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봉사 나가는 중학교에 저를 졸졸졸 쫓아다니는 아이가 있습니다. 뭐 매주 연재(?)해왔던 글을 읽어오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요.
오늘은 수업 끝나기 직전에 저희 반 애들한테 물어봤죠. 그 녀석 안 오느냐고.
그랬더니 애들이 걔는 이제 안 온답니다.
그래서 저를 친구로 여기던 마음이 변했나? 싶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앞으로 괴롭힘당할 걱정 없으니 아싸!를 외쳤지요.(...)
그런데 수업 끝나고 애들이 자리 정리하던 와중에 저는 창가에 앉아서 침침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학교 건물 근처에 그 아이가 알짱거리더군요. 누구를 기다리는 듯이...
저는 당연히 안 부르고 '오~ 오늘은 그냥 집에 가나?' 하면서 계속 앉아 있었는데,
미친 저희 반 녀석이 제 옆으로 다가와서 문득 걔를 보더니만 '여~ XX야~' 하고 부르는 겁니다.
그 순간 걔가 얼굴 돌리면서 저랑 시선이 마주쳤고
저는 '아놔 젠장 ㅜㅜ' 하면서 그 녀석을 부른 아이를 쥐어박고는 재빨리 숨으려고 했지만... 이미 시선이 마주친 뒤라서 어찌할 수가 없더군요. 그 길로 쪼르르 올라와서 교실로 쳐들어오더군요.
예. 그랬습니다. 그냥 평소와 달리 수요일이 아니라 금요일에 갔더니 얘가 저 온 줄을 몰랐을 뿐이지 이 녀석이 저 약올리려는 심보는 전혀 변한 게 아니었어요. ㅜㅜ 제기랄...
뭐, 그 다음에 진도는 여느 때와 같았죠. 옆에 와서 쫑알거리는데,
"오늘은 금요일에 오셨네요."
"그래. -_-"
"왜 사세요? ^^"
"-_-..."
젠장. 아주 변함이 없는 레퍼토리더구만요.
그래도 저번 주에 문피아에 한탄 글을 올렸더니 어떤 분이 조언을 해주셨거든요? 그걸 그대로 한 번 써봤습니다.
"왜 사세요? ^^"
"너 보려고 산다. ^^"
"^^"
"^^"
그러면 기분 나빠서 떨어져나갈 줄 알았는데!!
"아 기분 나쁘네요."
"어. 기분 나쁘라고 한 말임."
"예."
"응."
"...."
"...."
"안 가냐?"
"왜요?"
"기분 나쁘다매."
"기분 나쁘지만 제가 왜 가야 해요?"
"너 떨어뜨리려고 한 말인데."
"그래서 떨어질 것 같아요?"
"....아니. (젠장젠장젠장젠장젠장)"
제기랄. 전혀 효험이 없었습니다. 뭔가 부끄러워할 줄이라도 알았는데 그냥 쿨하게 씹고 지나가요!! 이래서 문피아 사람들은 전혀 도움이 안 된단 말이야!!
아무튼 그렇게 또 옥신각신하면서 교무실에 들렀다가 교문까지 기어갔지요.
"이번에도 나 길막할 생각이냐?"
"글쎄요?"
"...-_- 하지 마. 너 때문에 저번에 1시간 20분을 붙잡혀 있었던 후로는 완전 트라우마 생겼어. 트라우마가 뭔지 아냐? 정신적 상처 말이야, 상처!"
"알아요. ^^"
"....(제기랄)"
그런데 그 때까지 우중충하기만 하던 하늘에서 갑자기 한 방울 두 방울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금세 후두둑 소낙비로 변하더군요. '아놔 ㅅㅂ 비 오네 젠장' 하면서 우산을 꺼내 들었는데.... 그 녀석은 아무 것도 안 꺼내고 그냥 자전거 자물쇠만 풀더군요.
"우산 없냐? -_-"
"예. -_-"
"...-_-"
"...-_-"
"...젠장. 이거 쓰고 가고 다음 주 수요일에 돌려내놔. -_-"
"시러. -_-"
"왜! 내 껀데!!"
"갖다 버릴 거임. ^^"
"아놔 이런 배은망덕한 놈."
제 손에서 휙 우산을 빼앗아가더니 잘 펴서 잘 들고 가대요. -_-
썩을...괜히 친절을 베풀었다 싶었죠. 나름대로 교육자의 마인드로 선의를 베푼 건데, 역시 이런 놈들에게 좋은 마음 보여줘봐야 아무 쓸모없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ㅜㅜ
참고로 얘기하던 도중에 반말로 바꾸더군요. -_-
어차피 존경심이라고는 눈꼽만큼도 기대하지 않았던 터라 "니 꼴리는 대로 해라. -_-" 하고 말았지요.
"우산도 되게 안 펴지는 게 선생님 닮았네. ^^"
"-_- 그게 우산 빌린 놈 입에서 나올 소리냐?"
"자전거 자물쇠도 안 풀리더니 모든 물건이 다 선생님
예. 그리고 튀었습니다.
저는 비 쫄딱 맞고 물독에 빠진 새앙쥐 꼴이 되어서 집에 왔고요. 뭔가 이번에는 그래도 비가 내려서 저를 오래 붙잡지 않더군요. 뭐, 그걸 감안해도 한 20분은 학교에서 저를 붙잡았던 것 같지만... -_
그리고, 젠장.... -_- 아무리 생각해도 다음 주 수요일에 안 가져올 것 같은데... -_-
돌려받을 수 있을까요, 우산? ㅜㅜ
아, 그리고 정담은 역시 도움이 안 됩니다. 조언 받은 게 전혀 쓸모가 없었어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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