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역사물을 나름 재미있게 보는 독자의 입장에서 그동안 이 장르의 문제로 생각해온 것 하나를 지적하렵니다.
그것은 기술결정론입니다. 기술만 뛰어나면 세계최고가 될 수 있다는 가정을 상당수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까요? 사회과학의 여러분야에서 그동안 연구되어온 것을 보면 그렇지 않다입니다.
우선 경영학의 연구에 따르면 기술만 뛰어나다고 시장을 제패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술보다 먼저인 것은 조직의 운영을 어떻게 하는가이고 시장을 판단하는 전략적 견지가 어떠한가입니다. 그런 다음 기술은 그 조직력과 판단에 따라 채택되는 것입니다. 기술만 뛰어나다고 시장을 제압한 기업은 없습니다.
둘째 군사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몇가지 예가 가능합니다. 미국 인디언과 미국정부군의 전쟁에서 기술적으로 덜떨어진 인디언이 일방적으로 밀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영국군의 역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전쟁이었던 줄루족과의 전쟁도 영국이 더 많은 병력과 더 뛰어난 기술의 무기를 대량으로 투입했지만 참패했습니다. 조직력과 전술의 문제였습니다.
이것이 대체역사와 무슨 상관인가? 상관이 있습니다. 대체역사에서 많은 수가 배경으로 삼는 임진왜란 시점을 봅시다. 동북아의 기술문명은 채륜이 종이를 발명한 때부터 명의 건국 이전까지 세계최고였습니다. 그 이전은 전성기 로마제국이 더 우위에 있었습니다.
그런 기술력의 차이를 낳은 것은 전반적인 문명의 정보유통량에 의해 결정된 것입니다. 로마제국은 오리엔트문명의 상속자인 헬레니즘 문명의 모든 유산을 모아 안정적인 정보유통이 가능한 장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장의 안정성이 무너지면서 수준이 낮아졋습니다. 파피루스 공급이 불안정해진 것이 결정적으로 추정됩니다.
그에 반해 중국에서 종이가 발명된 이후 한자라는 극악의 문자에도 불구하고 동북아의 정보유통속도는 급상승합니다. 그리고 정보유통속도와 축적량은 문명전체의 수준의 상승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명의 건국이후 중국의 문명수준은 서구에 의해 추월당합니다. 왜일까요? 두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 잇습니다.
명의 전제적인 정치구조입니다. 명의 정치는 안정이 최우선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사상과 기술, 경제구조의 변화를 억압했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꼽을 수 있는 것은 사농공상이라는 계층질서의 고착화입니다. 상공업을 우대한 원의 체제하에서 가장 피해를 많이 본 것은 한인 지주계층이었습니다. 상공업의 비중이 높아지면 농토를 근거로 권력을 행사하는 지주계층의 기반이 약해집니다. 정화의 원정에 적대적이었던 것도 원나라 시절의 해외교역으로 피해를 본 지주계층의 반감이 컸습니다. 지주계층의 헤게모니가 강화되면서 원나라 시절 정책에 대한 반동이 강화되었던 것이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오면서 한반도에서 일어난 것과 유사합니다.
명의 건국을 전후한 시기를 봅시다. 화약무기를 예로 들면 기술이 없던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억압당했기 때문에 사그라 든 것입니다. 그리고 항해술을 예로 들면 정화의 원정은 당시 중국의 항해술이 세계최고라는 것을 증명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매장당했고 신대륙까지 갈 수 있었던 항해술은 사라졌습니다.
대체역사에서 기술이란 외적 충격만 가하면 시스템의 균형이 달라질 것으로 가정합니다. 그러나 사회시스템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습니다. 기술은 그것을 활용하는 내적필요가 있어야 유지됩니다. 기계식 시계는 이미 중국에서 10세기에 만들어졌었지만 잊혀졌습니다. 코크스를 이용한 제철기술도 송나라때 완성되어 이용되었지만 사라졌습니다. 화약을 만들고 대포를 실용화햇지만 명나라때면 다시 불랑기란 이름의 서양대포를 수입해야 햇습니다.
그러한 기술들이 사라진 것은 그것을 계속 사용할 시스템적 요구가 뒷받침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치권력과 사회적 계층의 알력에 의해 정보유통속도가 강제로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시스템적 시각을 가지고 있는 대체역사물은 드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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