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판타지나 무협과 함께 현대판타지라는 장르의 소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판타지의 마법이나 무협의 무공은 그냥 뿅하고 나타나서 와장창하면서 효과를 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죠. 기껏해야 디앤디 룰북이나 김용무협체계에 의한 딴지 정도나 있을까... 애초에 창작물이니 그러한 이상한 효과를 내는 것에 대한 지적을 하지 않는 것이 보통입니다. 마나니 기니,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니 논리가 먹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현대 판타지에서는 얘기가 다릅니다. 현대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일들은 근거를 필요로 합니다. 왜냐면 우리의 일상 속에서 일어날 법한 환상적인 일들을 그려내는 것이 현대 판타지니까요.
가장 편리한 것은, 그러한 ‘이상한’ 일의 근거를 ‘신비’에 두는 것입니다. 주인공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다면 램프의 요정 지니를 만들어주면 되죠. 현대를 배경으로 치고박고 싸우는 화려한 전투를 그리고 싶다면 그냥 달이 두개 뜨고 이능력 한두개 주면 됩니다. 갑자기 던전이 생겨나서 전투를 할 수도 있겠죠. 꿈을 꾸고 났더니 게임능력치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읽기 불편한 것은. 그러한 신비를 현실로 억지로 끌어오려는 일에 있습니다. 마나니 기니 사실 말이 안되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러한 개념을 믿고 싶고 그런 특수한 개념의 힘을 마음속으로 바라고 있죠. 이러한 것은 소설 한정의 열역학법칙의 0,1,2,3 법칙을 넘어선 4법칙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새로운 법칙을 가상으로 창조함으로써 다른 법칙의 예외적인 상황을, 소설 내에서의 완성된 법칙인 4법칙에 의해 용인해주는 것과 같죠. (예를 들어 1서클 마법사는 1서클 마법을 쓸 수 있다와 같습니다. 뜬금없이 1서클 마법사가 9서클 마법을 사용한다면 그 것은 신비를 떠나 소설 내 법칙을 이지러뜨리는 상황을 야기하죠)
그러나 신비를 현실로 끌어올 때 여러가지 전문지식을 ‘잘못’ 사용할 때는 다릅니다. 이 것은 4법칙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1법칙인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에너지 줄줄샘의 법칙’으로 마음대로 바꿔버리는 것과 같죠. 갑자기 주인공의 힘이 세질 수 있습니다. 번개를 맞고 유전자 변형이 와서 힘이 세졌군요. 여기까지는 뭐 좋습니다. 번개를 맞고 살아난 사람도 많고, 순간적인 충격에 의해 극히 드문 확률로 유전자 변형이 와서 그럴 수 있다 - 라는 것을 떠나 이는 매우 오래되고 고전적인 소재지요. 그런데 이를 갑자기 전문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번개를 맞았는데 세포내의 미토콘드리아가 갑자기 일을 열심히 합니다. 제어코돈이 사라졌군요. 그래서 근력이 무한정 생성되어 힘이 세진 것입니다.
대체 이게 무슨 설명일까요. 그냥 번개맞아서 힘이 세졌다고 하면 그만 일 것을 왜 잘 알지도 못하는 이상한 전문지식을 가져와서 글을 망치는 것일까요? 작가 개인은 작품의 논리를 더했다고 생각 할 지도 모르지만, 해당지식이 조금만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얼토당토 않은 말인지 알 수 있죠.
소설에 전문지식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은 좋습니다. 4법칙이 탄탄하면 탄탄할수록 매니악한 독자들에게는 지지를 받죠. 해당 필드의 사람들에게도 오 그럴 수 있겠다- 라는 공감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 논리적으로 보이고 싶어서 한두마디 더하는 전문지식은 글 자체를 보기 싫게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는 점을 작가님들 꼭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특정 작품이 이 글을 쓰는데 영감을 주었지만 해당 작품의 작가님께는 큰 유감이 없으므로 작품 언급은 지우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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