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저녁치고는 이상하게 연담란이 한산하군요.
한달 반 만에 올리는 한담, 이번에는 판타지 소설 속의 술 이야기로 시작하겠습니다. 지난주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온 보졸레를 홀짝이다 생각나 두드려 본 잡설입니다.
비단 장르문학뿐만 아니라, 대개의 소설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재 중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단연코 술이 아닐까 합니다. 많은 판타지 소설에는 주인공(혹은 그의 일행들)이 펍Pub에서 술(주로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더군요)을 마시며 담소하는 장면이 적어도 한두 번 정도는 등장하고, 술버릇이 매우 고약하거나 특이한 등장인물이 출현―예를 들어 [쥬신의 꿈], [스피릿 솔저]등 작품을 쓰신 나반님의 소설 [더 퍼스트]의 등장인물들 중 정령술사 코니 같은 경우, 술에 취하면 다짜고짜 정령을 소환해 주변을 난장판으로 만들죠―하거나, 술에 관련된 에피소드―역시 [더 퍼스트]에 나오는, 상민 일행이 마을 주점에서 벌이는 폭탄주 마시기 시합 같은―도 등장합니다. ‘주인공이 주점에 멀뚱하니 앉아 물만 마시는’ 밍숭맹숭한 내용의 소설 같은 걸 지금까지 본 적이 없고 보면, 위의 세 가지 항목을 ‘판타지 소설에 술이 등장하는 형태(내지는 경우)’의 일반론으로 받아들여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위에서 ‘술’이라는 소재가 등장하는 방식 따위를 살펴보았으니, 이제는 소재의 기능에 대해 생각해 볼 차례입니다.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술의 기능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우리가 술을 마시는 이유를 먼저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술을 마시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 친목‧단합의 의미에서 친구(내지는 동료)들과 함께 마시기도 하고―단합 하니까 모 고등학교 2학년 하반기 단합대회의 무시무시했던 기억이 떠오르는군요. 10시간동안 먹고, 마시고, 토하고, 자고, 다시 일어나 마시고를 반복했던, 그리고 결국은 전원이 걸쭉한 토사물 위를 굴러다녔던―, 즐거운 일이 있을 때 흥을 돋우기 위해―잔치에 술이 빠지면 그게 무슨 재미일까요―마시기도 하고, 음식의 맛을 돋우기 위해―수산시장에서 사온 홍어회, 집에서 담근 묵은 김치, 어머님께서 삶아주신 수육, 거기에 탁주 한 동이면 그냥 끝내주죠―마시기도 하고, 격한 감정을 삭이기 위해―이건 개인적으로 비추입니다만―마시기도 합니다. 이 밖에도 기타 등등, 술이 목구멍을 넘어가야 할 이유는 많고도 많습니다. 하긴, 언제는 이유가 없어서 술을 못 마셨겠습니까마는.
신은 인간을 만들었지―
거품처럼 연약하게.
신은 사랑을 만들었지―
사랑은 고통을 만들었다네.
신은 포도나무를 만들었지―
그것은 죄일까,
인간이 포도주를 만들어
그 속에서 고통을 잊으려 한 것이?
<와인전쟁[2002년 도서출판 한길]에 수록된 포도주에 대한 작자 미상의 시>
(……이렇게 "마음이 아프니까 술을 마시는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보이죠)
판타지 소설에서도 술을 마시는 이유는 비슷합니다. 돈 많은 주인공들은 즐거운 일이 있을 때 “오늘 내가 이 집 술 다 산다!”며 예정에도 없던 동네잔치판을 벌이기도 하고, 식사 때 반주삼아 가벼운 술 한 잔을 곁들이기도 합니다. 기분이 안 좋을 때 말 그대로 ‘목구멍에 술을 때려 붓는’ 등장인물들도 심심찮게 등장합니다(뱀 발입니다만, 앞으로 술을 배우실 분들이 제 잡설을 읽고 계시다면, 기분이 안 좋을 때 술로 푸는 건 절대 비추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몸에도 안 좋을뿐더러, 그건 ‘감정을 푸는’게 아니라 단순히 ‘마시고 잊어버리는’ 현실도피행위일 뿐입니다).
하지만 대개의 판타지가 배경으로 삼고 있는 중세의 경우, 위에 언급된 사항들은 단지 ‘부차적인 이유’에 불과합니다.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당시에는 술이 ‘확보 가능한 거의 유일한 음료수’였기 때문에 어린애건, 여자건, 노인이건, 술을 물처럼 마실 수밖에 없었던 탓입니다.
고대 로마의 멸망은 동시에 사회간접자본 시설의 죽음을 의미한다고, 시오노 나나미 여사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말했죠. 그 말마따나 고대 로마 멸망 이후 ‘잘 정비된 상하수도’라는 물건이 다시 세상에 등장하기까지는 문자 그대로 천 년을 훌쩍 넘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중세의 거리풍경은 비위생과 불결의 극치라 할 수 있습니다. 창문 밖으로 요강을 비우는 아낙네들의 모습이라거나, 하이힐을 신고 ‘지뢰밭’을 살금살금 피해 다니는 높으신 어르신네들의 모습 따위, 듣기로는 굉장히 익숙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거리 아래에 당시의 ‘상수도관’이라 할 만한 나무 관이 묻혀 있었습니다. 수도관으로 쓰기 위해 무슨 특수한 처리 같은 걸 한 것도 아니고, 그저 나무의 속을 파내어 관을 만들었을 뿐입니다. 당연히 거리의 오물들이 그 안으로 스며들어 물을 오염시키고, 가장 깨끗해야 할 상수가 졸지에 오염의 온상이 되어버립니다. 어차피 상수의 원수原水도 더럽기는 매한가지입니다. 당시의 상수도는 깊은 산속의 수원에서 물을 끌어오는 고대 로마의 수도가 아니었고, 현대의 상수원보호구역 개념은 꿈에도 찾아볼 수 없는 시대였습니다. 온갖 오물들이 흘러든 강물을 상수로 끌어와 사용했으니, 수도관에서의 오염이 아니더라도 그 더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겠죠. 때문에 인구밀집지역에서 ‘깨끗한 물’을 마시기란 당시에는 요원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때문에 유일하게 믿고 마실 만 한 음료는 주류였죠. 어느 사이트에서 맥주 순수령이란 일종의 ‘먹는 물 보호법’이었다는 얘길 들은 기억이 나는군요.
위에서 술을 마시는 이유에 대한 이야기도 얼추 두드려 봤으니, 이제는 제 이야기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내용 전개에 두서가 없지만, 그저 잡상일 뿐이니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많은 판타지 소설에 ‘술’이라는 소재가 등장했지만, 의외로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한 소재가 또한 ‘술’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음식의 맛과 종류의 다양함에 대한 언급이 등장하는 소설은 읽어 봤어도, 술의 맛과 종류의 다양함을 언급한 소설을 읽어 본 경험은 거의 없다시피 하거든요. 쥬논 님의 소설 ‘앙신의 강림’에서 주인공이 ‘푸아그라 같은 전채 요리에 대해서는 브뤼 샴페인이나….’ 하는 식의, 와인 입문서에서 베껴 온 것 같은 주류 관련 상식을 늘어놓거나, ‘치트맨(작가님은 기억 안 나고, 출판사는 서울북스입니다. 조아라에 ’혹세무민‘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됐다더군요)’에서 주인공이 ‘술 마시는 법(그러니까 주도酒道 되겠습니다)’에 대해 언급한 경우는 극히 예외적인 사례에 불과합니다. ‘더 로그’에서 시원한 비터 에일(Bitter Ale: 직역하면 ‘쓴 맥주’ 정도 되겠습니다. 뱀 발을 붙이자면, 영미 권에서 Ale은 거의 사어死語가 되었기 때문에 맥주를 Ale이라고 부르면 ‘너 지금 개그 하니’ 정도의 반응이 돌아온다는군요)을 쭉 들이켠 하드보일드 공주님이 ‘맛이 걸레 빤 물’ 운운한 건 차라리 양반이죠. 그저 술을 마시고 ‘시원하다’, ‘알딸딸하다’면 끝입니다.
술의 종류에 대한 부분도 그렇습니다. 대개의 판타지 소설에서 ‘술’하면 맥주나 와인으로 끝이죠. ‘폴라리스랩소디’에서 림파이어 형제기사들을 즐겁게 한 사과술Cider이나, ‘하울링’에 등장한 ‘쌀알 맛이 느껴지는 탁주’는 극히 드문 예외사례입니다.
제 생각입니다만, 술만큼 그 지역의 문화와 자연환경을 잘 드러내는 물건도 참 드물지 싶습니다.
우선은 자연환경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모름지기 술이라 함은 미생물(효모라던가, 누룩이라던가)에 의한 알코올발효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공업적으로 정제된 에탄올을 물에 타먹는다거나 하는 따위의, 그야말로 ‘막장’이라 할 만한 경우는 고려하지 않겠습니다, 절대로. 웩). 그런데 발효의 주체가 되는 미생물들은 그 종류가 다양할뿐더러 ‘생명체이기 때문에’ 환경의 영향을 절대로 피해갈 수 없습니다. 게다가 그 미생물들의 예민함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이라, 술이 익고 있을 때 술독을 조금 옮기기만 해도 그 환경변화가 미생물에 영향을 미쳐 술 맛이 변한다고 할 정도라는군요.
또한 술을 담그는 재료는 자연에서 얻어지는 농작물들이죠. 현대에는 하우스재배의 일반화와 물류시스템의 확충으로 전국 어디에서나 계절과 기후에 상관없이 양질(…이 표현은 조금 고려해 볼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의 다종다양한 작물을 즐길 수 있지만, 옛날에는 어디 그랬습니까? 그저 열심히 농사지어서 먹고 남은 작물이 있으면 술을 담그고, 그 지역 안에서 소비되는 식이었죠. 일례로 우리는 프랑스 하면 와인의 나라를 떠올리지만, 그 안에서도 다양한 종류의 술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노르망디 지역에는 과수원이 많아 예로부터 맛좋은 사과술을 많이 생산했으며, 알프스 인근에서는 산에서 나는 약초를 이용해 약술(리큐르, 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알퐁스 도데의 단편집에 나오는, 술을 마시다 오히려 술에 먹혀버린 신부님 이야기의 그 술입니다)을 담갔다고 합니다. 독일 지역에서는 맥주가 주류酒類의 주류主流로 자리를 굳히고 있는데, 이는 독일의 서늘한 기후가 포도 재배보다는 맥주보리 재배에 적합했기 때문이라고 하죠.
위의 내용과 중복되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또 한 가지 언급하자면, 농작물의 생장은 자연환경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법입니다. ‘추운 기후에서 재배되는 독일 와인은 포도가 지나치게 익은 후에 수확되는 경향이 있어 맛이 달다’거나 하는 식의 차이는 이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죠.
다음으로 인문환경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인문환경이라는 딱딱한 용어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저는 뭐 학술적이고 복잡한 내용까지 파고들어갈 것 까지는 없이, 그저 해당 지역의 역사, 종교, 문화 같은 것들을 간략하게나마 언급하겠습니다.
유럽의 주요 포도주 생산국가 하면,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를 꼽을 수 있습니다(독일에서도 유명한 모젤 와인이 생산되지만, 워낙에 ‘독일=맥주’라는 등식이 확고부동하게 자리매김하고 있으니만큼 일단은 열외로 하겠습니다). 이들 국가를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이탈리아 본토야 말할 필요도 없이, 지금의 프랑스(당시에는 갈리아로 불렸습니다), 스페인(히스파니아로 불렸죠) 땅은 모두 로마제국의 영향권에 속해 있었습니다. 덧붙이자면 현재 독일에서 포도재배가 이루어지는 지역은 과거의 로마제국 영토와 거의 일치한다는군요.
2. 북유럽에서 종교개혁과 이어진 종교전쟁이 몰아치는 동안에도 교황청이 있는 이탈리아 본토, 사람백정 국왕전하가 신교도들을 쳐 죽였던 프랑스, 수도원 운동이 일어난 스페인 등에서는 구교가 여전히 세력을 떨쳤습니다. [혹시라도 내용상의 오류가 있거나 미진한 부분이 있으면 지적해 주세요] 뭐 포도주와 빵을 피와 살에 대응시키는 거야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까.
위에서 언급한 국가들이 포도재배를 많이 하는 건 기후조건이 적합한 탓이 크겠지만, 역사와 문화적인 영향 또한 무시할 수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국내에서는 (굉장한 ‘로마빠 -_-;;’ 이자)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의 저자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 여사님의 책을 읽어보면, ‘로마인들은 정복지마다 포도나무를 심었다’는 애기가 나오죠. 그리고 포도주에 (뭐나 묘하게 카니발리즘Cannibalism의 냄새가 물씬 풍겨 나오는)의미를 부여한 기독교는 로마제국 말기에 공인되었고 말입니다. 뭐 이걸 가지고 복잡 난해한 학술토론과 역사 및 인문사회 강좌 같은 걸 시작할 생각은 없고(그런 건 좋아하지도 않을뿐더러, 설혹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능력이 없습니다), 그저 ‘과거에 있었던 사건이 현재에 이렇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하는, 매우 단순하고 흥미 위주의 이야기를 해 보자는 겁니다.
그러니까 포도주 좋아하는 로마인들이 포도주를 빚어 마시기 위해 정복지마다 포도나무를 심었고, 그들이 만든 포도주를 마셔 본 현지인들도 덩달아 포도주를 좋아하게 되었고, 더군다나 포도주는 종교적으로도 의미 있는 음료가 되었기 때문에, 로마인들이 사라진 뒤에도 현지인들에 의한 포도재배가 계속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라는 식의 이야기죠.
이렇게 한 잔 술에도 역사가 담겨 있고,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이는 비단 지금까지 열거한 외국 술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우리나라 전통 소주의 역사를 찾아가다 보면, 몽골과 고려의 치열했던 전쟁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죠.
술을 마시면서 그 지역의 자연을 느껴보고, 역사와 문화의 향기를 느껴 보는 것은 나름 의미 있고, 더불어 재미도 있는 일 일겁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술’이라는 소재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가 나온 소설은 지금까지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언젠가는 술의 향기가 느껴지는 판타지를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하며, 이만 두서없고 난삽한 저의 잡상을 마칩니다.
즐거운 토요일 저녁 보내시길 바랍니다(한잔의 여유가 함께한다면 더 좋지 않겠습니까?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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