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비평란

읽은 글에 대한 비평을 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회전(回戰) 비평

작성자
Lv.9 백각
작성
16.01.26 03:18
조회
2,015

제목 : 회전(回戰)

작가 : Subsonic

출판사 :


https://blog.munpia.com/lnw1991/novel/49708


댓글로 간략하게 비평을 적으려다가 내용이 길어져서 따로 글을 써 봅니다.


우선 미리 말씀드리건대 저는 솔직히 말해서 작가님보다 더 나은 소설을 쓸 자신이 없습니다만, 그럼에도 도움이 되는 말을 해 드릴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


우선 처음부터 너무 설명도 많고 등장인물도 많고 고유명사도 많고 너무 복잡합니다

무슨 느낌이냐면 첫머리가 첫머리가 아니라 마치 책을 집어서 아무 페이지나 펼친 느낌이에요

드라마를 처음부터 보지 않고 중간에서부터 보면 누가 누구고 뭐가 뭔지 모르겠잖아요

딱 그 느낌이거든요

특히 프롤로그부터가 그래요


맨 처음 프롤로그인 0회전을 보면 사르와 인, 두 나라의 외교 마찰과 개전에 이르기까지의 경과, 그리고 전황을 자세하게 써 놓으셨어요.

그런데 쉽게 머리에 들어오지가 않아요.

처음 듣는 인명과 지명들이 글을 읽는 것을 방해합니다!


사르와 인은 주요 국명이니 그렇다치지만 불과 3문단만에 사망하여 퇴장하는 카우기르를 비롯하여 우희타이, 우사예르라는 지휘관, 구주요새, 영제 이환, 성진, 세자 이문, 하광, '전수향과 문희연을 필두로 한 수도집단 풍일', 아감(아감흑성은 또 뭐죠?), 하설희(한문 이름은 다 인 소속일텐데 어째서 사르 소속인지 독자들이 궁금해야 하겠지만 지금 처음 듣는 이름들이 너무 많아서 별로 궁금해지지가 않아요), 수은, 군파, 거평, 다시 등장하는 수향과 희연(등장인물들의 이름을 다 외우지 못한 상태에서 성을 떼 버리니 혼란이 더욱 가중됨), 카디쥬, 기은, 김평...

등등의 명사들이 그리 길지도 않은 프롤로그에서 모두 튀어나와 버려요.


작가님 머릿속에는 저 인물들이 누구인지 좌르륵 정리가 되어 있을 테지만 독자들은 지금 처음 보는 상황이잖아요. 처음 보는 사람 10명이 순서대로 자기소개를 20초간 한다고 해서 그들을 한번만에 다 외울 수 있을까요? 불가능하죠. 그치만 이 소설에서는 독자가 이해하든 말든 대략 수십명이 한꺼번에 자기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면 독자들이 따라가기가 힘듭니다.


이걸 간단하게 정리해 봅시다.

'강대국 사르는 인을 침공하였다. 사르군의 말발굽 아래에서 인의 국토는 유린당하고 있었다. 인의 세자 이문은 기은까지 후퇴하여 반격을 도모하는데...'

정도가 되겠죠. 길게 늘이든 짧게 줄이든 사실 알맹이는 저것뿐이에요. 그리고 중요 인물로 보이는 이문은 어떤 사람인지,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소설이 전개되어 갈 것인지를 보여줘야 하겠죠. 그게 프롤로그의 역할입니다. 그렇지만 프롤로그는 그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기보다는 줄거리에만 치중하고 있어요.


다른 사례를 가져오겠습니다.


'때는 후한 말, 외척과 환관들이 발호하여 국정을 농단하니 천하는 혼란해졌다. 백성들이 곤궁한 틈을 타서 사방에 도적떼가 들끓기 시작하였으니 이가 곧 황건적 무리들이었다. 새로운 세상을 열겠다며 잔학무도를 일삼는 이 도적떼를 토벌하기 위해 나선 세 사나이가 있었다...'


누구나 다 알 법한 삼국지연의의 프롤로그를 축약해 봤습니다.

이 정도로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독자들은 소설에서 드러나는 갈등 구조 - 플롯 - 을 원하지, 줄거리를 원하는 게 아니에요.

누가 무엇을 했고 그 결과 어떻게 되었다, 하는 경과만 잔뜩 쓰여진 건 소설책이 아니라 역사책이잖아요.




다음으로 1화로 넘어가 보면 갑자기 시점이 전환되어 있습니다.

'나'가 세자 이문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과 회의를 하는 모습 같은데요.
역시나 박정일이니 석류채니 하는 새로운 등장인물이 계속 나옵니다.
이 와중에 나가 누구인지 설명해주지 않으니 독자들이 직접 추측해야 하는데, 안 그래도 피곤한 상황에 피로가 더욱 가중됩니다. 잘 쓰면 세련된 연출기법일 테지만 지금 여기서 굳이 '나'가 누군지 설명하지 않고 넘어갈 이유가 없다고 보거든요(아직 뒷부분을 안 읽어봤으니 모를 일이지만).

둘째로 전개가 아니라 고증의 문제.
인은 중국풍의 국가로 보여집니다. 그런데 보면 황제가 통치하는('영제'가 통치하므로 황제국이라 추측합니다) 국가인데 태자가 아니라 세자라고 호칭을 하고 있고, 그나마도 세자 전하가 아니라 세자 저하라고 또 호칭을 합니다. 조선은 제후국이니까 세자 저하라고 호칭하지만 황제국이라면 굳이 저하라고 낮출 이유가 없겠죠. 또한 기은이니 김평이니 하는 행정구역 단위가 현으로 나옵니다. 역사적으로 보건대 현은 군이나 주, 성보다 크기가 좀 많이 작아요. 다시 말해서 중원의 통일왕조들보다는 훨씬 작은 규모의 국가라는 뜻이 되겠죠.
(물론 이 설정이라는 것은 작가님 마음이기에 현실과 달라도 상관없지만,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게 받아들여져서 선입견이 생길 수 있다는 겁니다).



아무튼 여기까지 해서 1화를 읽었습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이 소설은 전쟁을 주된 소재로 삼는 군기담이라는 것 정도입니다. 이제 세자나 '나'가 주축이 되어 장차 전쟁에서 승리하는 내용이 이어질 거라 추측할 수 있죠.
다시 말해 사르와 인이라는 두 나라의 전쟁 이야기라는 겁니다.
그런데 독자들은 전투 연표를 읽고 싶어하는 게 아닙니다.

641년 의자왕 즉위
643년 신라의 구원 요청
644년 당의 고구려 침공
...
이런 연표를 줄줄 읽고 싶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더군다나 가상의 국가들의 연표라면 더더욱 그렇겠죠.
독자들은 줄거리만 있는 글이 아니라 플롯이 있는 글을 읽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참신한 등장인물들을 원하죠. 하지만 '회전'은 그런 기대를 충족시켜 줄 것 같지가 않습니다.
읽다 보면 기발한 전략으로 적을 무찌르는 통쾌한 장면도 몇 번 나오겠죠. 그러나 그것도 한두번 아니겠습니까. 매번 사건을 그런식으로 처리해 나가면 긴장감이 사라지잖아요. '뭐 아무튼 무슨 작전을 써서 또 이기겠지.' 하고 익숙해져 버립니다. 그러니까 소설 전체를 기발한 전략 쓰는 장면으로만 때울 수는 없어요.

등장인물들도 그래요. 뭐 누구는 천민 출신이고 누구는 보신주의자라서 자기 안위만 염려한다는 짤막한 소개가 나오긴 하는데, 저는 승리를 위해 움직이는 장기말들을 보고 싶은 게 아니라 입체적 캐릭터를 보면서 '인간의 내면과 본질'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기회를 가지고 싶거든요.

이렇게 말하면 장르문학은 폄하하고 순문학만 취급하는 꼰대처럼 보일 것 같아서 다시 첨언하는데, 다들 알 만한 캐릭터를 가지고 얘기를 해 봅시다.

우리는 삼국지의 등장인물 조조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충성이라는 유교적 가치가 절대적이였던 전근대에는 '천자를 능멸하는 간사한 역적'이라는 클리셰에 충실한 인물로 받아들여졌죠. 근래 들어서는 재평가되어 유능한 창업자라 보여지기도 합니다만, 조조가 어떤 인간인가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부분은 바로 여백사 가족을 죽이는 장면이라 봅니다.
자기를 그토록 환대해 주던 여백사 가족을 사소한 오해 때문에 모조리 죽여 버리고, 그럴 필요까지 있었냐는 진궁의 물음에 그는 '내가 남을 배신할지언정 남에게 배신당하지 않는다'는 대답을 하죠. 그러면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훌훌 털고 갈 길을 갑니다. 이 장면은 조조라는 인간에 대해서, 법과 정의에 대해서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줍니다. 조조의 행위는 정당한가? 정녕 그럴 수밖에 없었는가? 역시 간악하다. 그러나 결국 그 조심성 덕분에 끝까지 살아남아 대업의 기반을 닦지 않았는가? 등등. 우리가 누구이고 인간이 무엇인지 한걸음 본질에 다가가게끔 성찰할 기회를 준다는 거죠.

뭐 이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애초에 비교 대상이 너무 명작이니까), 독자들은 입체적 인물상에 매력을 느낍니다. 그런데 '회전'에서는 그런 기대를 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뜬금없이 많은 인물들이 등장해서 회의를 하는 모습이 마치 전쟁사극의 대본 같거든요. 멋진 장면을 연출해내기 위해 쓰여질 장기말들을 보는 느낌이 듭니다. 뭐랄까, 미리 입력해 놓은 대사를 출력하는 게임 NPC 같다는 거죠. 그리고 주인공 버프를 받는, 솔직히 말하자면 작가님의 메리수(스스로 무언가를 해낼 수 없는 NPC와 대비되는 ‘플레이어')의 활약을 통해 이 소설이 전개되어 나갈 것 같습니다.

겨우 1화까지만 읽고 소설을 평가한다는 것도 참 웃기지만, 저를 포함한 다른 독자분들도 아마 1화까지만 읽어도 나머지 내용을 평가할 수 있을 것이고, 이를 통해서 계속 읽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할 겁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연독률이겠죠. 그러므로 프롤로그나 소설 초반부의 완성도가 얼마냐 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상 종합하여 봤을 때, 회전은 소설이라기보다는, 뭐랄까요.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스크린샷을 찍고 설명을 달으면서 블로그에 포스팅한 걸 보는 느낌이에요. 차라리 이 컨셉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간간히 드립을 섞어가면서 말이에요.

1화까지밖에 읽지 않은 건 시간이 늦어서인데 내일 끝까지 읽고 내용을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

(27일 수정)
최근 연재분까지 모두 읽어 보았습니다.
예상과는 달리 평범한 일직선 구조의 얘기는 아니었어요. 이래서 넘겨짚으면 안 되는 건데... 나로서는 생각해 내기도 어렵고 전개하기도 힘든 구조입니다.
독특한 구조를 통해 재미를 극대화시킬 기회가 분명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단점으로 지적하였던 것 중에 하나가 초장부터 너무 많은 등장인물들이 쏟아진다는 거였는데 ‘어차피 읽다보면 알게 될 테니 처음부터 모든 인물들을 천천히 소개하지 않겠다'는 생각이실지도 모르겠어요.

결국 반쪽짜리 비평이 되고 말았습니다만, 그래도 1화만 보고 너무 복잡해서 거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 이런 독자분들을 유인할 방법을 마련해두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주제넘게 조언이지만..).

Comment ' 5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비평란 게시판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찬/반
4682 판타지 영웅담-Heroism 비평 +6 Lv.47 자전(紫電) 16.02.11 1,455 2 / 0
4681 퓨전 트루시커 '짧은' 비평글 Lv.53 청유請誘 16.02.11 1,275 0 / 0
4680 판타지 트루 시커 비평 +2 Lv.47 자전(紫電) 16.02.10 1,480 3 / 0
4679 판타지 트루시커. 비평 배달 왔습니다. +8 Lv.16 우울한인생 16.02.10 2,205 16 / 0
4678 비평요청 트루 시커(True Seeker) 비평요청 해봅니다. +3 Lv.35 카르니보레 16.02.09 1,470 0 / 0
4677 비평요청 영웅담-Heroism 비평을 부탁드립니다. +1 Lv.8 신풀 16.02.09 1,326 0 / 0
4676 퓨전 버퍼가 사는 세상 ㅡ 1화 읽고... +6 Lv.1 절대응가 16.02.08 2,669 13 / 8
4675 비평요청 '피의 대륙'비평을 요청합니다! +3 Personacon 8만리8 16.02.06 1,159 0 / 0
4674 기타장르 헌터카르바나대륙환생기 : 넌 대체 누구냐. +3 Personacon 대마왕k 16.02.06 1,805 17 / 0
4673 퓨전 헌터카르바나대륙환생기 일연란 비평 신청합니다 Lv.69 란의용사 16.02.05 1,102 0 / 0
4672 일반 약먹은 인삼님 작품 +23 Lv.91 인풋로멘 16.01.27 5,353 22 / 1
4671 비평요청 비평요청 부탁드리겠습니다. (판타지, 대도둑 전기) +8 Lv.9 하속 16.02.04 1,224 1 / 1
4670 퓨전 레이드 감별사 Lv.60 魔羅 16.02.04 3,138 4 / 0
4669 무협 창천록을 비평해봅니다. +7 Lv.81 [탈퇴계정] 16.02.03 2,082 9 / 0
4668 비평요청 오르비스 플랜 비평 요청합니다! Lv.3 Nitrah. 16.02.03 1,032 0 / 0
4667 비평요청 『약탈자들』비평요청 합니다. +1 Lv.8 전자점령 16.02.02 1,323 0 / 1
4666 퓨전 레이드 : 신의 탄생..... 오타신의 탄생 Lv.90 마령검銀白 16.02.02 2,119 2 / 2
4665 비평요청 철학자들의 전쟁, 비평 요청합니다. +8 Lv.10 Forthefa.. 16.01.31 1,596 1 / 0
4664 비평요청 마음따라 가는 길 비평 부탁드립니다. +1 Lv.60 Arkadas 16.01.29 1,349 0 / 0
4663 비평요청 Standing Behind 비평요청드립니다. +2 Lv.11 컴초보 16.01.29 1,235 0 / 0
4662 판타지 악마학자 2권까지읽고 +1 Lv.8 이스코 16.01.29 1,695 3 / 1
4661 현대물 천국의 문을 두드려라 비평 +5 Lv.9 백각 16.01.28 1,597 4 / 0
» 판타지 회전(回戰) 비평 +5 Lv.9 백각 16.01.26 2,015 5 / 1
4659 비평요청 회전(回戰) 비평 부탁드립니다 +3 Lv.1 [탈퇴계정] 16.01.25 1,332 0 / 0
4658 비평요청 비평 요청해도 될까요? +6 Lv.34 제리엠 16.01.25 1,550 0 / 0
4657 비평요청 여름요정의 품에 안겨 잠들다 비평요청합니다. +1 Lv.5 귱귱 16.01.25 1,112 0 / 0
4656 기타장르 상왕흥선 비평. +6 Lv.45 호우속안개 16.01.24 2,855 5 / 1
4655 게임 하믄연대기를 까봅시다. 23편까지만. +8 Lv.81 [탈퇴계정] 16.01.23 1,870 4 / 6
4654 비평요청 조심스럽게 '반란기' 비평 요청 드려봅니다. +8 Personacon ID한승연 16.01.22 1,545 2 / 0
4653 퓨전 환생좌를 까보자 +20 Lv.50 육사 16.01.22 6,730 31 / 3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genre @title
> @subject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