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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소설에서의 화폐와 가치

작성자
산트카치야
작성
12.11.02 05:28
조회
913

마 요즘 우리나라 판타지 소설에서의 화폐 체계는 대개 금-은-동 일 겁니다. 골드, 실버, 쿠퍼… 이런 식으로요. 사실 이게 가장 생각하기 쉬운 체계지요. 또한 동시에 가장 현대의 체계와 비슷한 것이기도 하고요. 요컨대 화폐 체계를 주변에서 찾다 보니까 눈에 띄는 게 현대의 화폐 체계이고, 이를 받아들여서 이름만 적당히 바꿨다고 볼 수도 있겠군요.

현대의 화폐 체계의 핵심은 가치의 약속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화폐는 두 가지의 가치를 지니지요. 하나는 화폐를 생산하는데 든 가치의 총합, 다른 하나는 완성된 화폐에 부여된 가치입니다. 현대에서 중요시되는 건 전자가 아닌 후자이고, 그렇기 때문에 저희들은 무척이나 편리하게 화폐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100원은 (물가의 변동에 따라 약속된 '100원'이라는 명목적인 가치와 실제 가치가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어디까지나 100원이고, 10원 열 개의 가치이며, 100원 열 개가 모이면 1000원의 가치를 갖게 되죠. 이는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그러기로 약속을 했으니까요.

이런 체계로 구성된 판타지 소설 속의 화폐는 어떤 가치를 지닐까요? 가장 흔하디 흔한 가치 기준인 - 동시에 소설 중반을 넘어가면 대부분 의미를 상실하는 기준인;; - <1골드 = 4인 가족의 1달 생활비> 이론을 채택한다고 해봅시다. 아, 물론 저는 여기에 몇 가지 가정을 더 넣어서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첫째, 1골드의 질량은 7.70g (500원 주화의 질량) 이다.

둘째, 같은 화폐의 제작단가는 동일하다.

셋째, 1골드는 100실버, 1실버는 100쿠퍼이다.

       (1골드 = 100실버 = 10,000쿠퍼)

넷째, 금본위제 기준이다.

일단 금의 가격을 먼저 알아야 1골드의 제작단가──── 약속한 가치가 아닌, 1골드가 지닌 '진짜' 가치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근데 문제는, 금 시세가 세상 돌아가는 모양 따라서 요동치는 것처럼 수백 년 전 금 시세를 도무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대부분 판타지의 배경이 되는 중세 유럽을 기준으로 하면 더더욱 그렇지요. 어쩔 수 없이 인터넷을 뒤져서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기준을 가지고 하겠습니다.

바로 <1실링 = 금 0.31g>이지요. 출처는 유명 블로거 Nasica님의 <머스켓 소총의 경제학>입니다.

1814년 영국을 기준으로 했을 때 1실링이라는 돈은 금을 0.31g 과 동등한 가치로 취급되었다는 뜻입니다. 비록 문명의 수준이 꽤 차이가 나긴 하지만, 그래도 위에서 가정한 것에 이것을 대입해보도록 하죠.

7.70/0.31의 값은 약 24.8387 (반올림) 입니다. 즉 1골드를 500원 짜리 동전 크기라고 생각했을 때 그 가치는 1814년 영국을 기준으로 24실링 하고도 약 1실링 정도가 더 나올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 생각을 해보죠. 1실링으론 뭘 할 수 있었을까요? 당시 영국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 1실링이었고, 1실링으로는 3파운드의 빵 (약 1.4kg) 을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요즘 식빵 한 봉지에 2천 원 정도 하고, 당시 1파운드의 빵 가격이 금값으로 계산해서 4천 원 정도였다고 하니, 이것을 감안해도 1골드는 엄청난 고액 화폐입니다.

다만 한 가지를 간과했다는 사실을 말씀드려야 합니다. 바로 저 금값이 19세기 초 영국을 기준으로 했다는 것이지요. 서양사에 관심이 많으신 분은 아시겠지만, 중세시대 금값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훨~씬 더 비쌌습니다. 정확한 자료를 지금 이 시간엔 도저히 구할 수 없어서 계산은 불가능합니다만, 적어도 4인 기준 1개월 생활비보단 높은 가치를 지녔다는 건 짐작이 대강 가능합니다. 편의상 1골드를 1천만 원이라고 합시다. 그럼 위의 가정에 의해 1실버는 10만 원, 1쿠퍼는 1천 원이 됩니다.

…자, 1실버도 1쿠퍼도 골드와 동일한 질량을 갖는다고 할 때, 각 화폐의 제조비용은 약속된 - 즉 1골드 가치의 1/100, 1/10,000으로 정해진 - 가치에 비해 비쌀까요, 아니면 쌀까요? 당연히 비싸겠지요. 은으로 만들어지는 은화는 어디까지나 금보단 쌀 뿐이지, 그냥 놓고 보면 비싼 게 당연하잖습니까. 약속된 가치에 비해 지나치게 비싼 화폐를 과연 어떤 중세 정부가 대량으로 찍어낼 수 있겠습니까?

결국 '약속된 기준의 화폐'란 중세시대를 기준으로 하면 무척 쓰이기 어려운 제도였다는 것입니다.

P.S. 잠기운을 쫓으려 썼는데 이 무슨 횡설수설인지… 그냥 '이런 멍청이도 있구나' 하고 넘어가 주세요. 더 깊게, 더 정확하게 들어가면 전 아티클을 하나 써낸다는 마음가짐으로 자료 찾고 계산을 해야 한단 말예요orz

P.S.2 결론적으로 말하고 싶은 건 '금은 복본위제도'가 그나마 대다수 판타지의 시대적 배경에 어울리는 화폐제도라는 것, 그리고 <늑대와 향신료>는 비교적 간단하게나마 이를 등장시켰다는 것…. 그거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거죠?!

P.S.3 금은 복본위제도란 무지 단순하게 말해서 금화의 제작단가 등에 따라 상대적으로 은화와의 교환비가 계속 달라지는 것을 말합니다아…. 즉 순도 99.9% 금으로 만든 1골드가 1만 실버로 교환됐다면 순도 50% 의 금화는 비록 같은 이름을 걸고 나온 금화라도 5천 실버 정도에 교환되는 거죠…. 물론 법제상으로는 교환비가 정해져 있었지만 (1 : 15 라던가?) 시장은 나름대로의 교환비를 만들고 그게 계속 변하는 터라….


Comment ' 4

  • 작성자
    Lv.85 Host
    작성일
    12.11.02 07:54
    No. 1

    어쩔수 없는 한계가 아니겠습니까, 뭐 소설가가 원한다면 물물교환 등으로 거래하는 장면을 넣을수도 있겠지만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무명선생
    작성일
    12.11.02 09:35
    No. 2

    어차피 금과 은이 귀한 시대라서 대중적인 화폐로 쓰이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또한, 화폐에 쓰이는 금과 은의 순도가 높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고,
    1:10이니 1:100이니 하는 비율도 그저 온라인 게임에서나 존재하는 단위인거죠 뭐.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2 디메이져
    작성일
    12.11.02 13:29
    No. 3

    약속된 가치보다 제작단가가 더 비싸면 차라리 금화를 녹여서 팔겠죠.
    역시 물물교환이나 다른 화폐로 가야하나.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페르딕스
    작성일
    12.11.02 14:09
    No. 4

    제도가 잘된 현대 우리나라 바로 얼마전에도 그런일이 있었죠. 10원 동전에 들어있는 구리가 10원보다 훨씬 비싸기 때문에 5억원어치의 동전을 녹여서 12억에 판 사람이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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