 이미 무협이란 것에 중독된 나로써는 딱히 해독할 방법이 없기에 이런 쉬는날에도 무협소설을 읽는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무협을, 판타지를, 혹은 모든 책을 읽는 이유가 단순히 재미를 떠나서 나름대로의 무엇이 있기 때문일 거라는... 나같이 힘든 일상을 잊기 위해 읽는 사람도 있을 터이고 문학(혹은 장르문학)이라는 것에서 다른 사람이 느끼지 못하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렇게 나는 어느정도 유사성은 있겠지만 전 세계의 모든 인류가 각기 나름대로의 이유와 개성때문에 책을 읽는다고 생각된다. 그렇더라도, 나름대로 나는 지금 나 나름대로의 문학을 정의할수 있을 것 같다. 재미와 동시에 하루하루의 고달픔을 잊어가는...
이제 도시 저편에서 어둠을 살라먹으면서 어슴푸레 새벽이 밝아오고 있지만, 나는 이 밝아오는 아침이 그리 반갑지 만은 않다. 새로운 생명이 부활함과 동시에 나는 또 같은 일상의 반복을 맛보아야 만 하기 때문이다. 물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기까지 이틀이라는 시간적 여유가 있지만 그것은 잠시간 주어진 휴식일뿐, 언젠가는 다시 학교생활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더라도 이젠 어느정도 그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전에는 몰랐지만 문득 무협이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지금은 무협이 곁에 있다면 충분히 하루하루를 버티어 나갈 수 있을 법 싶다. 물론 현실과 소설을 구분 못할 정도로 빠지만 안되겠지만 말이다.^^
아아, 내가 잠시 미쳤었나보다... 이제 자야겠다... 내일, 아니 오늘은... 간만에 원없이 무협소설이나 잔뜩 읽어야겠다.
-잠시 미친 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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