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2007년 4월 17일이었습니다. 저는 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집에 들어가던 중이었죠. 시각은 저녁 10시 반경?
당시 저희 집은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서 약 3분 정도, 아파트 단지 안으로 걸어 들어가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저는 친구와 함께 문자를 하고 있었죠. 그렇게 문자를 주고받다가 내릴 때가 되어 버스에서 내렸고, 걸어가던 도중 친구에게 다시 답장이 왔어요.
저희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옆쪽에 작은 놀이터가 있는 길을 지나야 했습니다. 놀이터를 가로지르지는 않고 그냥 옆에 두고 왼쪽으로 꺾어지는데, 꺾어지면 바로 벤치 세 개와 가로등이 하나 있었어요. 그리고 이 장소는 이미 단지 안으로 들어온 곳이라 사방에는 건물이 있고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죠.
놀이터를 조금 못 가서, 친구에게 다시 답장이 왔다는 것을 안 저는 걸어가며 메시지를 작성했습니다. 그리고 막 놀이터 옆으로 꺾어져서 첫 번째 벤치를 지날 때쯤 메시지 전송을 눌렀고, "전송이 완료되었습니다" 하는 안내문구가 뜨는 걸 본 순간 제 옆으로 긴 그림자가 하나 있다는 걸 눈치챘어요. 휴대폰을 봐야 해서 아래쪽을 보고 있었으니까요.
이때만 해도, 저는 그저 다른 행인이나 아파트 주민일 거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휴대폰을 닫고 앞을 보는데, 갑자기 뒤에서 탁탁 하고 뛰는 소리가 들리며 그 긴 그림자가 저에게 덮쳐오더군요. 그 사람이 왼손으로는 제 입을 막고, 오른손으로는 제 몸을 더듬더듬하기 시작했어요. -_- ㅅ.. 당시에 저는 공부를 한답시고 다 보지도 않을 거면서 책만 무겁게 가지고 다녔던 터라(...) 가방이 두 개나 있었어요. 뒤로 매는 작은 백팩이랑 한쪽 어깨에 매는 숄더백이요. 가방이 무거워서 낑낑대며 걷고 있던 중이었는데 그렇게 붙잡히기까지 하니 힘을 쓸 수가 없더라구요.
아니 무엇보다, 붙잡히는 순간 떠오른 생각은 어? 내가 아는 사람이 장난치는 건가? 하는 거였어요. 저는 지독한 안전불감증에 걸려 있었던 거죠. 그런데 그 놈이 제 몸을 더듬기 시작하고 사태 파악이 되자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어요. 정말 하~ 얗게.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라는 표현이 괜히 있는 게 아니더라구요..ㅋㅋ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순간 가방을 내던지고 도망을 가든지 했었어야 할 것 같은데, 막상 그 상황이 닥치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고 돌이켜 보면 전 왠지 가방을 지켰어요.. -ㅅ- 순간적으로 지갑 등등이 떠올라서. 게다가 뒤에서 붙잡고 입을 막으니 당황해서 경황이 없었죠. 그러다가 제가 버둥버둥거리니까 이자식이 화가 났는지(?) 저를 패대기치더라구요. ㅋㅋ.. 그래서 벤치에 막 팽개쳐지고, 신발이 다 벗겨지고. 뭐 그런 건 나중에 알았고 일단 팽개쳐지는 순간 든 생각은 입이 열렸다! 라는 거였어요. 그래서 아파트 단지가 떠나가게 비명을 질렀죠. 마구마구 온힘을 다해 죽을힘을 다해. 이것도 참 생각해 보면 그자식이 조금만 더 흉악한 놈이라 흉기같은 거라도 가지고 있었으면 저는 이 얘기를 하고 있지 못할 수도 있는데, 천만다행으로 그런 건 없었나 봐요. 제 머리도 붙잡고 막 저를 계속 어떻게 하려고 하다가 제가 정말 계-속 일초도 쉬지 않고 비명을 질러대자 안되겠는지 냅다 도망을 가더군요.
처음부터 끝까지 그자식의 얼굴은 보지 못했어요. 다만 나중에 도망갈 때 고개를 돌려 뒷모습을 보긴 했는데, 초록색 후드티에 크로스백을 매고 갈색 칠부바지를 입고 모자를 썼던 게 기억나요. 가로등이 있던 곳이어서 저녁 때였지만 보였거든요. 아무튼 뒷모습이었지만 척 보기에도 나이가 별로 안 되었던 것 같아요.
나중에 보니 막 안경도 날라가고 신발 한짝은 저쪽에 굴러다니고 있고 난장판이더라구요. 집에 거의 다 온 상태여서 엄마가 빨래를 널으시려고 베란다 쪽에 오셨다가 제 비명을 들은 모양이었어요. 저보다 더 놀라셨다는.. 대충 수습해서 5층까지 어떻게 올라갔는지도 모르겠어요. 당시 그 집은 5층이 꼭대기인 저층 아파트라 엘리베이터도 없었거든요. 어찌어찌 걸어올라가서 가방 다 떨어뜨리고 방에 딱 들어갔는데 폭풍눈물이. ㅋㅋㅋ
지금이야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지만, 중요한 건 5년이 흐른 지금에도 제가 이렇게 정확한 날짜와 상황을 기억한다는 거예요(게다가 아마 그 날은 인천이 아시안게임 개최지로 확정되는 날이었던가? 그렇기도 했던 것 같아요). 얼마나 충격을 받았던지 아직도 그 불쾌한 감각이 생생해요. 심지어 그 자식이 제 입을 막으려 손을 내밀 때 그놈 손에서 나던 비누 냄새. 한동안 그 냄새가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아 비슷한 향만 맡아도 소름이 끼치고 그랬죠.
그래서 전 항상 어디 가서 여자애들에게 이야기해요. 늘 조심해야 한다고. 그런 일은 어디 티비에나 인터넷에 올라오는 글인 줄로만 알았는데 저한테 생기니까 확 느껴지더라구요. 생각지도 못하게 당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약 3분이잖아요. 정류장에서 저희 집까지. 그런데 그 3분 안에 끔찍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면 정말 항상 긴장해야 할 것 같아요. 다행히 그 날은 아무 일도 없이 끝났지만, 그 후로 저는 절대 그 길을 이용하지 않았고 혹시 불가피하게 이용해야 할 경우에는 결코 혼자 가지 않았더랬죠.
정말 남자분들이랑 비교해서 불공평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성별을 바꿀 수는 없으니 어쩌겠어요. =ㅅ= 그래서 전 남자가 반드시 갖춰야 할 매너중 하나가 여자를 꼭 데려다 주는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아.. 예전에 대학 들어온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는데요. 늦은 시간에 동기 몇몇이 자취하는 동기 집에서 놀았다나 봐요, 여자 세 명에 남자 한명이었던 것 같아요. 자취집은 여자동기 A네 집이었구요. 그런데 그 남자 동기는 그 중 한 여자동기(B)를 좋아했어요. B는 조금 술이 오른 상태여서, A가 B를 위해 술 깨는 약을 사러 나가려고 했죠. 내심 혼자 나가기 무서웠던 A는 유일한 남자애가 갔다오든지 아니면 자기랑 같이 가주기를 원했지만, 그 남자애는 어떻게든 B랑 있고 싶은 마음에 A에게 그냥 혼자 갔다 오라고 했다죠. 제가 그 이야기를 듣고 욕을 욕을 했던 기억이..ㅋㅋㅋㅋ
아무튼 여자분들, 우린 남자들에 비해 참 불공평한 점도 많지만 ㅠㅠ 그래도 여자로 태어나서 좋잖아요. ㅋㅋㅋ 그러니 항상 조심하고 무슨 일 안 당하게 정신 바짝 차려요. 일 벌어지는 건 정말 한순간이더라구요. -ㅅ-.. 그리고 남자분들!은 여자분들 꼭 에스코트해 주세요. 특히 늦은 시간에는.. ㅋㅋㅋ
아. 변태 이야기를 쓰다 보니 예전 고등학생 때 있었던 일이 생각나네요. 저희 학교 뒷편에 바로 산이 있어서 변태가 그곳을 이용해 자주 출몰하곤 했는데, 그날은 방학 때였나 야자 때였나 하던 때였죠. 또 변태가 산을 타고 내려와서, 학생들이 창가에 달라붙어 보면 그자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볼 수 있었던 것 같았어요. 전 나가보진 않았지만. ㅋㅋ 그 소식을 들은 저희 반 친구들, 잠시 나갔다 오더니
도로 들어와서 안경을 챙겨가지고 다시 나가더군요.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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