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21개월된 둘째 아이가 다쳤습니다.
러닝머신에 손이 끼어 화상을 입었네요. 지금은 어느 정도인 지 상태를 알 수 없고 1주일쯤 지나봐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3도 이상으로 판명되면 피부이식 수술을 받아야 된다네요. 훔.. 늘 쓰는 글에서 사람 하나 죽어나가는 일은 다반사인데.. 막상 작은 화상도 내 아이에게 일어나니, 보통 마음 아픈 게 아니군요. 도무지 소설을 쓰고 있지는 못하겠고, 늘 글 쓰던 시간이라 잠은 안 오고.. 그냥 주저리주저리 해볼까 해서 자판을 만집니다..
음.. 어느 사이트에서 어느 작가님이 쓰신 글을 읽었습니다..
프로를 꿈꾸는 후배들을 위한 조언 말씀이었는데.. 원래 취지는 훨씬 좋은 뜻이었는데, 취지를 생략하고 내용만 간단히 추려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조회수가 뚝뚝 떨어진다.. 이유는 간단하다.. 재미를 잃어가는 것.. 많은 문제점이 있지만.. 무엇보다 필요 이상의 꿈을 꾸기 때문.. 왜 무조건 대작을 쓰려 하는가.. 왜 주연이 아닌 이사람 저사람의 불필요한 시점까지 다 끌어들이는가.. 주인공 위주로.. 컴팩트하게 글을 써야 한다.. 평균적으로 6권 이상은 불필요하다.. 필력의 증진을 위해서도 6권짜리 2질 완결이 12권짜리 1질을 쓰는 것보다 훨씬 도움이 된다..]
일단은 저 같은 경우,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올랐습니다.. 바로 제가 30권쯤 써보고 싶다.. 내가 만든 캐릭터는 다 내 글의 주인공.. 한편 한편 괜찮은 글인데, 왜 사람들이 포기하는 것인가.. 이렇게 우기고 있었으니까요..
다만.. 그 조언은 전제에서 언급한 바대로, 프로를 위한 작품의 최소 생존요건에 대한 글이므로 글쓰는 게 낙인 아마까지 얽매일 필요는 없겠지요.. 자기 쓰고 싶은대로 쓰는 것이 바로 아마의 낙이니까요.. 그래도 인터넷에 올려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을 목적으로 하다 보면 아마도 skill이란 측면에서 배울 점이 있는 내용이라 판단됩니다..
반면, 한가지 아쉬운 것은.. 대작이라는 masterpiece라는 말 자체가 아마추어이던 도제가 최초로 만든 작품이란 어원 아니겠습니까..? 순수한 열정을 간직하고 있는 동안은 다채로운 시도도 해볼 수 있는 것이고, 열 중 아홉이 실패하고 하나가 성공하면, 그로써 장르문학은 또 한단계 업그레이드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어떤 면에서 판무는 그 전형성 때문에 일부 보편적 마니아의 장르가 된 것이 아닌가도 생각해 봅니다.. 새로운 시도, 실패를 불사할 새로운 도전이 없다면, 작가들이 나눌 수 있는 파이 자체가 작아질 수도 있고.. 그런 면에서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결코 절대가치는 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실패가 불보듯 뻔해도 새로운 시도는 그 자체로서 존중해줄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사실, 글쓰신 분은 제가 무척 존경하는 분이고, 어떻게 보면 스스로 새로운 도전에 성공하신 분입니다.. 그 분의 관점에서 너무 무모한 도전으로 사장되는 안타까운 후배들 때문에 글을 쓰신 것이지요..
음.. 새로운 도전이란 차원에서 에뜨랑제의 성공 여부는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에뜨랑제의 요삼님은, 사실은 본인께서 영원한 아마로 존속하실 수 있었기 때문에, 쓰고 싶으신 대로 담고 싶으신 대로 이야기를 만드셨죠.. 판무라는 형식을 빌어 마니아 이상의 대상을 타겟으로 하셨고, 이를 위해 철학적 사고를 재미로 녹였습니다..
그런 도전의 성과가 조금씩 보이려 하고 있습니다.. 사실, 필력 하나만 보면 요삼님 이상이신 분이 많이 있죠.. 지금도 문피아에 연재되는 많은 프로분들의 글들이 문장의 완성도와 내용의 몰입도에서 에뜨랑제 못지 않다고 봅니다.. 다만, 한 가지 조금 달랐던 것은 에뜨랑제는 아마적 포부를 끝까지 견지했고(사실, 중반을 넘어가면 출판까지 신경쓰신 면도 자꾸 보입니다만..), 다른 작품들은 처음부터 프로적 야심으로 출발했다는 것이죠.. 이건 상황의 문제고, 목적의 문제기 때문에 옳고 그름을 논할 수는 없는 문제라고 봅니다..
다만, 에뜨랑제는 아마적 포부를 펼친 문피아의 수많은 글들 중에서 성공의 길을 연 또 하나의 성공사례가 되어, 장르문학 발전에 이바지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보입니다..
모쪼록 에뜨랑제의 성공을 기원하며, 에뜨랑제의 성공이 에뜨랑제의 성공으로 그치지 않고 우리 문피아인들이 좋아하는 장르문학이 보편적 장르가 되어 저변이 커질 수 있도록 기원합니다.. 넓어진 시장에서 우리가 좋아하는 필력 넘치는 작가님들이 그 필력으로 정형화되지 않은 다채로운 시도에 나서고, 글쟁이의 자존심과 생활인의 실리를 모두 확보할 수 있는 멋진 문화가 정착되길 바랍니다..
저급문화 취급받던 대본소용 무협지를, 무협소설이라는 한 장르로 개척하신 금강님, 판타지를 장르문학의 또 다른 일맥으로 개척하신 이영도님, 무협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신무협의 선봉 좌백님, 그 뒤를 이어 에뜨랑제가 장르소설, 혹은 판무소설이라는 용어에서 앞의 두 글자를 빼내는데 큰 기여하는 작품이 되길 간절히 기대해 봅니다..
오래된 하나(一元)가 보우하사, 제 아이의 손이 별 탈 없이 낫고, 우리 장르소설도 크게 도약하길 바라는 마음에 늦은 밤 이렇게 한담을 실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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