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오츠이치(乙一)
작품명 : ZOO,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
출판사 : 황매(푸른바람)
일본 소설가이자 영화감독인 오츠이치의 작품은 크게 섬세함과 안타까움을 기조로 한 '퓨어 계열'과 잔혹함과 처참함을 기조로 하는 '다크 계열'로 나뉜다. 전자의 예로는 국내에 출간된 <너밖에 들리지 않아>, <쓸쓸함의 주파수>가 있고, 후자의 예로는 데뷔작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와, 제3회 본격미스터리 대상 수상작인 <GOTH 리스트컷 사건>, 그리고 단편집 <ZOO>가 있다.
<ZOO>는 공포와 슬픔, 인간에 대한 애정과 극한적인 상황에 터져 나오는 역설적인 유머, 탁월한 인간 내면의 묘사가 섬세하게 짜여진 작품집이다. 서서히 부패해 가는 연인의 시체를 바라보며 매일 '범인 찾기'에 매진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표제작 'ZOO'를 비롯, 총 10편의 소설이 수록되었다. 데뷔작인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는 작가 나이 17세에 발표되어 일본 문단을 놀라게 했다. 아홉 살 소녀가 자신의 사후, 자신을 죽인 친구와 친구의 오빠가 어른들의 눈에서 자신을 숨기는 상황을 바라보는 모습을 묘사한 중편 소설이다. - 알라딘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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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을 드나들다가 평소에 읽고 싶었으나 절판되어 구하지 못했던 ZOO를 읽고, 연달아 오츠이치의 데뷔작인 여름과 불꽃의 나와 사체까지 빌려서 읽어버렸습니다.
이전에 읽어본 오츠이치의 다른 소설로는 천성적인 '죽음'에 끌리고 그에 대한 조사를 취미로 하는 두 남녀 고교생의 섬뜻한 미스테리 'Goth'가 있네요. 만화책으로 먼저 읽고 소설을 읽었는데, 섬뜻함과 오싹함, 그리고 잔혹함과 음울함을 유지하던 작품이, 마지막 종결에서는 상당히 인상적이고 감상적인 여운을 남겨서 마음에 들었던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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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의 경우 10편의 이야기가 들어있는 단편집입니다.
첫 단편인 <SEVEN ROOMS>은 누나와 함께 의문의 방에 갖히게 된 어린 소년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야기. Goth가 생각나는 잔혹함과 가슴이 먹먹해지는 여운을 주는 강렬한 단편으로, 개인적으로도, 인터넷 상의 평가로도 ZOO 전체에서 가장 마음에 드네요.
엽기, 잔혹, 그리고 공포를 강요하는, 게임적으로 진행되는 정해진 룰과, 그것을 타파하고 역전하는 전개. 그리고 그 와중에 희생해야 하는 것... 어린아이의 시점에서 시종일관 간결하고 담담하게 서술되는 모든 것이 가슴을 서늘하게 했습니다.
그 외에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라면 So-far, 카자리와 요코(이건 좀 더 뒤의 이야기를 보고 싶어지니, 단편으로서는 애매하지만요.), 떨어지는 비행기 안에서.
ZOO의 중점 테마는 '죽음'입니다만, '혈액을 찾아라'나 '떨어지는 비행기 안에서'는 그 '죽음'을 다루는 와중에도 상당히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풍기는 터라, 오츠이치란 작가에 대한 인상이 넓어진 느낌입니다. 퓨어 계열 작품도 한번 읽어 봐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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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는 오츠이치가 17세의 나이로 써 낸 데뷔작입니다. 시골 마을, 불꽃놀이 축제를 앞둔 시점, 초등학교 소년, 소녀들, 풋풋한 사랑, 어린이들 끼리 아는 놀이, 동경하는 누나... 이 소박하기 그지 없는 소재를 가지고 가슴이 서늘해지는 잔혹담을 만들어내다니, 데뷔 시절부터 남달랐긴 합니다. 읽고 나니 "이 작가가 과연 다른 소설을 쓸 수 있을까?"라는 당시 평단의 생각이 이해가 가요.
하지만 어쩌랴. 오츠이치는 '그런거 많이 쓸 수 있는 작가'였으니(...).
데뷔작이라 그런지, 사실 소설 자체는 기대에 비해 많이 미흡. 애초에 초기 작품들은 "미스테리를 의식하고 쓴 적이 없다"라는 말을 했었더랬죠. 최초로 "미스테리를 의식하고 쓴 작품"이 Goth라고 하니까.
17세 데뷔작이라고는 믿기지 않고, 또 어떤 면에서는 데뷔작이기에 나올 수 있었을 그런 작품. 같이 실려 있는 '요코'는 그다지 페이지가 안넘어갔습니다만...
일단 오츠이치라는 작가의 시발점이라는 의미는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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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읽은 오츠이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건 아직까지 Goth입니다. 그야 뭐, 어느정도 작가로 자리잡은 뒤에 나온 작품이니, 초기작들과 비교해 봐야 나오는게 없긴 하지만...
담담한 어조로 서술되는 간결체 문장으로, 때로는 음산하고 잔혹하고, 때로는 애절하고 잔잔하게 이야기의 분위기를 자유자제로 조절하는 부분은 확실히 뛰어납니다. 괜히 많은 사람들이 오츠이치를 '별개'로 놓고 좋아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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