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1만년 역사 동안 수많은 정복자들이 강대한 군대를 이끌고 많은 왕들을 무릎 아래 꿇렸으며 수많은 도읍을 잿더미로 불태웠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한개 이상의 지역을 지배한 정복왕조는 극소수의 예외만을 제외하고 반란을 통해 멸망했다는 것입니다. 위대한 정복자가 고삐를 쥐어잡고 광활한 평야를 달릴 때야 아무것도 그 앞을 막지 못할 것 같지만, 말 위에서 천하를 지배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여기서 지역이라 함은, 지형지물을 통해 다른 지역과 분리되어 있고 지역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살고 있는 지역에 속해있다 믿고 있으며 그 소속감을 포기하지 않고자 하는 상태 및 땅덩어리를 의미합니다. 프랑스는 국경을 통해 스페인과 분리되어 있으며, 프랑스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스스로를 프랑스에 소속되어 있는 프랑스인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프랑스는 하나의 지역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부르고뉴 레지옹(지역, 주)는 행정적 경계를 통해 다른 레지옹들과 분리되어 있으며, 부르고뉴에 사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프랑스에 소속 된 프랑스인이라 생각함과 동시에 부르고뉴에 소속 된 부르고뉴사람이라 생각합니다. 한국인이자 동시에 부산사람인 경우를 생각하시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한개 이상의 지역을 정복한 제국은 극소수의 경우(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은 멸망이야 했지만 멸망하기 전 까지는 여러개의 지역을 제법 효율적이고 성공적으로 경영하고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사례들이 있습니다.)를 제외하고 멸망할 수 뿐이 없는 것일까요? 저는 그 이유를 사람의 독립심에서 찾아보고 싶습니다.
독립심이란 무엇일까요? 다양한 의미를 찾을 수 있겠지만, 저는 독립심을 자기 혼자 다른 사람 때문에 손해보지 않고 기존의 생활방식과 문화를 유지한 채 살아가고 싶은 욕구라 생각합니다. 만약 한 제국이 한개 이상의 지역을 정복하게 된다면, 필연적으로 한 지역은 다른 지역에 종속적이 될 수 뿐이 없습니다.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생산하는 재화는 그 지역 사람들이 어떤 의지를 가졌는가와는 상관 없이 정복자가 원하는대로 소비되게 됩니다. 정복자가 더 많은 지역을 정복하고 싶어한다면 정복당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스스로 원해서가 아니라 정복자가 원하기 때문에 인력을 제공하고 세금을 내야 합니다.
사실, 이것 자체는 정복 된 지역이나 정복되지 않은 지역이나 별 상관 없습니다. 정복자가 고향인 지역도 정복자에게 인력을 제공하고 세금을 냅니다. 그 정도에 차이가 좀 있을 수도 있겠고 불평등한 처우가 가해질 수는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정복당한 지역과 정복한 지역 둘다 인력을 제공하고 세금을 낸다는 것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정복당한 지역이 열이면 열 백이면 백 천이면 천 들고 일어나도록 만드는 것일까요? 간단합니다. 스스로의 이익, 혹은 소속 된 지역의 이익을 위해 세금과 인력이 소비되지 않는다 생각하기에, 즉 자립심 없이 타인의 의지에 좌지우지 되며 그를 통해 손해를 보고 있다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인류의 모든 것은 저 하나의 개념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손해손익. 사람들은 손해보는 것을 싫어하고 이득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남녀노소 고금불변의 법칙입니다. 수많은 인류의 복잡한 문제들이 사실 파고들면 저렇게 간단한 진리로 끝나게 됩니다. 사람은 무엇을 하든지 일이 처리되는 것에 자신의 의지가 영향을 끼칠 수 있기를 원하고, 자신의 의지가 아무런 영향도 끼칠 수 없다면 일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던 손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복제국에서는 자연스레 피정복자들이 저런 불만을 가질 수 뿐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정복자는 2가지의 선택지를 가지게 됩니다. 주둔군을 증가해서 무력을 통해 불만을 진압하거나, 피정복자가 정복자와 융합되어 마치 부르고뉴 사람이 스스로를 프랑스라는 더 높은 집단에 소속감을 느끼듯, 정복제국을 더 높은 집단으로 받아들여 그 집단에 소속감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주둔군을 증가시킨다면 그 주둔군을 증가시키는대 소모되는 금액을 피정복자에게 물리게 되고 그렇다면 피정복자는 더 불만감을 가지고 그렇다면 더 많은 주둔군을 늘리는 악순환 말고는 아무것도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그러니 진정 정복자에게 이로운 선택지는 융합정책이지만 이 융합정책은 피정복자에게 극심한 반발감을 불러오기 마련입니다. 그 반발감은 피정복자의 역사가 길면 길 수록 심하고, 민족주의가 발달 되는 날이 온다면 아무리 융합이 잘 되어 있었다 해도 다시 한번 반발감을 일으킵니다. 그것은 민족이라는 개념은 문화나 언어 같은 유형적 개념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속감이라는 무형적이고 아주 애매모호한 개념을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아일랜드는 영국 치하에 수백년동안 남아서 전통문화를 모두 상실했고 언어조차 절대다수가 영어를 쓰고 있지만 아일랜드에 사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아일랜드 사람이라 생각하고 그 민족주의를 위해 무장봉기까지 일으켰습니다. 이 사례는 민족이라는 개념이 소속감이라는 무형적인 개념을 통해 만들어짐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네, 정복제국은 결국 어떤 선택을 하던간에 언젠가는 피정복자의 봉기를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그리고 피정복자의 봉기에 언젠가는 무너질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결국 제국의 군대가 아무리 강력하더라도, 어느 시대이던 제국을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기틀은 바로 그 제국에 속해있는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아래에 있는 기틀이 흔들린다면 아무리 튼튼한 건축물이라 해도 쓰러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해서 모든 제국이 필연적으로 무너지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는 2종류의 제국이 있고 정복제국은 그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두번째 제국은 어떠한 제국일까요?
두번째 제국은 바로 연방제국입니다. 이 연방제국에 대해 얘기해보기 위해서 영국과 EU의 2가지 사례를 얘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연방제국의 사례에 왜 독일과 미국이 없고 대신 영국이 있는지 의아해하는 분도 있으실 것 같은대 충분히 설명 가능합니다. 독일과 미국은 연방제를 택했지만 본질적으로 독일은 이미 독일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독일인이라 생각하던 상황에서 연방제를 통해 하나로 융합되었었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스스로를 독일이라는 지역에 소속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바이에른의 사례도 있지만 전 아직까지 바이에른 분리독립 세력이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세력처럼 아주 활발히 움직일 정도라는 얘기를 들어보진 못했습니다. 사실 있긴 한지 의문입니다. 미국도 조금 다르지만, 이미 다른 소속감을 가지고 있는 2개 이상의 지역이 합쳐진게 아니라 원주민만 살던 곳에 원주민을 죄다 죽여버리고 하나의 거대한 국경선을 만든다음 그 국경선 안에 있는 모든 것이 기본적으로 미국이라는 소속감을 누리게 만들었으니 제가 가지고 있는 연방제국에 대한 생각을 설명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캘리포니아가 원래 수백년동안 독립으로 잘 살다가 미국에 합쳐진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가장 오랫동안 독립을 유지했던 텍사스도 끽해야 수십년일 뿐입니다. 물론 멕시코 전쟁을 통해 과거 멕시코 땅이였던 지역들을 얻어내긴 했지만, 그 얻어낸 땅은 하루종일 말 타고 달려도 사람 한명 보지 않을 수도 있을만큼 광활하기‘만’ 한 무인지대였습니다. 그 무인지대는 미국에 소속감을 느끼는 사람들에 의해 채워졌고요.
하지만 영국은 다릅니다. 본질적으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지금 연합왕국이라는 이름을 통해 하나로 합쳐져있긴 해도 근대까지 서로간에 독립 된 왕국이였습니다. 물론 스코틀랜드왕 제임스 6세가 1603년에 잉글랜드왕 제임스 1세로 즉위하면서 두 왕국은 동일한 왕을 섬기게 됬지만, 그렇다 해서 두 왕국이 동일한 왕국이 된 것은 아닙니다. 대신 동군연합이라는 특수한 관계로 얽히게 됬을 뿐입니다.
동군연합을 설명하기 위해서 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한국의 대통령이 일본의 국회의원이 되서(그런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 따위 쿨하게 넘겨버립시다.)선거를 통해 일본 총리가 됬다고 가정을 합시다. 한국과 일본은 동일한 수장을 섬기게 됬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한국과 일본이 하나로 합쳐진 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냥 한국 대통령이 일본 총리이기도 한 것 뿐이지, 각 국가는 독자적인 의회를 소유하고 있으며 독자적인 정책을 시행할 수 있습니다. 그저 대통령(총리)가 같은 것일 뿐입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도 똑같았습니다. 여담이지만, 잉글랜드 왕이 스코틀랜드 왕이 된 것이 아니라 스코틀랜드 왕이 잉글랜드 왕이 됬던 것입니다. 비슷해보여도 완전 다릅니다.
그렇다면 어쩌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가 같은 나라가 됬냐면, 그것은 바로 잉글랜드 의회에서 1706년에 사인했고 스코틀랜드 의회에서는 1707년에 사인한 연합법(Acts of Union) 때문이였습니다. 연합법은 다양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결국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하나의 나라로 합쳐진다는 것이였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연합법을 잉글랜드에서 먼저 사인하긴 했지만 스코틀랜드는 사인을 강요받지 않았고 스코틀랜드에서 직접 선정해 보낸 특사들에 의해 연합법의 내용이 각자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섬기도록 선조정 된 후 스코틀랜드 의회의 독자적인 의지에 의해 사인됬다는 것입니다. 즉, 을사늑약과는 달리 이 연합법은 스코틀랜드 의회가 독자적인 의지와 독자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독자적인 이해관계에 의해 사인한 합법적 법안입니다. 그렇다면 왜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와 합쳐졌을까요? 제가 위에 했던 말 기억나시나요? 모든 사람들은 손해를 싫어하고 이득을 좋아한다. 이 연합법도 복잡하게 볼 것 없이 저거 하나만 보시면 이해가 됩니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연합법이 이득이 되기에 연합법을 승낙했습니다.
그렇다면 연합법이 스코틀랜드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득이 됬을까요?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당시 스코틀랜드가 처해져있던 상황을 봐야합니다. 스코틀랜드는 근세를 거치며 학문과 과학을 발전시켰고 경제를 성장시켰지만 17세기 후반이 됬을 때는 경제적으로 매우 심각한 상황에 처해져 있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해상 인프라가 없었거든요. 잉글랜드, 스페인, 네덜란드, 프랑스, 이 해상의 4대강국은 발달 된 해상 인프라를 중심으로 전세계로 뻗어나가는 무역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무역망을 통해 인적 및 물적자원이 오고갔으며 그로 인해 창출되는 부가가치를 통해 4대강국은 번성했습니다. 반면 스코틀랜드에게는 해상 4대강국만한 해상 인프라가 존재하지 않았고 자연스레 범세계적 무역망에 효과적으로 접촉하지 못함으로서 유럽에 갇힌 채 고립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어느 시대던 국가적 고립은 결국 경제적 파멸을 불러오기 마련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스코틀랜드가 야심만만하게 펼쳤던 식민지 정책의 실패는 안 그래도 나약해진 국가재정에 치명타를 날리게 됬습니다.
하지만 만약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와 합쳐진다면,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자연스레 잉글랜드의 해상 인프라를 함께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고립되어 있던 스코틀랜드 상인들은 잉글랜드의 뛰어난 해상 인프라와 함께 오대양을 누빌 수 있게 되겠고 야심만만한 사내들은 신대륙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스코틀랜드만 이득을 보냐면 그것은 아니고 잉글랜드 또한 전세계를 누비기에는 매우 부족하던 인력을 스코틀랜드로부터 충당할 수 있게 되고 스코틀랜드의 세수 또한 얻게 되니 국가재정도 더 부유해지게 됩니다. 모두에게 윈윈입니다. 그러한 경제적 이유 때문에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는 서로와 연합을 이루게 되었고, 이것은 제가 생각하기에는 가장 확실한 연방제국의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서로간에 다른 소속감을 가지고 있던 2개의 지역이 하나로 합쳐졌고 그것은 총칼을 통해서가 아니라 경제적 이해관계를 통한 평화적 방법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레 두 지역은 영국이라는 더 높은 수준의 소속감을 얻게 되었고 그 소속감을 통해 모두가 이득을 보았습니다. 물론, 지금은 북해유전을 통해 스코틀랜드의 경제적 독립의지가 높아져서 2014년에는 국민투표까지 한다고 하니 조금 얘기가 달라졌긴 합니다. 하지만 스코틀랜드가 연합왕국을 떠날 때 조차 무장봉기를 통한 유혈적 방법이 아니라 국민투표를 통한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방법을 선택했으니 정복제국보다는 더 괜찮은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EU는 이 영국 연합왕국의 경제적 연맹이 유럽 전체로 확산 된 사례입니다. 프랑스와 독일간의 평화적 경제개발을 위한 연맹으로 시작했던 EU는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국가의 과반수 이상이 참여함으로서 아주 거대한 연합제국으로 합쳐졌습니다. EU에 속한 나라들은 EU에 속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이득이 되기에 참여했고, 그러니 정말 당연하게도 EU에 반대하며 무장봉기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물론 EU는 소속국가들간의 통일성이 부족하고 독자적으로 무엇인가를 진행할 능력이 결여된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그것은 앞으로 EU가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갈 문제고 통일성을 증가시키던 독립성을 증가시키던 EU는 스스로의 이해관계를 가장 최적으로 섬기는 모습으로 진화해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경제적 연맹 속에서 모두는 어느정도 이득을 얻겠지요. 더 이상 이득을 얻지 않는다면 민주적인 방법을 통해 결론을 내린 후 탈퇴하면 그만이고요.
정리하자면, 정복제국과 연합제국은 각각 과거와 미래를 상징하는 국가체제라 생각합니다. 정복제국은 사회체제가 발전되지 못했던 과거의 비효율적인 유물이며, 비록 현대에도 그것을 꿈꾸는 어리석은 자가 많기는 하지만 이미 역사는 정복제국이 무너질 수 뿐이 없음을 수십번이나 증명해냈습니다. 하지만 경제적 연맹을 통한 연합제국은 본질적으로 모두가 이득을 누리는 체제이고, 이득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한다 생각하면 그냥 탈퇴하면 그만이니 정복제국처럼 비효율적이고 비인륜적인 체제대로 돌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연합제국은 고금불변의 법칙인 ’모든 사람들은 손해를 싫어하고 이득을 좋아한다‘ 라는 법칙을 만족시키기에 당장은 정복제국보다 불안정해보일 수도 있지만 한번 정말로 안정적이게 변한다면 정복제국처럼 비인륜적이고 파멸적인 끝을 맞이하지 않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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