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운동권을 혐오한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나는 옳다. 내게 반대하는 너는 그를 수밖에 없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니 내가 너에게 가하는 모든 공격은 정당하다'는 운동권 특유의 오만한 독선이 싫어서다.
그 외, 대학을 다니지 않은 내가 현실 속에서 접했던 유일한(음... 어쩌면 한두 명 더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운동권 친구가 대단히 혐오스러운 인물이었다는 개인적인 경험도 조금은 작용했을 테고ㅡ
한데, 지금 여기서는 심미적인 이유를 들려 한다.
그래, 나는 심미적인 인간이다. 비록 내 심미안이라는 게 꽤나 시원찮은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어릴 적부터 나는 선하다거나 정의롭다는 말보다는 고상하다는 말을 더 좋아하였다. 고상하다, 고결하다, 고아하다....
그런데 이 고상하다는 덕목은 선보다는 미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건 어릴 때 더이상 읽을거리를 찾을 수 없었던 내가 어른들 책장에서 꺼내 읽었던 오스카 와일드가 어린 내 영혼에 뿌린 해독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내가 운동권을 혐오하는 커다란 이유 하나가 그들이 미적으로 너무 조야하다는 점이다.
나는 운동권 예술을 결코 좋아할 수가 없다.
온통 금박으로 어지럽게 치장한 로코코 양식도 내 취향은 아니지만, 예술이라기보다 선전물 같은 운동권 예술은 더더욱 혐오스러웠다.
선혈을 뿌린 듯한 포스터, 부릅뜬 눈과 부르쥔 주먹, 찌렁찌렁 울리는 확성기, 번쩍 명멸하는 관제탑의 탐조등, 귀청을 찢는 듯한 호각소리, 우렁찬 구령에 맞추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사열대, 그 뒤편으로 보이는 관람석에 그려진 낫과 망치, 시각을 너무도 혹사시키는 그 새빨갛고 샛노란 색깔들로부터 총알처럼 튀어나와 보는 이의 의식을 마치 강간하듯 엄습하는 단순한 메시지....
음악도 마찬가지였다.
운동가라는 걸 몇 번 들어 봤지만 저런 노래들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정말 있을까 싶기만 하였다.
장중하되 단조롭고, 씩씩하되 진정한 활기가 느껴지지 않는 노래들, 마치 좀비들의 그것 같은 맹목적인 저돌성만이 느껴지는 권태로운 노래들, 사람의 마음을 도무지 좀 편히 쉬게 해주지 않는 노래들, 편히 쉬는 것을 무슨 죄악처럼 여겨지게 만드는 노래들....
예술은 예술로서의 고유성을 지켜야 한다고 믿는다.
예술이 어떤 특정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을 수는 있지만, 그 일에 봉사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예술은 끝까지 예술로 남아야 한다고 믿는다.
아무리 고상한 메시지를 담고 있더라도 일단 그것이 예술이란 형태를 띠는 이상은 예술 작품으로서 높은 완성도를 성취해야만 옳다고 믿는다.
그걸 혁명성이라고 부르건 뭐라 부르건, 사회적 주제의식을 갖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 주제의식을 굳이 예술이란 용기에 담아서 제시하는 이상 그는 한 예술가로서 단련돼 있어야만 한다.
'난 이 정도로 열성적이니까' 하는 자부만 있고 예술적 성취를 소홀히 하는 예술가는 네거리에 서서 '예수를 믿읍시다'고 고함을 치는 광신자와 다를 바 없다.
처음부터 그와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나 그에게 동조하지 그의 고함은 진정한 호소력이 없는 것이다.
한 예술작품으로서 형식적 완성에 투철한 작품에는 그 정도의 경지에 다다르기까지 그 예술가가 겪어야 했던 고뇌가 그 속에 용해돼 있는 법이다.
그런 작품들만이 사람의 영혼을 진정 어루만져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요컨대 예술로서 우수한 예술만이 감상자로 하여금 한 인간으로서의 그의 위엄을 한층더 선명하게 깨닫게 하고, 그런 예술이야말로 진정한 혁명에 이바지한다고 믿는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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