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창성, 흥미로운 소재, 우월한 필력, 독자들을 빨아들이는 강력한 흡인력.
이것들을 뭉뚱그려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면 ‘재미’입니다.
내 소설은 독창적이야.
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고, 앞으로도 없겠지.
그런데 안 봐요.
왜 안 볼까요?
우매한 독자들이 우월하고 뛰어난 독창적 글을 알아보지 못해서 일까요?
그런 경우도 아예 없진 않겠습니다만, 적어도 장르문학 판에선 99.99% 정도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거 같습니다.
그럼 뭐가 문제일까요?
저를 포함하여 인기가 ‘아주’ 많지는 않거나, 부족하거나, 없거나, 절망적으로 없는 글쟁이들은 항상 하소연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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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저러해서 이러저러한 준비기간을 갖추고 남들과는 다르게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보다 독창적으로 - 중략 - 도서관에서 10년동안 정보 수집 - 중략 - 한 문장 한 문장을 피토하는 심정으로 - 중략 - 썼는데 댓글 0 선작 1(본인?) 조회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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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흑흑..
지금 이 글 보시는 분들 중에 찔리는 분 분명 있을 거예요.
대충 7~8년 전쯤으로 돌아가면 바로 제가 ‘아 젠장 내 이야기네’ 하고 있을 거고요.
대체 뭐가 문제일까요?
아, 지하 저 말많은 놈 소설 보면 맨날 여자애들 나오고 문장력도 개판에 외국에서 산 놈이라 그런지 한국어 어법도 제대로 모르는 거 같고, 내용도 영 한국적이지 않은데 저 자식은 꾸준히 댓글 달아주는 사람도 있고 플레티넘 연재해도 재미있다며 봐주는 사람도 있는데 아무리봐도 훨씬 우월하고, 훨씬 철저히 준비하고, 훨씬 심혈을 기울인 내 소설은 왜 이런 거야?
그냥 한 마디만 하자면..
재미가 없어서요.
제가 말이 많아서 그런지 몰라도, 저는 ‘비평 좀 부탁드려요^^’ 라는 쪽지를 많이 받습니다. 다른 분들도 많이 받는지는 모르겠어요. 저는 솔직히 말해 다른 분들의 글을 읽을 만한 여유가 거의 없습니다만(작품을 동시에 4개 이상 쓰는 걸요) 그래도 아주 길지 않다 싶으면 읽어보고 비평 할 수 있다 싶으면 비평합니다.
그럴 때마다 항상 느껴요.
이분 문장은 정말 배울 데가 많구나. 한국어를 이렇게 사용하는 방법도 있구나. 이분 소설을 읽어보니 내 소설이 얼마나 ‘한국말로 적힌 외국 소설’ 같은지 알만 하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느낍니다.
왜 이리 재미가 없을까.
왜 이리 설명이 많을까.
왜 이리 상상이 안 될까.
왜 이리 축 쳐질까?
왜 다음으로 손이 안 넘어갈까?
이유는 제각기 다릅니다.
개연성이 부족해서 그럴 때도 있습니다. 좋은 문장력에 탁월한 단어선택은 좋았는데 도저히 이것만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싶어서 재미가 없을 때도 있어요.
어떤 때는 캐릭터가 너무 몰개성해서 재미가 없기도 합니다. 살아 숨쉬는 인물이 아니라 그냥 지면상의 단어 모음집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일본적 캐릭터(캐릭터성을 극대화한 캐릭터)도 좋고, 미국을 비롯하여 영문학권의 서사적 캐릭터도 좋고, 한국적 아몰라 다때려부셔 퍽퍽퍽 캐릭터도 좋은데, 뭐든 ‘살아만 있으면’ 좋은데 그냥 활자모음 캐릭터인 경우는 도저히 손이 넘어가지 않아요.
또 어떤 때엔 독창성에만 목을 매단 나머지 이야기에 공감이 안갑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비평을 부탁하신 분에게 조금 미안하지만, 한 여성분의 소설은 주인공이 죄수입니다. 저는 처음 ‘프리즌 브레이크’ 같은 이야기이려나 기대기대 했지만, 프리즌 브레이크라는 王道가 있기 때문이었을까요?
그냥 줄창 감옥 생활 합니다. 1/3권까지 별 이유도 모르겠고 그냥 감옥에 살아요.
그런데 그 감옥이란 게, 일반인이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곳인만큼 개연성있게 흥미진진하게 사실적으로 적기 어렵습니다. 어려운 길을 선택했으면 그만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사실 땡전 한푼 못받는 인터넷 연재에서 그럴 순 없는 노릇이잖아요?
결국 ‘비현실적인’ 즉, 있을 수 없는 감옥에서 있을 수 없는 감옥 생활을 하며, 이유도 모르고 목적도 모르고, 그냥 죄수의 일기장 쳐다보는 기분인 소설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죄수의 생활이라니 얼마나 독창적여요?
상상은 해보셨나요?
그런데 보고 싶으세요?
저는 전혀 보고 싶지 않더군요.
정말 긴 말이 되었습니다만,
저를 포함하여 독창성을 부르짓는 우리 초보 글쟁이분들이여.
독창성의 목적이 무엇이지요? 그냥 남들과만 다르면 그만입니까?
아, 이 사람 소설은 뭔가 유니크해. 재미있어. 팬이야- 이 소리를 듣고 싶어서 결국 그 독창성을 찾는 게 아닙니까?(물론 일부 분들은 그저 ‘다른 것’에 목매다는 일도 있을 겁니다. 저도 그랬고요) 만약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독창성일까요, 아니면 글을 자아내는 능력, 즉 필력일까요?
‘나만의 필력’을 갖추게 된다면 소위 양판을 적어도 독창적이 됩니다.
그건 시장이 증명해줬고, 역사가 증명해줬으며 이 지옥같은 불황의 시장에서도 살아 생존하신 여러 선배님들께서 증명해주셨습니다.
그러니, 독창적이고 뭐고 다 필요없고, 재미있는 글을 적자-
이것을 목표로 삼아주세요.
수려하고 아름다운 문장의 재미이든, 독특한 소재의 재미이든, 자극적인 전개이든, 야시시한 느낌의 재미이든 ‘재미있다!’ 라는 소리를 절로 나오게 할 수 있는 자만이 살아남는 곳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 함께 파이팅 하고,
저는 제가 가장 사랑하고 좋아하는 작가 카이첼님의 양판 작가 이야기를 읽으러 가겠습니다.
기승전 카이첼님 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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