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흔히 듣는 소리 중에 개천에서 용나기 힘들다 라는 말이 있죠.
그런데 재밌는 것은 이십여년 전에도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개인적 경험을 조금 말씀드려 보자면,
우리집은 현재 살고 있는 곳으로 이사 오고,
전에 살던 왕십리 주택가격이 굉장히 많이 올랐습니다.
1년만 늦게 이사 왔어도 상황이 크게 달라졌을 만큼의 집값 변동이었습니다.(약2배)
2000년대 이후로 집값이 이슈가 되는 것은 주택 보급율이 높아
인지하는 국민의 수와 범위가 넓어져서이지 사실 그전에 훨씬 더 가격오름폭이 컸습니다.
그때가 80년대초반이었죠.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때 부모님께서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리 발전하진 못한
비교적 낙후된 지역이나마 약간의 빚과 함께 집을 사서 왔다는 점입니다.
이후 고등학교 다닐 무렵에 신도시 관련해서 땅 사자는 분위기가 있어서
부모님이 알아 보러 다니고는 이미 크게 오른 땅이니
가족들은 반대를 해서 사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이미 두배 올랐는데, 다시 거기서 열배 더 올랐습니다.
학교에서는 통장을 만들라고 했죠. 이자가 약 12%정도였던 것으로기억합니다.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면, 고도경제발전 시대에 열매를 거둔 사람들의 수는 적지만 그렇게 아주 적진 않았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기회는 많았는데 잡지 못하거나 놓친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죠. (정보에만 밝으면 여러번 겹쳐 잡는것도 어렵지 않았는데 그수가 소수, 한두번 운이 좋아 잡은 경우까지 포함한 수는 꽤 되고, 다시 한번도 제대로 잡지 못한 수는 그때나 지금이나 가장 많다는 말입니다)
10만원짜리 땅이 20만원이 되서 비싸다고 생걱했는데, 몇년되지 않아 200만원이 넘고 다시 지금은 얼마인지도 모를정도로 오를 줄이야.
제가 살던 동네가 낙후된 지역임에도 20만원(90년대 초중반)이면 누구라도 그리 구입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금액이었습니다.
정보에 빠른 사람은 큰 이득을 얻기도 했습니다. 제가 다닌 고등학교는 비교적 잘사는 집안이 많았는데, 잘 다니던 친구 하나가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 축에 속했던 올림픽 아파트를 팔고 신도시로 이사가길래 이상하다 생각하고 말았는데, 돌이켜 보니 정점을 찍었던 시기에 집을 팔고 신도시로 가서 또 대박을 친 경우더군요.
고도 경제발전시기에 이렇게 여러 기회가 있었고, 정보에 밝은 이들은 지금은 쉽게 생각하기 힘든 정도의 엄청난 이득을 봤습니다.
그런데 이를 바꿔 말하면 그 열매를 왕창 딸 수 있었던 이들은 극히 소수고, 다시 얼마간 거둔 이들은 수가 꽤 되지만, 그 보다 조금더 많은 사람들이 거의 제대로 된 이득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베이비부머 세대 중 일부는 요즘 청년들이 힘들 다는 소리를 무슨 엄살마냥 생각하기도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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