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드라마 작가분한테 글을 약간 배웠던 적이 있었는데, 그분이 하시는 말씀이
“글을 쓸 땐 항상 공감할 독자층을 선정해 놓고 시작하라”
고 하시더라고요.
예를 들면 연령층이라던가, 경제적 계층이라던가, 정신병질적인 공감층이라던가.
특히나 요즘 사회에서는 히스테릭성 성경장애라고 해야 하나요? 자기 주장이 강하고 반항심 충만하고 피해 망상적인 사람들이 많다 보니까(일단 저도 그렇고요), 그들을 위로하고 대리만족을 시켜줄 수 있는 글이 유행할수밖에 없는것 같습니다.
어떤 계층을 비난한다던가, 우스꽝스럽게 표현한다던가 해서 말이죠.
장르소설도 이에 예외일 수 없는게 장르 소설들도 한국 드라마들과 같이 주인공 중심적인, 주인공의 가치관과 사상을 적극적으로 긍정하고 영웅적으로 표현해야 독자들한테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습니다. 카타르시스란게 의외로 중요해요. 그건 사람의 배설욕과도 연관돼 있거든요.
그래서 글이란게 그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고 읽어야 한다는 겁니다. 요즘 세월호니 후임 총리 지명이니 해서 나라 안팍이 시끄럽죠? 이런 정치적 상황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은 그것과 관련된 글을 읽고 싶은게 당연한 거예요. 사람이란게 원래 다 자기는 옳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믿고 싶어 하니까, 자기 생각을 긍정해 줄 수 있는 어떤 스토리 텔링이 필요한것도 당연한거죠. 그런게 ‘대리만족' 이라는 겁니다.
이 ‘대리만족'이란 걸 부정할수가 없는 게 이건 일제시대니 군사독재 시대니 하는 한국 문학의 전성기를 이끌어갔던 큰 흐름이기도 해요. 현실의 불만족을 극적인 어떤 변화로 충족시킬 수 없으니 작가나 독자나 글로라도 자기 사상과 어떤 원망(遠望) 충족시켜야 했던 거예요.
다만 현대의 ‘대리만족’과 한국 문학의 전성기 시절의 ‘대리만족'에 수준차이가 좀 있을 뿐이죠. 그 수준차이라는 것은 글을 쓰는 사람과 대중의 인격적 성숙과도 관련돼 있어요.
그때는 시대가 어려웠죠. 속된 ‘철'이라는 게 빨리 들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땐 생존에 관련된 문제, 먹고 사는것에 관련된 문제가 정말 복잡했기 때문이죠.
그에 반해 지금은 어떤가요? 너무 편해서 탈이지 않아요? 집에서 인터넷이나 하면서 솔직히 별 도움도 안되는 채팅이나 게임같은걸 하고 있잖아요. 한강의 기적 세대의 경제적 여유에 일부 니트족들이 얹혀살수 있는 세상이잖아요. 게임하다가 죽는 사람도 있고 불법 성매매 하다가 죽는 사람도 있고... 삶이 편하고 공허하니까 자기 목적의식을 충분히 배설하고 살수가 없어요. 한강의 기적 세대는 유능한데다 악독하고, 지금 저희 세대는 재능이 있어도 자기 아버지 세대의 어떤 가치관적인 신념 때문에 그 재능을 펼칠 기회가 완전히 가로막혀 있는 상황이기도 하고요.
또한 요즘 세대는 영상세대라고 해서 유혹도 많고 유흥도 많은 세대에요. 그런 세대에게 대리만족이랄게 뭐 별게 있을까요? 그건 다만 화끈하게 연애하고 인생 역전해서 자기가 남들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 뿐이에요. 남들보다 좀 더 유능하고 내세울게 많은 사람이었다는 것을요.
장르소설이 그런 사회적 가치를 대변하는 문학의 한 갈래라고 한다면 그것이 혹 유치하거나 철이 없어 보이는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흐름이 있다는 것은 당연한 거예요. 성인 여성들이 보는 드라마들도 정말 유치하고 철이 없는데 좀 더 어린 계층이 이용하는 컨텐츠가 그렇게 성숙할리가 없잖아요. 심지어 고급 계층이 보는 연극과 영화도 시나리오가 그리 성숙하지 못햇는데요...
게다가 어떤 성숙한 컨텐츠가 만들어 지려면 상당히 많은 경험과 우울이 필요해요. 부정적인 감정을 많이 경험해야 그걸 표현하는것도 가능하니까요.
그러니까 이런 문화적 흐름은 사회가 편안하고 안이하고 이기적이기에 이럴수밖에 없는 거에요. 문화는 대부분 ‘대리만족'에서 부터 시작합니다. 제가 아무리 수준높은 글을 쓰려고 한다고 해도 저 역시도 문학의 그런 특징을 부정할수가 없어요. 하지만 현대의 대리만족이란 성숙하지 못해요. 그건 작가도 그렇고 독자도 마찬가집니다. 어쩔 수 없는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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