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시하
작품명 : 윤극사본기
출판사 :
처음 글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그저 의원이 나올 뿐인데 어찌 무협일까라는 생각은 안했었다.
여타의 무협이 그러하듯... 만류귀종이니 하는 말로 다 이어질 것임을 알고 있었으니까...
보는 내내 감탄했고...
그랬던 소설이 잠도 재워주지 않았다.
와이프에게 보여주자...
그녀 역시 잠을 자지 않았다.
그러나 소설에는 한마디를 해야겠다.
나는 무림인까지는 아니더라도 오래도록 무술을 수련해온 사람으로서 내공이니 검의 길이니 하는 말들이 말로 떠들기는 우스워보여도 몸으로 행하기는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이 성장하는 모습에는 분명 말도 안된다라고 할만한 것들이 다수 있음에도... 그저 고개를 주억거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작가의 너무나도 당연하게 말하는 문체의 느낌 때문이었을까?
여타의 무협과는 다르게...
물이 바위로 스미듯이 아주 조밀하게 독자를 조여오는 문장이 있다.
삶에 대해서 고민해보지 않은 독자들이나 어린 친구들에겐 분명 실망스러울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얼추 인생을 고민해보고 죽음과 삶의 경계에 대해 생각해본 사람들이라면 이 글을 읽으며 가슴을 어루만지지 않으면 숨쉬기가 힘들다는 걸 느낀다.
단 하나.
이 글을 읽으며 안타까웠던 부분은 글의 아이템으로 등장하는 [혼돈석유]이다.
글의 전반적인 흐름으로 볼 때 현대적 개념의 [원유]인듯 하다.
등장하는 인물 중 일부는 이 혼돈석유를 현대적 개념으로 이해하고 그것으로부터 만들 수 있는 것을 예언하듯 말한다.
그리고 실제로 금방 볼펜과 아크릴 보드를 만드어내기까지한다.
기본적으로 화학과 물리학, 기계공학까지 배운 나조차도 번듯한 내연기관(엔진) 하나 없는 그 시절에 그 정도를 맨땅에서 만들어내려면 10년도 이르다고 여기고 있는데...
불로 가열해서 무언가를 가공하면 나오는 부산물들은 불투명 착색의 상태가 된다. 투명한 아크릴을 만들려면 불순물 처리가공 과정과 공기의 압력이라던가 물리적, 공학적 안배가 고려되야한다는 점에서 단순히 독이나 연구하면서 얻어진 화학지식만으로는 (물리나 공학적 기술의 개념이 없는 상태로) 힘들다라고 단언하고 싶다.
그저 작가가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라고 말한다면..
"주인공 이름은 철수다. 갑자기 주먹을 내뻗자 지구가 멸망했다. 왜? 철수는 졸라 짱쎄니까!!"
이러면 소설 한편 다 만든거 아니겠는가?
허구란... 소설의 작법이나 그 성향에 대한 설명어 중 하나다.
허구란?
있을 법한 것들을 가상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제대로 된 허구가 되려면 독자공감에 이르러야 되는 것이라고 주절주절 말하고 있는 것이고....
10과목 시험을 보고...
7과목 만점을 받은 학생이 3과목은 0점을 받으면...
선생은 말할 것이다.
"너 장난하냐? 왜 3과목은 이 따위야! 반항하는거야?"
이 소설은... 아주 일부의 내용이 극단적으로 잘못되어 있다.
다른 내용은 오히려 시험을 볼 필요도 없는 경지에 있고....
나는 선작기준을 내 기준의 70점 정도로 둔다.
이 소설은 딱 70점이다.
그러나 감히 70점짜리의 소설들과 같은 방에 모실 수 없는 그런... 70점이다.
글을 읽다가... 이따금 나오는 혼돈석유와 관련된 모든 것들은...
웃는 얼굴에 침뱉어주는 다정한 이웃의 느낌이다.
10년이 넘게 사랑을 나누던 현숙한 조강지처가 사실은 몸이 뜨거워서 나 하나로 안되었던지라 밤마다 거리를 배회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기분과도 비슷하다.
망할 [혼돈석유]는 이 소설에서 끊임없이 악령처럼 살아나서 나를 괴롭혔었다.
아무리 좋은 문장도... 혼돈석유가 떠오르거나 그 근처를 지나친지 오래되지 않은 상태에선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소설을 보는 내내 혼돈석유를 증오하면서 읽었다.
그래서 이 소설은 70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타의 90점넘는 소설과 같은 위치에 있다.
신기한 일이다.
이 글을 보는 이가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면 차분한 마음으로 일독을 권한다.
이 소설에는 가슴을 저미는 그 무엇이 있다.
우리는 살아가며 끝없는 위선과 위악으로 살아간다.
인격이란 쓰레기를 버리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쓰레기통이 있는 곳까지 그것을 가지고가서 버리는 자세를 예로 들 수 있는 마음가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종의 위선에 해당된다.
타고나서 착한 일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사람이 인격을 행할 때 그것은 참으로 선한 것이 된다.
자못 위협적인 사람들을 좁은 길에서 만나면 눈을 내려깔거나 어깨를 펴거나 하게 된다.
이것은 "나도 강하니 건드리지 말라."는 의미다. 이것은 일종의 위협으로... 위악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윤극사본기의 주인공은 그 자체로 선한 사람의 표본을 보여준다. 위악과 위선으로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 자체가 숨막히게 괴롭고 답답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를 응원할 수 밖에 없다.
그는 인간이 본디 향해야한다고 배워온 선의 지향점에 도달하기 직전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판타지나 무협을 보며 열광하는 것은 강력한 주인공의 파괴행위에서 대리만족을 얻기 때문이다.
수 없이 많은 생물과 사람을 죽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의 적편에 서있었다는 이유로 죽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당위성을 가지고 그와 하나가 된다.
이는 억누르고 있던 위선적/위악적 요소를 해방시킨다.
윤극사본기는 다른 방향을 택했다.
스스로의 위선과 위악을 부끄럽게 만드는 쪽으로...
우리가 살면서 이런 류의 글을 만나기는 어렵다.
대책없이 착하기만 한 주인공으로 이런 글을 쓰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이 글은 최선자를 포함하지 않는다.
세상에 독이 된다면 그것은 죽여도 된다는 논리를 주인공은 가지고 있기에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그도 위선자이기를 바라면서 끝까지 읽게 된다.
윤극사본기는 지금도 꾸준히 연재중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기에 끝을 보려한다.
그러나 적어도 이 글을 읽지 않으면...
운이 없는 독자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는 있다.
나는 작가와 일면식도 없고 나이가 몇살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보아닌 홍보를 하고 있는 것은 그저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나와 이 경험을 나누지 않으시겠는가?
Comment '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