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 새로 생긴 취미가 노트북으로 DVD를 감상하는 것이다.
저번에 어떤 인터넷 몰에서 디즈니 애니메이션들을 묶어 1만 원대에 파는 이벤트가 눈에 띄어 얼른 주문을 하였다.
디즈니! 얼마나 황홀한 이름인가....
어릴 때 지직거리는 흑백 TV로 보았던 '환타지아'의 감동을 아직도 나는 고스란히 기억한다.
보다 말고 무슨 권투시합 중계 때문에 채널을 돌려야 했을 때의 그 울분과 함께....
아무튼, 요즘은 두 주일마다 돌아오는 피시방 쉬는 날에 디즈니 만화들을 하나씩 꺼내어 미리 준비한 팝콘 따위을 먹어 가며 감상하는 재미로 산다.
'신데렐라', '피터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피노키오', '아기 사슴 밤비'....
'레이디와 트럼프'를 볼 때는 거기 등장하는 두 마리의 샴 고양이가 부르는 동양풍의 멜로디를 무려 30여 년이란 세월을 뛰어넘어 기억해 내고는 함께 흥얼거리기도 하였다.
재방송을 보았다고 하더라도 겨우 두 번 들었던 노래인데도 말이다.
'백설공주'도 봤다.
그런데....백설공주가 이렇게 재수없는 계집애인 줄은 몰랐다! 아무튼 디즈니의 백설공주는 그랬다.
표정 하나 하나, 동작 하나하나가 어찌나 호들갑스러운지 보다 말고 벌컥 화가 치밀어 엉덩이를 걷어차 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공주병이란 단어가 이래서 나왔구나.'
실제로 공주인 계집애에게 공주병이란 표현은 잘못된 건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엄청 재수없는 계집애였다.
계모의 사주를 받은 사냥꾼한테 살해당할 뻔하여 공포에 질린 나머지 발레 공연이라도 벌이는 듯한 동작으로 숲속을 누비는 건 그렇다고 치자.
방금 죽을 뻔한 사람이 다소 오버 액션을 하는 거야 이해해 줄 수 있다.
한데, 방금 그렇게 호들갑을 떤 주제에 숲속의 동물들이 다가오니까 이내 배실배실 웃는다.
'이렇게 금새 가라앉을 거면서 그 법석을 떨었던 거니?'
동물들의 안내로 난장이들 집에 들어간 뒤에 보이는 행동도 납득이 안 간다.
남의 집에 냉큼 들어가더니 멋대로 청소를 시작한다. 그리고는 집주인 허락도 없이 침대에 드러누워 콜콜 잔다.
이런 주제넘은 계집애를 보겠나.
난장이들도 이해가 안 간다.
그런 불법 침입 앞에서 분개 내지 경계의 반응을 보이는 난장이는 딱 한 명뿐이다.
나머지 여섯은 단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백설공주를 떠받든다.
그러고도 백설공주 측에서 뭔가 자기들에 대한 감정적 보상을 해주리라는 기대도 않는다.
공주 역시 난장이들의 기사도적 헌신에 대해 감정적 차원에서나마 애틋한 반응 따위는 보여 주지 않는다.
난장이들이 자기를 여왕처럼 떠받들고, 헌신하고, 그리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태도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계모가 준 독사과를 먹고 가사상태에 빠졌다가 왕자의 키스를 받고 깨어나자마자 그 계집애가 하는 일은 즉각 왕자를 따라 숲을 떠나는 것이었다.
자신에게 일어났던 죽음에 대해서도 소생에 대해서도 일체 의구심을 품지 않고, 그토록 자신에게 헌신적이던 난장이들에게 실낱만큼의 미련도 보여 주지 않고, 고작 이마에다 뽀뽀 한 번씩을 해주고는 왕자의 백마를 함께 타고 '굿바이! 굿바이!' 하고 손을 흔들며 떠난다.
티없이 밝은 목소리로....
싸가지 없는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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