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사춘기 무렵이었을 겁니다.
그 전엔 그저 비극이 좋아서, 내 뜻대로 안되는 주인공의 인생이라는 것이 너무나 제 내면세계에 깊이 와닿아서 쓰기 시작했던 글이
인기순위라는 것을 알고, 글을 쓰기 위해 플롯을 짜야 된다는 것을 알고, 또 인생을 깊이 성찰하는 사람만이 제대로된 글을(비극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가면서
사람들이 불편하다는 글, 짜증난다는 글을 왜 쓰는가 하는 생각을 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펜대를 놓을 수 없어서, 고작해봐야 습작가의 자세나 입장이라는것을 알지만 비극을 쓰는게 무엇보다 즐거워서 무작정 써왔습니다.
자아를 성찰해 글을 쓴다는 것의 정체성을 탐구하지도 않고서요.
그러다가 문득 부모님한테 이런 말씀을 듣게 됐습니다.
이제는 어른이 됐으니까, 훈훈한 글을 써서 돈 벌 생각을 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내용, 사람들이 좋아하는 도덕성,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정치적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그리고 그때부터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책을 읽는, 그러니까 독서라고 하는 것의 정체성은 대체 뭘까?
아니 여러 컨텐츠를 접하며 소위 여가시간을 영위하는 것의 목적은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부모님들이 그럽니다. 책 읽을 시간에, 게임 할 시간에, 영화 볼 시간에 공부나 하라고.
공부나 해서 남들이 인정하는 훌륭한 인적 자원이 돼서, 그렇게 결혼도 하고 먹고 살으라고.
그것이 인생의 전부라고.
하지만, 정말 그런 것일까요?
정말 그것이 인생의, 인간의 전부인 것일까요?
제가 읽었던 소설, 감상했던 영화와 애니메이션, 드라마, 스토리에 빠져서 진중해지고 비장해진 채 했던 게임들은 정체성조차 없는 허황된 것들이었을까요?
왜 그것들을 했고, 왜 그것들을 그렇게 욕망했던 것일까요.
솔직히 몇년째 비장한 척 답을 찾고 있지만, 체계화된 정답을 얻지는 못합니다.
저는 무엇을 써왔으며, 무엇을 읽었으며, 무엇을 써야 하는 걸까요.
그것은 다 허황된 유희에 불과했던 것일까요?
인생에 하등 도움이 안되는, 그저 헛소리들이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문피아에 와서는 더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무엇을 썼으며, 왜 썼으며, 왜 읽었을까요.
백년밖에 살지 못하는 인생, 이거 한다고 무슨 의미가 있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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