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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들처럼
작성
03.03.04 18:21
조회
1,243

한 여름밤의 꿈을 꾼지도 모르겠다.

세월이 지나 오랜 기억의 단편속에서도 그의 말솜씨는 감성적이며 부드러워

듣는 나의 가슴에 오래도록 남겨져 버렸다.

그를 만난 것은 바람 때문이였다.

사부님의 심부름을 마치고 돌아가던 중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서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멈춰 버렸다.

서쪽에서 불던 바람의 방향이 갑자기 동쪽으로

바뀌면서 난 자연스럽게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그를 볼 수 있게 되었다.

행색을 보아하니, 일개 장사꾼에 불과한 그였으나, 그의 짐을 노리고 덤비는 도적들에게

펼치고 있는 무공은 일개 장사꾼의 그것이 아니었다.

그의 초식은 정교하고 빠르며 힘이 실려 있었다.

마음은 매우 너그러운 듯 도적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지 않고 있었다.

그들의 실력으로는 감히 상대가 안 되는지 이제서야 깨달은 도적들은

줄행랑을 쳤고, 그는 잠시 도적들의 뒷모습을 보다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눈빛이 마주치자 어쩔 줄 몰라하는 나를 향해 살며시 미소를 짓고는 땀이라도 식히려는 듯

그 자리에 앉아 버렸다.

사람을 많이 가리고 내성적인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지금도 의문이지만,

나는 그의 눈치를 살피며 살며시 다가가 그에게 말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척 횡설수설한 것 같아 얼굴이 빨개진다.

-몰래 훔쳐봐서 죄송하다, 무공이 멋지다, 무공의 이름이 무엇인지,

함자가 어떻게 되는지, 어느 문파 인지,-

대충 요약하자면 이 정도였던 것 같다.

나의 말과 행동이 재미있었던지, 그는 조용히 웃으며 말하였다.

"조엽칠이라고 하오. 난 장사꾼이지 강호인이 아니라오. 음.. 아까 펼쳤던 초식은 잔설일점혈이라고....."

'장사꾼이 어떻게 그런 무공을 펼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깃든 나의 눈을 천천히 바라보던 그는

허공 너머의 저 먼곳을 그리워하듯 바라보았다.

"십년 전 사막에서 한 사내를 만났지요, 그 사내가 전수해준 무공이랍니다."

그 사내를 생각하는지, 사막을 생각하는지, 그의 눈은 여전히 허공을 응시할 뿐 말이 없었다.

나는 품속에 있던 취생몽사주를 살며시 꺼내었다.

사부님의 심부름이 취생몽사주였다는 것을, 보름정도 시간을 들여야 구할 수 있다는 것을,

구하지 못했을 경우, 사부님에게 지독하게 혼날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음미하듯 술을 마시고는 한참 만에야 입을 열었다.

"그 기이한 사내가 우리 대상의 행렬에 끼인 것은, 그러니까 십년 전의 일이었지요."

십년전의 일의 기억을 더듬어가며 했던 그의 말을, 진우천과 여리의 이야기를,

조엽칠과 관협(삼대도객의 관협이라고는 상상조차 안가지만)의 이야기를 잊을 수는 없을 것 같다.

한 여름밤의 꿈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그와 헤어진지도 이틀이 흘렀다.

난 돌아와 지금까지도 이 컴컴한 독방에 무릎을 꿇고 벌을 받고 있다.

사부님의 심부름을 재대로 수행하지 못한 까닭이다.

과거에 헤어진 남자를 아직도 못잊어 년마다 한번씩 취생몽사주를 찾는 사부님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조엽칠의 말 또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이 있다.

취생몽사주를 마신 그가 지난날의 일의 기억을 재대로 살리지 못한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또한 기억은 자기 본위대로 만들어지고 키워지는 것이니까.........

뭐, 굿이 그를 탓하지 않겠다.

나 또한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이야기를 내 상상으로 다시 만들어가고 있으니까.......

이틀 전 있었던 일은 내 친한 친구 소매에게도 말하지 말자 라고 생각하고 있다.

수다쟁이 소매의 귀에 들어간다면,

사부가 알아버린다면,

지금의 벌보다도 10배는 가혹한 벌이 돌아올거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불호령과 함께 말이다.

"야 이년아! 길가다 마주친 모르는 사내놈과 술을 마셔! 그것도 취생몽사

주를! 이 간댕이가 부운년! 뭐 년! 뭐 뭐 년! 뭐 뭐 뭐 년! ....................."

.....아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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