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군림]을 읽으며 서글픔을 느낀다.
지금껏 내가 찬탄해온 좌백의 작품이 지니는 매력은 [서술과 묘사]에 있었다.
특히나 그의 묘사능력은 월등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개인적 평가를 내리고
있었기에, 그가 발표하는 여러 작품들을 서너번, 혹은 너댓번 씩 읽으면서도
지루한줄 몰랐을 뿐 아니라, 오히려 쏠쏠한 재미가 가일층 더해만 갔었다. 헌데,
이번 작품에서만은 묘사가 주는 기쁨을 찾을 수 없어 몹시 서글픈 것이다.
묘사(描寫)가 아니라 모사(模寫)의 느낌만이 강하게 배어나오는 [천마군림]의
연재를 읽고 그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힐난을 예견하면서도, 따가운 일침을
가하지 않을 수 없다.
기존에 발표된 여러 가지 캐릭터들을 요소요소에 재배치시킴으로써, 작품의
재미를 배가시키는 기술적 능력이 향상된 것만은 사실이다. 일종의 잔재주다.
스스로 밝히기까지 했던 [티라노]나 [원기옥]같은 소도구에서 특히나 강한
모사의 느낌을 받는다.
[사의(邪醫)]가 술을 마시는 대목을 읽으며, [프레드릭 포사이스]의 소설을
영화화 했던 [Day of Jakal]이 생각 났다. 그 영화의 초입에, 주인공이 침몰한
배에서 표류해 파도에 떠밀려 온 섬에서 사의와 흡사한 인물에게 구조되어
치료를 받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 역시 술을 안마시면 손이 떨리는 증상을 보인다.
사의가 [구대흉신]의 하나로 나오는 대목을 읽으며 [생사박]의 [구신(九神)]이
떠오르는 것은, 내가 좌백의 작품에 너무 심취한 때문일까?
[강철 목걸이]도 영화를 생각나게 한다. 룻거 하우어가 나왔던 [개목걸이]이다.
이런 삐딱한 시선으로 [천마군림]을 보게 되는 가장 커다란 이유는 무엇일까?
좌백만이 가지는 나름의 분위기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배경을
따진다면 [무혼]이 생각난다. 주인공의 분위기는 제목에 나타나듯 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마침내는 정사의 무공을 한 몸에 익혀 찬란한 성공을 이루는
전통적(?) 무협 주인공이다. 거기다, 그런 성공의 계기가 생전처음 만난 이쁘장한
여자다. 이러니 어찌 좌백의 냄새를 맡을 수 있으랴.
한가지, 딱 한가지 발전된 것이라면 연재속도 뿐이다. 그것마저도 그리 흡족하게
느껴지지 못하는 것은, 좌백이 말했듯 [편하게] 글을 쓰기 때문이다.
산고의 고통에 비견될 만큼 창작은 어려운 일인데, 그것이 어찌 편하리요.
어렵고 힘들게 쓴 글만이 재미있고 훌륭한 글은 아니겠지만, 쉽고 수월하게 쓴
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게 되긴 몹시 힘든 일이다.
좌백의 분발을 기대한다. 모사가 묘사로 되돌아가길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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