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딱!
제법 질이 좋은 고목나무로 만들어진 튼실한 대국판 위로 검은 흑돌이 공성을 찌르며 경쾌한 소리를 울리고 있었다.
"허허허... 이 녀석! 가히 신수라 할 수 있겠도다!"
파죽지세로 몰아치는 손자 녀석의 한 수에 노인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아껴두웠던 비장의 한 수를 썻다!
- 딱!
"끄응..."
소년 구운룡은 인상을 찌푸렸다.
백돌은 마치 전세를 장악한 소년의 기세를 교묘히 피해가며 전란의 중심으로 떨어진 것이다.
선뜻 공격하기에도 그렇고...
그렇다고해서 지금의 전세를 물러서자니...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꺼름칙한 여운을 남기고 있었다.
그래도 소년의 표정은 진지하여 이내 곧 작은 고사리같은 손으로 흑돌을 전세의 중앙으로 놓았다.
'요원지화(燎原之火)라! 이미 대국의 승기는 들판에 퍼져나가는 불과 같이 나의 승리가 확실하다! 이대로는 물러설 수 없어!'
하나, 소년의 작은 가슴에는 타오르는 불꽃이 일며, 지금의 전세를 더 몰아붙이는 형국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렇게 노인과 소년의 대국은 한참을 이어갔다.
.
.
.
"져...졌습니다."
"허허허, 녀석 표정하고는...!"
"......"
"쩝! 비록 대국에서 내가 이기긴했으나, 네 녀석이 원하는 소원을 내가 한 번 들어주겠노라! 너의 소원은 무엇이더냐?"
대명 천지 아래 어릴적부터 천재라 불러졌으며, 대국에 있어서는 감히 신수(神手)라 일컫는 자신이 대국에 패하게 되자, 어린 자존심에 금이 간 것인지, 구운룡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강호라는 곳에서 조부님의 명성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소년의 말에 노인이 다시 한 번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게슴츠레 뜨여진 눈으로 손자를 바라보았다.
"허허허, 그래서?"
"그래서... 감히 조부님의 강호무용담을 직접 경청하고 싶은 것이 손자의 소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무용담이라..."
- 꿀꺽.
구운룡의 목구멍으로 마른 침이 겨우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졌다.
"......"
"너는 강호가 어떠한 곳이라 생각하느냐?"
"손자가 알기로 강호라는 곳은 능히 하늘을 날고 일신의 힘으로 산을 부순다는 범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자들이 모인 세상이라 알고 있습니다.
"훗! 네가 생각하는 강호가 그러하다면 그것이 정답이겠구나!"
"그래서, 감히 조부님께 청언할진데, 손자는 문(文)이 아닌 무(武)의 뜻을 두고 강호라는 세상을 한 번 알아보고 싶습니다."
소년 구운룡의 곧은 의지가 담겨진 일설이 내뱉어지며 노인은 자신을 향해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손자를 바라보았다.
손자의 똘망한 눈빛속에서 과거 자신의 모습이 비쳐지는듯, 확고한 의지와 열정이 우러난 기백이 어린 소년의 눈빛에 담겨져 있었다.
"흐음...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볼까나..."
"......"
"옳지! 내가 처음 그 분을 만났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면 되겠구나!"
소년의 고개가 잠시 갸우뚱거렸다.
대체 강호무림에서 도제(刀帝)라 일컫는 조부께서 말하는 그 분이 누구를 뜻하는 말인지 궁금했었다. 이미 강호무림의 최강자로 군림했었던 조부의 명성은 어릴적부터 익히 듣고 자라왔었다. 비록, 문가(文家)의 자식이라 강호에 대한 상식은 부족하였으나, 구운룡에게는 늘 지금까지 자신의 조부를 존경한 경외의 대상이었던 것이었다.
"녀석! 엉뚱맞은 표정이라곤! 할애비의 얘기가 그렇게 궁금하더냐? 그럼 너에게 강호라는 세상의 얘기들을 들려줄테니 잘 듣고 있거라."
"손자, 조부님의 말씀을 경청 하겠습니다.!"
"허허허; 뭐 경청이라 할 것까지야..."
강호무림의 최강자라 일컫는 도제의 시선이 언뜻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 가을하늘을 바라보며구 쓴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강호(江湖)라... 이미 잊혀진 이름을 오랜만에 다시 들어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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