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재미
미친듯이 재밌다. 이렇게 폭주기관차처럼 닥치고 묻지도 따지지도않고 달리게 만든 소설은 정말 오랜만이다. 뇌가 뽕맞은 듯이 어질어질해서 도무지 사라지지 않는 재미다. 단숨에 연재분을 독파하고나면 스스로가 느끼는 기분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서 몹시 당황하게 된다. 이 소설이 정말로 이렇게나 재밌는 것인지, 아니면 나조차 알지 못하던 내 취향을 조목조목 저격당한 건지 헷갈릴 정도로 재밌다.
분명한 것은, 본인은 무협빠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베스트란에서 무협작품만 빼고 본다.
2. 신박한 무협 코드
너무 오랫동안 판타지식 현대레이드물을 읽어왔다. 요즘 현대레이드물에는 게임코드가 유행처럼 들어간다. 원형의 게임소설에서도 무리에 대한 깨달음이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무협식 성장은 도태되고 만지 오래다. 본인도 부지불식간에 무협과 현대레이드물의 조합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이 작품은 바로 그 점에 대해서 어퍼컷을 날린다. 단순히 고루한 무협코드의 차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더 고무적이다. 무협 코드를 퍼즐 짜맞추듯이 활용한 기발한 해석이 돋보이는데, 바로 그것이 주인공이 폭풍성장하는 핵심요소가 된다. 주인공은 열심히 초식을 모은다. 설정이 신선하면서 치열한 느낌이다.
3. 야차 같은 주인공
이 작품의 제목은 성역의 야차였어야 했다. 그것도 머리좋은 야차. 유치하지 않은 과거의 상처, 불타는 듯이 강렬한 자아, 원색적일 만큼 노골적인 탐욕, 활어 같은 심리, 끊임없이 자기위치를 파악하고 활용하는 기민함, 답답하지 않은 영리함, 감각적인 도박성, 납득이 가는 심경 변화 등등, 주인공이 닥치고 형만 믿어! 하면서 멱살잡고 캐리한다. 독자는 그냥 끌려가면 된다.
4. 성장과 위기가 DNA처럼 얽히고 섥힌 스토리
성장은 곧 위기다. 위기가 곧 성장이다. 이 달콤하고 매력적인 명제가 이토록 잘 구현된 스토리는 근 몇년간 본적이 없다. 쉽게 짜기 어려운 플롯인데도 이 작품에서는 별 무리없이 느껴진다. 성장일변도이면서도 정신없게 끊임없이 불어넣는 살인위협과 긴장감이 펄떡펄떡한 낚지볶음에 들어가는 매운 양념같다. 중독적이다.
5. 독자에게 죄책감이 느끼게 하지 않는 글빨과 퀄리티
말초적인 재미로 범벅된 장르소설을 읽으면 마음 한구석에서는 희미하게 죄책감이란 동물이 고개를 치켜든다. 이런 재미만으로도 정말로 난 괜찮을까;;? 그런데 이 소설을 읽을 때는 그런 쓸데없는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작가가 대충 썼다는 느낌을 주지 않으면서 읽는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그 균형점을 본능적으로 아는 느낌이다. 잘 써진 글을 통해 만족감을 느끼면 의식하지 않아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6. 상대적으로 고비가 되는 도입부
작품의 시작은 1년 6개월(?)후 지구와 충돌할지 모를 거대행성과 함께다. 이 행성이 바로 최종보스인데, 레이드는 그 최종보스를 대비하기 위해서 크게 벌어지는 판이다. 초반에 이런 기본 설정이 직접 노출되지는 않는다. 여기서 낯선 용어까지 습득해야 한다.
‘우호자원(유저)’이니 ‘적대자원(괴수)’이니, ‘진혈(던전)’이라는 용어부터, ‘레시피(무공비급)’니 하는 등의 코드가 소개된다. 특히 초반부에 2회를 소모해서 레이드 시스템을 벼락치기로 구축한 신적인 존재들 간의 대화가 나오는데, 본인이 생각하기로는 제목 다음으로 이 소설의 유일한 오점이다. 그부분 빼고는 지루한 구석이 없다.
7. 쿵푸는 나오지 않는다.
그냥 주인공은 무공을 배운다. 정확히는 레이드를 통해 내공을 얻고 초식을 얻는다. 거기서 끝이다. 일반적으로 흔히 생각하는 요상한(?) 쿵푸는 나오지 않는다.
작가님께 강추드리는데 과감하게 다시한번 제목을 바꾸시라. 분명 독창성은 있으나 독창적인 면모는 장르소설 ‘제목’의 미덕이 아니다. 본인부터가 쿵푸라는 소재를 부담스럽게 여기고 클릭 한번 없이 제목만 스치듯이 지나친 기억이 셀수도 없었던 중생이었다. 이 소설이 무협식 레이드물이라는 건 작품 소개만 봐도 알 수있는 사실인데 그것조차 몰랐다.
8. 결
제목만 ‘성역의 쿵푸’가 아니었더라도 본인이 이 추천글을 쓸 이유가 전혀 없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황홀경에 빠진 채로도 이유모를 분노가 폭발해서 글을 쓴다. 이런 글을 하마터면 놓칠 뻔한 나 스스로에 대한 분노다. 암튼 재밌다. 이러지 저러니 해도 재밌으면 장땡이다. 이 장르에서는 가장 재밌는 글이 가장 잘 써진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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