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짱깨인생(단편)

작성자
Lv.96 강림주의
작성
13.09.30 23:28
조회
1,149

어차피 이거 하나만 쓰고 더 쓸 생각 없어서 걍 따로 게시판 만드느니 여기에 올려봅니다.





세상에는 속히 말해 '짱깨인생'을 사는 놈들이 있다. 물론 중국에 사는 뙤놈들의 인생을 말하는 것은 아니고, 엿같이 태어나서 엿같이 살다가 털털거리는 스쿠터 타고 짱깨나 배달하는 엿같은 놈들의 인생을 말하는 것이다. 그들중 한명이라도 만나본다면 참 세상에 뭐 이리 엿같은 놈이 다 있나 싶을 것이다. 편부 편모는 기본이요 아예 고아인 놈들도 있고 학교 다닐 때 정학 한두번 안 먹어본 놈은 눈 씻고 찾아봐도 안 보인다. 아마 눈깔 뽑아서 보석 세공하듯 정성스레 닦아내고나면 그제서야 한두명 겨우겨우 보일거다. 뭐, 짱깨인생 사는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짱깨인생 사는 놈들은 짱깨인생을 살고 싶어서 사는 것은 아니다. 그냥 다른 인생이 없어서 그리 사는 것일 뿐이다. 집에서 얻어터지고 길거리에서 얻어터지면서 유년기를 보내다보니 자연스레 남들 먼지나게 패는 법만 배웠다. 평생 아무것도 가져보지 못했고 모두는 나를 멸시했다. 한 부티나는 새끼는 내가 교실로 들어오는 것을 보자마자 인상을 찡그리며 '거지새끼'라고 말했다. 난 그새끼의 돼지기름 흐르는 면상을 그날 처음 봤는대도 말이다. 화나서 주먹을 휘둘렀고 돼지새끼는 처맞더니 그대로 바닥에 나가떨어졌다. 그러자 돼지새끼가 나를 공포에 벌벌 떨며 올려다보더라. 나 김재준, 욕 먹으면서 외상으로 술 받아와 술심부름이나 하고, 외상으로 못 받아오면 죽어라 처맞던 인간 김재준, 평생 남들을 두려운 눈빛으로 올려다봐야했던 나를 나보다 약한 놈이 두려워하며 올려다봤다. 해방감이 느껴졌다. 나를 평생동안 사로잡아왔던 그 지긋지긋한 두려움의 손아귀가 풀려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만약 남이 나를 두려워한다면, 나는 남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지 몰랐다. 남이 나를 두려워한다는 것은 내가 더 우월하다는 뜻이 아닌가? 그리고 이대로 계속 남들보다 우월해진다면 언젠가는 나를 쥐잡듯 패는 아버지를 이길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나는 이 공포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그 쾌감, 그 전율, 그리고 무엇보다 그 해방감, 나의 뇟속에서 아드레날린이 티엔티처럼 폭발하는 그 강렬한 느낌은 초등학교 1학년이던 나를 순식간에 매혹시켰다. 그저 죽을 것 같은 고통과 두려움만이 가득하던 나의 인생에 희망의 빛이 한줄기 비춰졌던 것이다.


안타깝지만, 그 희망은 폭력이라는 이름의 마약이였다. 폭력은 나에게 해방감과 쾌감을 줬지만 점점 나의 머릿속으로 파고들어왔고 어느새는 그저 폭력을 휘두르기 위해 폭력을 휘두르게 됬다. 더 이상 해방감과 쾌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폭력은 마약처럼 김재준이라는 인간을 완전히 망쳤다. 하지만 쓰레기가 되버린 개새끼 김재준은 자신이 개새끼가 되버렸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했다. 아니,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는 내가 쓰레기가 되버렸다는 것을 은연중 알고 있던 것 같다. 다만 나는 그 사실을, 내가 평생 증오해온 아버지같은 쓰레기 잉여인간이 되버렸다는 사실을 그저 받아들일 수 없을 뿐이였다. 결국 쾌감으로서 다가온 폭력이라는 이름의 마약은 어느새 현실도피의 수단이 되버렸다. 당시의 나로서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너무도 받아들이기 힘들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인정하는대신 그냥 도망쳐버리면 너무나 편했다. 현실로부터 도망친다면 나는 내가 개새끼가 되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아도 됬고, 내가 아버지를 증오와 공포에 차 바라봤듯 나를 증오와 공포에 차 바라보는 피해자들의 눈빛에 고통스러워하지 않아도 됬고, 나에게 아무런 미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로부터 두려움을 느끼지 않아도 됬다. 그냥 막가면 그만이였다. 나는 학교 안에 있는 나만의 왕국의 왕이였으니까! 


하지만 모든 도피는 내리막길로의 도피고 모든 현실은 굴러 내려올수록 눈덩이마냥 불어난다. 현실로부터 계속 도망칠 수만 있다면 현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든말든 신경쓰지 않아도 되겠지만, 모든 내리막길은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는 천길 낭떠러지를 끝에 두기 마련이다. 한참 열나게 도망치다 그 낭떠러지를 눈앞에 둔 사람은 2개의 선택지를 가진다. 낭떠러지 앞에 우뚝 서서 눈덩이처럼 불어난 현실을 정면으로 맞이하는게 선택지 1, 그냥 낭떠러지로 뛰어내려서 시체처럼 망가진채 인생의 해저에 처박히는게 선택지 2. 사실 이것은 선택지라 보기에도 애매하다. 첫번째 선택지를 택한 놈들은 대다수가 현실에 흠씬 두드려맞은채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두번째 선택지를 택한 놈들은 낭떠러지로 뛰어내렸으니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어떤 선택지를 택하든 결과는 비슷하다. 이게 바로 짱깨인생의 본질이다. 짱깨인생은 그냥 시작부터 엿같이 뒤틀려있어서, 사실 짱깨인생을 살며 어떤 선택을 내리든 결국 짱깨인생으로 끝날 수 뿐이 없었다. 이런 인생을 살면서 개과천선해 위대한 사람이 된 놈들도 있지 않냐고? 억세게 운좋은 놈들과 더럽게 운 나쁜 나머지를 비교하면 정말 곤란하다. 그 운좋은 놈들은 그들이 정말 엿같은 개새끼임에도 불구하고 순수한 호의로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늪에 빠진 자는 스스로 늪을 빠져나올 수 없다. 빠져나오려 발버둥 칠수록 더 깊숙히 빠져들어갈 뿐이다. 늪에서 어떤 수를 써도 빠져나올 수 없을만큼 깊이 빠져들기전에 누군가의 손을 붙잡고 그 손을 절대 놓지않는 것 만이 늪에서 빠져나오는 유일한 방법이다. 참 엿같다.


뭐, 이게 짱깨인생이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길거리로 흘러들어가서 조폭들이 써먹고 버리는 일회용 주먹으로 한번 일한 다음에 망가진 몸 가지고 노숙자가 되기도 하고, 폭주족 경험 살려 짱깨 배달하다 사고낸 후 망가진 몸 가지고 노숙자가 되기도 하고, 뭐 다양한 인생을 살지만 끝은 대부분 비슷하다. 삼사십대가 되기 전에 죽는 놈들도 허다하고 죽지 않는 놈들도 저축은 커녕 소주 한병 살 몇천원도 없는 노숙자가 된다. 노숙자가 된 후에는 뭐 오십대 되기도 전에 추운 겨울날 얼어뒈져서 지하철 공무원들의 짜증거리가 되겠지. 그런 시체를 한번 본 적 있다. 겨울날 짱깨를 열나게 배달하다가 다리를 하나 건너가려 했는대 다리 아래에 왠 노숙자 한명이 구겨진 박스랑 신문지를 덮고 누워서 자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뭐 저러다 뒤지겠지하는 생각 하면서 다리를 건너려 했는대 어째 다리를 건널 수가 없었다. 아마 노숙자들간의 알력다툼에서 밀려나 지하철로부터 쫓겨났을 그 노숙자를 어째선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 노숙자에게서 나의 미래를 봤기 때문일까? 지금 생각해봐도 그냥 스쿠터 타고 지나가지 못했던 이유를 도저히 모르겠다.


여하튼, 나는 털털거리는 스쿠터를 세운 후 배달중인 짱깨가 식으면 돌아가서 뒤지게 얻어맞을거란 생각하면서 다리 아래로 내려갔다. 노숙자 바로 옆까지 가니 고약한 냄새가 스밀거리며 올라왔다. 처음에는 그 인간이 하도 안 씻어서 그런 것일꺼라 생각했고 그리 틀린 생각도 아니였다. 나는 인상을 잔뜩 찡그린채 '여기서 자면 입 돌아가요.' 라 말하며 바닥에서 주운 막대기로 그 노숙자를 흔들었다. 그런대 그 인간이 조금의 미동도 없더라. 그래서 뭔가 이상하단 생각에 자세히보니 그 인간의 가슴이 오르락내리락거리지 않았다. 숨쉬는 인간이라면 누구든 가슴이 오르락내리락거리기 마련인대 그 이름모를 노숙자의 가슴은 그냥 얼음처럼 딱딱히 굳어있었다. 이미 죽은 것이였다. 나는 순간 속에서 무엇인가 올라오는 것을 느낀후 그날 먹었던 것을 모두 토해냈다. 시체가 징그러워서 토한 것은 아니였다. 그냥, 이 모든게 너무도 부조리하게 느껴졌다. 모든게 엿같이 뒤틀려있었다. 누구는 자상한 부친과 친절한 모친 사이에서 태어나 사랑을 듬뿍 받고 태어나 자라며 자랑스럽게 태양아래 당당한 사람으로서 걸어다니는대 누구는 개새끼 아버지와 뒈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사랑대신 매를 듬뿍 얻어맞으며 자라 짱깨인생이나 살게 됬다. 이 이름모를 노숙자도 큰 차이는 없을 것 같았다. 왜 똑같은 사람인대 누구는 씨이오니하며 존경받는 인생을 살고 누구는 씨이발같은 인생을 사는가? 왜 똑같은 사람인대 누구는 행복하고 누구는 씨발 엿같은 바닥에서 벌레처럼 꿈틀거리다 얼어뒈져야 하는가? 왜!


그게 작년 겨울의 일이였다. 그 노숙자를 본 후 하루하루 어떻게 보냈는지는 딱히 기억나는 일들이 없다. 그냥 모두를 향한 분노와 증오를 시꺼멓게 가슴에 품은채 기계처럼 살아갔다. 내 인생에서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었고 그냥 먹고 싸고 자다가 때 되면 뒈지는 것 뿐일 인생을 계속 살아가야할 이유가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냥,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모든 것이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남들을 탓하는 것도 탓할 힘이 있을 때의 일이지 탓할 힘조차 사라지면 그때부턴 그냥 증오와 고통이 가슴속에 쌓이고 또 쌓이게 된다. 그놈들은 안에서부터 사람을 먹어들어가며 사람을 산채로 죽인다. 요번 봄까지의 나는 생물학적으로는 살아있지만 심리학적으로는 이미 죽어버린 인간이였다.


그런대 요번 여름에 참 기묘한 일이 일어났다.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지만 길가다보이는 노숙자들은 어째 죄다 결핵에라도 걸린 것인지 뒈진 놈처럼 면상이 희끄무레한 것이 전염병에라도 걸린 것 같았다. 그러자 정부의 높으신 분들은 잠시 잡담 좀 나눈 후 '아 병걸린 노숙자들 처리해야지' 하며 노숙자들을 죄다 보호시설로 강제수용하라는 명령을 내렸는대 보호시설의 수용인원이 부족해 대부분의 노숙자들은 그냥 대대적인 단속 한번 뜨고난 후에 지하철에서 쫓겨나 다리아래나 뒷골목 같은 곳으로 끼리끼리 모였다. 제대로 된 치료 못받은 노숙자들이 죽기도 참 많이 죽었다던대 길거리에는 통 보이지 않아 그냥 짱깨들끼리의 소문으로만 들었다. 


그렇게 사람들로부터 사라진 노숙자들이 다시 나타난 것은 요번 육월 장마철이였다. 비가 하도 많이 내려서 도로란 도로는 죄다 침수됬는대 그런 날에는 오히려 짱깨들 일이 늘어난다. 밖에 나가기 싫은 사람들이 그냥 짱깨나 불러서 시켜먹기 때문이다. 나는 그날도 그나마 침수 덜 된 길목들을 쏘다니며 굶주린 영혼들에게 먹을거리를 나눠주고 있었다.  길거리에 사람은 커녕 사람 그림자도 하나 보이지 않았고 하늘은 시꺼멓게 우르릉거리는게 내일까지는 비가 그치지 않을듯 싶었다. 하지만 비가 얼마나 쏟아지든 말든 나는 앞으로 이십분안에 끝내야하는 짱깨배달이 수두룩했기에 열나게 스쿠터를 당겨재꼈다.


그런대, 길목 코너를 한번 돌으니 웬놈이 물속에 대가리를 축 처박은채 늘어져있는 모습이 보였다. 락 가수같은 산발머리하며 거적떼기같은 옷차림을 보니 요즘 통 보이지 않았던 노숙자임이 분명했다. 딱 봐도 죽은지 한두시간은 흐른 놈이였다. 그 노숙자를 보자 작년 겨울의 그 엿같은 경험이 문득 떠올라 기분이 나빠진 나는 그냥 스쿠터 타고 시체를 지나치려했다. 뭐 비가 그치면 누가 나와서 치우든 할테니까.


근대 덥썩! 그 시체를 스쿠터 타고 지나가니 갑자기 뭔가가 내 발목을 잡았다! 순간 균형을 잃은 나는 스쿠터에서 떨어져 바닥을 굴렀고 스쿠터는 대략 오륙미터쯤 빗속을 미끄러지다 멈춰섰다. 다행히 바닥의 빗물 조심하느라 속도를 줄여둬서 큰 부상은 피할 수 있었지만, 갑작스러운 봉변에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스쿠터에 기스가 났으니 돌아가면 뒈졌다란 생각이 머리를 순간 스쳤다. 


하지만 여유로운 걱정은 나중에 할 일이였다. 나는 우선 뭐가 내 발목을 붙잡은 것인지 고개를 틀어 쓰러진채 바라봤는다. 그런대 이게 꿈인지 생신지, 아까 그 노숙자 시체가 팔을 쭉 뻗어 희번뜩거리는 썩은 손으로 내 발목을 붙잡은게 아닌가! 대가리는 여전히 바닥에 처박은 상태였지만, 곧 부자연스러운 로봇이 고개를 들듯 삐걱거리는 자세로 고개를 들어 동태눈깔같은 면상으로 나를 바라봤다. 어벙벙한 나의 머리에 순간 어둠의 경로로 다운받아 봤던 세계전쟁Z가 떠올랐다. 나는 본능적으로 붙잡히지 않은 발을 들어 노숙자 좀비의 머리를 걷어찼다.


그리고 그게 끝이였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기습때문에 이대로 죽는건가 싶었지만 의외로 노숙자 좀비는 발길질 한번에 목뼈가 뒤로 꺽이더니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너무 간단해서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였다. 낙하 충격때문에 쑤셔오는 몸을 일으켜 발끝으로 노숙자 좀비를 툭툭 건드리기도 했는대 이번엔 정말로 끝난 것인지 조금의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순간 내가 그냥 기절해있던 사람을 좀비로 착각해 죽여버린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싸늘한 긴장이 등골을 휘감았다. 나는 재빨리 주변을 휙휙 둘러본 후 스쿠터를 일으켜 황급히 그곳을 떠났다. 스쿠터는 맛이 갔기에 시동이 걸리지 않았고 배달통에 들어있던 짱깨는 죄다 엎어지고 뜯겨져 바닥을 시커멓게 물들였지만 신경 쓸 여를이 없었다. 


나는 중국집으로 돌아가 된통 얻어맞고 스쿠터 배상까지 한 다음 중국집으로부터 쫓겨났다. 주머니에는 만원짜리 두장밖에 없었고 중국집에서 숙식도 해결했기에 딱히 가서 쉬거나 할 곳도 없었다. 손은 살인의 충격에 끊임없이 떨려왔고 머리는 새하얗게 질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온몸이 축 늘어진듯 힘이 빠졌다. 이대로 그냥 죽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인생에 너무도 지쳐있던 나에게 갑작스럽게 덮쳐온 이 모든 재난들은 너무 감당하기 힘들었다. 나는 상점에 들어가 이만원내고 회칼 하나 산 다음 길거리를 그냥 아무런 생각도 의미도 없이 휘청이며 걸었다. 당장 회칼로 내 모가지를 따버리면 이 인생과 고통이 모두 끝날 것이 분명했지만 비를 맞으며 길거리를 걷는 이유를 나는 몰랐다. 마지막 회한 때문일까, 인생에 대한 마지막 집착 때문일까, 아니면 내 모가지 하나 딸 수 없는 나의 나약함 때문일까. 나는 그냥 거리를 걸었다. 그것은 어찌보면 현실도피와 별 차이 없었다. 그냥 길거리를 계속 걷다보면 모가지를 따거나 이 고통스러운 삶을 그냥 계속 살아가거나 둘중 하나를 선택해야만하는 인생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었다. 이번에도 그렇게 삶으로부터 도망만치려는 나 자신이 너무도 증오스러웠는대 아이러니하게도 길거리를 걷다보면 그런 자기증오로부터도 도망칠 수 있었다.


그런대 그렇게 길을 걷다보니 왠 이상한 모습이 보였다. 노숙자 둘이 비틀거리며 메서운 빗속을 걷고 있었고 그런 노숙자들로부터 왠 정장입은 남자가 공포에 질린 얼굴로 온힘을 다해 도망치고 있었다. 노숙자들은 매우 느렸고 가끔 넘어진 후 다시 일어나기도 했으니 정장입은 남자가 필사적으로 도망칠 이유는 없었지만 정장남은 마치 그 노숙자들이 움직인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도 두려운 것처럼 보였다. 그 정장남은 나를 보더니 환색을 하며 고래고래 외쳤다. '좀비에요, 좀비! 시체들이 움직여요!'. 나는 우뚝 자리에 멈춰섰다. 떨리던 손은 언제 떨렸냐는듯 순식간에 멈췄다. 그런 나를 보더니 정장남은 희망찬 얼굴로 다시 외쳤다. '제가 가진 것 모두 드릴테니 제발 와서 이것들 좀 처리해주세요. 제 차를 탈 수가 없어요!'.


나는 회칼을 꺼내든 후 그냥 밍기적거리는 시체 무더기나 다름없는 좀비들의 모가지를 땄다. 너무도 간단해서 그냥 무써는 것만 같았는대 그런 나를 보더니 평소라면 나같은 짱깨족들을 벌레처럼 내려다봤을 외제차 정장남이 연신 감사를 표하며 아예 지갑채로 꺼내 나에게 건내줬다. 아마 지갑만해도 내 월급은 될듯 싶었다. 정장남은 지갑을 건내준 후 보넷이 우그러진 외제차를 타고 거리를 떠났다. 보아하니 저 노숙자 좀비들을 운전하다 실수로 친듯 싶었다. 그렇게 정장남이 외제차를 타고 떠난 후에도 나는 마치 번개라도 맞은듯 우뚝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이후 느끼지 못했던 그 해방감과 전율이 뇌를 짜릿하게 관통하는 것을 느꼈다. 나는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였다. 나는 좀비를 죽인 것이였다. 그리고 이 좀비를 잘만 이용하면 아주 큰 돈을 벌 수 있을지도 몰랐다. 당장 지갑을 열어보니 신사임당 열명이 두둑한 몸집으로 나를 향해 미소짓고 있었다. 현실도피가 나를 살리고 어둠의 늪으로부터 번쩍 들어올려줬다.


그 후 알아보니 이 좀비들은 그리 위험하지 않은듯 보였다. 이 좀비는 바이러스로 퍼져나갔지만 결핵처럼 몸이 약해져야만 그 증상을 드러냈고 길거리에서 쫓겨나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노숙자수준이 아니면 감염되든말든 큰 영향 끼치지 않았다. 물리자마자 좀비로 변하는 영화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대 사람들은 영화와 소설로부터 맨날 봐왔던 좀비(최소한 좀비와 비슷한 것)가 현실에 나타나니 너무도 두려워하며 꽥꽥거렸다. 순식간에 슈퍼마켓의 라면과 통조림과 3분요리들은 바닥이 났고 사람들은 문을 걸어잠그고 집밖으로 절대 나오지 않았다. 인터넷에는 온갖 루머가 퍼져나갔는대 좀비가 우사인 볼트보다 빠르다든지 핏방울 하나만 튀겨도 좀비로 변한다든지 물리면 순식간에 좀비로 변한다든지하는 내용이 대다수였다. 제법 필력이 대단한 사람들의 루머도 있어서 좀비를 직접 상대해본 나마저도 좀비가 이리 위험한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정부도 이 좀비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기에 시민들에게 집안에 대기하도록 권고했고 그런 정부의 권고는 시민들의 공포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였다. 내 생각에는 농심 사장이 갑작스러운 호황에 놀라 기쁨의 비명을 지를 것 같은 상황이였다. 삼분요리나 라면은 만드는 족족 불티나게 팔려나가 농심에서 좀비 운운하며 가격을 올려도 불평하는 사람 한명 없었으니.


나는 이 혼란기를 틈타 오토바이 하나 훔친 후 회칼과 빗자루 막대를 청테이프로 묶어만든 창 하나 등에 매고 배달서비스를 시작했다. 식량이 부족한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나의 광고를 보고 나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럼 나는 오토바이에 라면이나 삼분요리를 잔뜩 매고 운반해가 개당 만원에 팔았다. 불평하는 사람에게는 '내 목숨값이 만원도 못하단거요?' 라고 말하며 위압적으로 내려다보면 만사가 해결됬다. 가끔 집앞의 좀비를 처리해달라는 전화도 걸려왔는대 그럼 창으로 최대한 힘들어보이게 좀비를 처리한 후(당연하지만 칼이나 맨손으로도 처리하기 쉬운 좀비를 창들고 처리하니 진짜 힘들진 않았다) 좀비 한마리당 오십만원씩 받았다. 현금이 없는 사람에게서는 귀금속같은 현물로 받아 금은방에 팔아넘겼다. 대강 매일마다 이백에서 삼백씩 벌었다. 중국집에서는 숙식도 제공받는 대가로 한달에 40씩 받았으니 예전 연봉을 이틀마다 버는 셈이였다. 


이제 난 부자다. 사회의 가장 밑바닥 쓰레기들을 처리하며 시체를 이용해 큰 돈을 벌었다. 이제 돈도 많아졌고 좀비가 두려워 교외로 떠나가는 사람으로부터 싼값으로 강남의 40평짜리 아파트도 샀으니 이제 남부럽지 않은 집도 있었다. 그런대 어째 상상했던 해방감과 행복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매일밤마다 악몽을 꿨다. 내가 오토바이를 타고 끝이 보이지 않는 길거리를 질주하는 악몽이였다. 시간은 밤인지 낮인지 알 수 없었고 사방이 밝은지 어두운지도 알 수 없었다. 그냥 끝없이 이어지는 길거리와 그 길거리를 가득 메운 수백의 내가 있을 뿐이였다. 그들은 모두 아무런 희망도 미래도 없는 엿같은 표정으로 나를 멍하니 바라봤다. 그럼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가 그들의 모가지를 땄는대 그럼 내 주머니에 신사임당이 생겼다. 신사임당을 더 갖고 싶은 나는 다른 나들이 얼마나 끔찍하고 엿같은 인생을 살아왔는지 조금의 신경도 쓰지 않으며 오로지 나의 주머니에 쌓이는 신사임당만을 위해 다른 나들의 모가지를 따고 또 땄다. 결국 나의 주머니는 신사임당으로 가득찼고 그 무게에 나는 오토바이로부터 떨어져 바닥을 알 수 없는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또 떨어졌다. 그렇게 악몽을 꾼 후 식은땀에 젖어 침대위에서 깨고나면 그냥 가슴을 칼로 도려내는듯한 섬뜩한 고통만이 느껴졌다.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추악한지 알기 때문이리라. 내가 지금 하는 일은 하늘 위 보이는 실낱같은 희망을 위해 짱깨인생을 살다 뒈진 놈들의 시체를 쌓아올리고 또 쌓아올려 기어올라가는 일이였다. 지저분한 일이였다. 그리고 매번 잊기 위해 온힘을 다해 노력하지만 나는 그 좀비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아왔을지 잘 알고 있다. 나는 그들을 더 이상 고통스럽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리 지저분한 일을 하지 않고는 이 엿같은 짱깨인생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러니 울며 겨자먹기로 할 수 뿐이 없었다. 더럽고 지긋지긋하지만 해야만했다. 안 그러면 길거리에서 회칼로 내 모가지를 딴 후 자살하는 수 뿐이 없었으니. 하지만 어째 좀비들을 한마리씩 처리할 때마다 나의 가슴속에서 무엇인가가 썰려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럴수록 나는 점점 텅빈 인간이 되어가는 것 같았고 그 텅빈 구멍을 돈으로 메꾸려하지만 밑빠진 독처럼 흘러나갈 뿐이였다. 나는 여전히 생물학적으로는 살아있지만 심리적으로는 죽어있는 인간이였다. 나는 나자신의 추악함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옛날 내가 괴롭혔던 아이들의 명단을 적은 후 그들에 대해 알아봤다. 나는 그들의 집에 돈과 먹을거리들을 가지고가 나의 추악함에 대해 사과하고 또 사과했다. 대부분의 경우 돈과 먹을거리는 받았지만 나의 사과는 받지 않았다. 욕도 잔뜩 얻어먹었다.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의 아버지가 나에게 갑작스레 사과를 한다면 나는 오로지 싸늘한 증오감만을 느낄테니까. 그런이들에게 계속 물고늘어지며 사과를 한다면 오히려 그게 더 부담스러울 것이였기에 나는 나의 사과를 받지 않은 자들의 명단을 따로 만들어놓기만 하고 명단의 다음순서로 떠났다. 


그때 김소희를 만났다. 김소희는 학창시절부터 어째선지 나를 안타까운 눈초리로 바라보곤 했다. 김소희는 나의 사과를 받아들인 후 나를 안아줬다. 나를 받아들여줬다. 지금것 수많은 사람을 만나왔지만 나를 받아들여준 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오로지 나를 차가운 폭력과 증오와 멸시로서 대할 뿐이였다. 그 호의에 나는 아이처럼 울었다. 만약 내가 아주 어릴 때 단 한명이라도, 수많은 선생과 어른들중에 단 한명이라도 나를 받아들여주고 나를 안아주고 나를 매와 폭력이 아니라 사랑으로서 인도해주려했다면 나는 과연 이렇게 됬을까. 나는 김소희의 집에서 그간 누구도 관심가지거나 들어주지 않았던 나의 인생얘기를 줄줄히 말했고 그녀는 조용히 모든 것을 들어줬다. 다 얘기하고나니 너무도 개운했다. 마치 목욕을 해서 나의 온몸을 뒤덮고있던 더러운 때들을 모두 씻어낸 것만 같았다. 나는 김소희에게 나의 집에서 함께 살고싶냐고 물었고 그녀는 나의 제안을 기꺼히 승낙해줬다.


여전히 나의 과거는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다. 나 자신의 추악함은 가끔 나의 심연에서부터 고개를 들이밀며 나의 행복을 끝장내려하고있다. 하지만 누가 말했던가. 함께하며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사람 한명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고. 나를 추악함을 보고 오히려 그 추악함을 어루만져준 김소희 덕분에 나는 이제 새사람이 되었다. 이제 김소희만 나의 곁에 있다면 인생이 어떤 오물을 나에게 던져대도 그것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마침내 짱깨인생의 어두운 그림자로부터 벗어났다. 그리고 당당하게 태양 아래를 걷는 남자의 인생을 살게 됬다. 인생이 이리 즐거운줄 그 누가 알았을까.


Comment ' 3

  • 작성자
    Personacon 카페로열
    작성일
    13.09.30 23:34
    No. 1

    내서재 단편란 게시판 하나 만드셔서 넣어 두세요.

    저도 별생각없이 끄적인거 하나 넣어뒀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0 초용운
    작성일
    13.10.01 01:27
    No. 2

    다 좋았는데 끝이 '뭥미?' 싶네요. 그 앞까진 진짜 재미있게 잘 읽었는데... 맨 마지막에 아예 딴 글로 바뀌어 버리는데요 ㅜㅜ 두 문단 만에 갑자기 해피엔딩으로 변하니까 몰입감이 확 떨어지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96 강림주의
    작성일
    13.10.01 10:08
    No. 3

    ㅜㅜ 죄송합니다. 그냥 배드엔딩으로 끝내려했는대 왠지 배드엔딩으로 끝내니 좀 그래서 해피엔딩으로 고쳐봤었는대 그게 안좋았나보네요.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강호정담 게시판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208832 다들 읽어 보셨겠지만...유료연재 사용기간에 대한 내용... +6 Lv.99 별일없다 13.10.01 1,392
208831 시놉시스에 대해 질문입니다. +1 Lv.47 그래이거다 13.10.01 1,085
208830 얼마전에 티브이를 미국에서 샀다고 올렸는데요 +7 Lv.10 무곡성 13.10.01 1,402
208829 혹시 백신 안쓰시는분계신가요? +7 Lv.10 무곡성 13.10.01 1,328
208828 곰곰히 생각을 해봅니다 +7 Lv.64 가출마녀 13.10.01 1,102
208827 [판타지소설의 몰락 이유],,,,,,,,,,! +6 Lv.99 진리의용사 13.10.01 1,826
208826 꼭 낮잠 자면 꿈을 꾸네요. +4 Lv.68 임창규 13.10.01 1,016
208825 정신줄을 놓아버리고 말았어.. +3 Personacon 천공환상 13.10.01 970
208824 10월 31일이 되면 +3 Personacon 히나(NEW) 13.10.01 1,050
208823 서울에 사시는분 데이트는 주로 어디서 하시나요?? +7 Lv.51 치타치스 13.10.01 1,156
208822 검은사막 cbt +3 Lv.85 검이달빛에 13.10.01 1,181
208821 도서관에 비치해도 좋을만한 판타지 소설을 추천해주세요 +47 Lv.13 찌르라기 13.10.01 2,034
208820 얼마전에 천마군림감상을 감상란에 썼는데 삭제되었네요.... +8 Lv.85 猿兒 13.10.01 1,160
208819 버스 타고 오는 길에 떠오른 옛날 에피소드 +5 Lv.77 새벽고양이 13.10.01 943
208818 웹툰 하나 추천해 드려요 Lv.36 돌아옴 13.10.01 1,015
208817 [취재파일] 부산 숭어에서 나온 세슘…후쿠시마에서 왔나? +4 Lv.99 곽일산 13.10.01 1,262
208816 상반기에 떨어졌던 이력서 다시 낼때.... +9 Lv.97 윤필담 13.10.01 1,156
208815 ... 쿠베라의 간다르바가 좀 사기긴 했네요 +2 Personacon 적안왕 13.10.01 1,480
208814 모 작가분의 알수 없는 행보... +8 Lv.99 惡賭鬼 13.10.01 1,910
208813 책, 책을 사야겠다... +5 Personacon 엔띠 13.10.01 1,135
208812 처음엔 퇴근이란게 +4 Personacon 藍淚人 13.10.01 1,157
208811 이런 문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1 Lv.9 글쟁이전 13.10.01 1,347
208810 주인공을 굴리는게 좋은신가용? +10 Personacon 마존이 13.10.01 1,856
208809 여자한테 간식선물받았다고 안먹는사람 이해가안감. +8 Personacon 마존이 13.10.01 1,710
208808 맥주의 신세계를 경험했습니다. +15 Lv.12 악마왕자 13.10.01 1,395
208807 나는 힙합이 싫다 +15 Lv.1 [탈퇴계정] 13.10.01 1,320
208806 제가 쓴 글을 보면 강릉에 대해 나오는 장면이 꼭 나옵니다. +8 Lv.90 부정 13.09.30 1,079
208805 내 고약한 성질 +8 Lv.1 [탈퇴계정] 13.09.30 1,094
» 짱깨인생(단편) +3 Lv.96 강림주의 13.09.30 1,149
208803 안드로이드 슈팅게임 만들기... +7 Personacon 엔띠 13.09.30 1,352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genre @title
> @subject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