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박천웅
작품명 : Mr.프레지던트
출판사 : 루트미디어
개인적으로 현대 판타지가 무협 혹은 중간계(?) 판타지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수작의 비율이 작은 이유는 소설의 처음과 끝까지 일관되는 ‘적’을 개연성있게 만들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무협 혹은 중간계는 ‘상상의 세계’라는 기본이 깔려있기에 개연성에 있어서 좀 더 용이하고, 또한 모두가 아는 세계를 흔들 수 있는 강력한 ‘적’이 존재 합니다. 무협의 세계에는 ‘마교’가 존재하며, 중간계에는 ‘암흑교단’이 있지요. 또한 무협과 중간계엔 모두 ‘점령’이 존재합니다. 즉, 10권, 20권에 걸쳐서 지속적으로 싸울 수 있는 큰 ‘적’이 있고, 그 ‘적’이 또한 세력이기 때문에, 주인공도 동료와 집단을 유지하면서 싸울 수 있습니다. 뚜렷한 ‘적’이 있기 때문에, 그 ‘적’에 맞추어 스토리를 이끌어 나가기가 쉬운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현대판타지는 ‘현대’에 사는 우리이다 보니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개연성있는, 모두가 납득하는 ‘적’을 만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정보가 넘쳐나기에 개인이 습득할 수 있는 정보의 제한은 작가가 아는 세계의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고, 스케일이 큰 적을 만들게 될 수록 작가가 모르는 구멍-독자는 아는 구멍-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아예 이능력 배틀물 형식으로 가서, 음모론 형태로 가는 경우가 가장 쉽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스토리는 그야말로, 여기 찔러서 한바탕 두들겨 주고, 다시 저기 찔러서 한 바탕 두들겨 주는 중구난방식으로 가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큰 적이 없으니까요. 아니면 거꾸로 다양한 적들이 주인공을 질러 주던가요. 예를 든다면, 이능력 배틀물 형태로 큰 적을 설정하는 ‘후아유’ 방식이 될 것이며, 다양한 적을 설정하는 ‘차카게 살자’가 대표적인 예시가 되겠습니다. 이러한 현대판타지의 어려움은 무협소설과 중간계 판타지 처럼, 긴 시간동안 동일한 설정을 작가들이 수립해 간다면 언젠가는 해결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런 현대판타지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인식을 뒤집으면서, 저를 감탄에 빠뜨린 작품이 박천웅님의 ‘Mr.프레지던트’입니다. 뭐라고 할까요. 정말 ‘현대적인’ ‘현대판타지에서의 적’을 작품에서 만들어 내시고, 그것을 끝까지 일관되게 유지하고 계십니다.
주인공 박동수의 적은 누구일까요. 바로 ‘박동수’ 자신 입니다. 회귀와 육체의 난입을 통해 농사꾼 박동수와 정치인 박동수가 합쳐지게 되지요. 허나, 둘 중에 하나가 완전히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공존의 형태를 지니게 됩니다. 동시에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큰 걸림돌로서,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는데 있어서 가장 큰 적으로서 다가 옵니다.
작품이 Mr.프레지던트이고, 주인공 박동수가 정치적인 행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정치인 박동수가 Main이라고 보이는 측면이 강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농사꾼 박동수는 아무 꿈없이, 마냥 농사만 짓고 살고 팠을까요? 초기 퓨전 박동수의 형태는 대부분이 고향, 망능리를 개선 발전시키는 활동이 주로 이룹니다. 이는 마치 정치인 박동수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 인 것처럼 보입니다. 허나 그것을 살짝 돌려보는 계기가 되는 말이 계속 나옵니다. 바로 박동수가 누군지도 모르고 버려진 아이를 망능리 사람들이 다 같이 키웠다는 것입니다. 농사꾼 박동수의 성격,성실함과 착함을 돌아보면, 그것은 은혜 갚기라고 볼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인 박동수 스스로도 불만을 제기하면서, 망능리에 필요이상의 개선, 봉사활동을 계속 합니다. 정치인 박동수가 힘을 비축하고, 너무 눈에 띄지 않는 잠복기를 가져야한다고 판단하는 순간에도 농사꾼 박동수가 그것을 무시하게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지요. 그래서 정치인 박동수를 위협에 노출시킵니다.
또한 정치인 박동수는 ‘한국당’으로 가야지 성공한다고 하지만, 농사꾼 박동수의 마음 때문에 그 마음이 가는데로 움직이다보니 지속적으로 ‘민생의회’와 엮이거나 ‘한국당’과 대치하는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인생의 계획에 있어서 방향을 틀게 만드는 것이 ‘적’이라고 한다면, 정치인 박동수에게 있어서 가장 큰 적은 농사꾼 박동수 인 것이죠. 동시에 농사꾼 박동수의 망능리에서 은혜를 갚고, 사람들을 돕고, 좋아하는 미호를 보고 싶은 마음을 벗어나게 만드는 것이 또한 정치인 박동수 입니다.
미럐와 사건을 다 알고 있는 ‘먼치킨’이, 미래를 자기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바로 자신이라는 ‘적’을 만나서 자기 스스로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나아갈지 알 수 없는 암흑 속에 스스로를 던져 버린 것입니다.
문학작품에 있어서 근대 이전의 소설들은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세계’와 ‘나’간의 비극을 주로 다루었다면, 근대 이후의 소설들은 ‘나’라는 스스로에 주목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Mr.프레지던트가 ‘나-박동수’를 적으로 설정하고 지속적으로 삶속에서 다퉈가는 이 형태가 제게는 ‘현대’판타지로 다가 옵니다.
박천웅님의 Mr.프레지던트에 찬사를 보내면서, 끝까지 박동수와의 처절한 전투를 맛깔나게 그려주시기를 바라며, 또한 언젠가 현대판타지에서 다른 형태의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그리고 마교를 볼 수 있는 그 날을 바라며, 이 말 감상문을 마칩니다.
*위에 쓰지는 않았지만, 다른 의미에서 퓨전 박동수의 적들은 대부분이 ‘정치인 박동수적’인 인물들이지요. 그래서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이겨낼 수 있구요.^^. 이것도 중의적인 의미에서 박동수가 박동수의 적이 되는 형태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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