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양반들은 '미국의 용병'이 되어 박통이 군인들을 강제로 퍼줬다...라고 말하는데 실상은 좀 다릅니다.
지원제였고, 이것도 차이가 있었습니다. 전방부대 사병들은 가고 싶어도 못 갔으니까요. 혹부리 영감네 때문에...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라는 노래가 있었을 정도로 당시에 월남이 특수였는데, 월남을 다녀오면 집에 텔레비전 하나 사놓을 수 있을 정도로 돈번다고 해서 너도나도 가려고 했습니다.(당시엔 티비가 매우 고가품이었지요.)
당시 월남에 파병된 나라는 한국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장병들이 가서 너무 잘 싸워서 우리만 가서 날뛴 것처럼 여겨지지만, 필리핀도 참전하고 태국도 참전하고 주변에 미국 우방인 나라들은 한 다리씩 다 걸쳤지요.
그 중에서 우리 장병들이 봉급이 제일 쌌습니다. 제일 비싼 건 당시 아시아 선진국인 필리핀이었구요.(이 사실이 현재로 생각하면 무지막지하게 납득이 안가겠습니다만...)
아시다시피 월남전은 한국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단순히 경제특수만 아시는데, 이 외에 여러가지 영향들이 있었습니다.
1. 대만이 호로색히로 전락하다.
이전에 미국의 극동정책은 일본과 대만을 중추적으로 지원하는 것이었습니다.(동남아시아는 월남과 필리핀)
그러나 당시 UN상임이사국이기도 했던 대만이 개호로색히 같은 짓을 했습니다. 냉전시대에 지들만 살겠다고 미국의 파병에 동참하지 않았지요.
뭐 이건 그렇다 쳐요... 근데 이색히들 일본처럼 병참지원한다면서 와서 월남경제 개깽판 쳐놓고(뼛속까지 우려갔습니다...), 심지어 미군과 한국군의 작전계획까지 월맹에 팔아넘겼습니다.
미국은 극도의 배신감을 느꼈고, 우리 장병들이 피를 흘린 만큼이나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많이 좋아졌지요.
2. 국군 장비의 현대화
당시 한국군은 미군이 지급하는 군수물자를 많이 삥땅쳤습니다.
M16 소총을 비롯해 우리가 필요로 하던 장비들을 많이 얻었고(?) 심지어는 포탄 탄피까지 대길이 식으로 말해서 '앗쌀'하게 챙겼습니다.
여기에 파병을 조건으로 요새로 치면 F-22 랩터급의 성능을 가졌던 전천후 전략전투폭격기 F-4팬텀을 아시아에서 가장 도입했습니다.(아직도 써먹고 있습니다...)
3. 신군부의 싹이 트다
29만원 할배는 보기와 달리 날랜 인간이었던지 미국 레인저 스쿨에 가서 1등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 양반은 월남에 가서 장세동이 위급할 때(관통상...) 구원한 적이 있는데(대공포가 빗발치는데 헬기를 몰고가서 구출..;;;), 나중에 장세동 역시 그가 위급할 때 구원하여 의리를 지켰고, 이 의리는 군신관계로 맺어져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29만원 할배는 대마왕이지만, 휘하의 마왕들을 앗쌀하게 챙겨주었는데, 상납금이 콩 한쪽이라도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고 합니다.
덕분에 29만원 밖에 없다며 배째라는 소리하면서도 잘먹고 잘살고 의리는 개팽겨치고 이합진산하는 현재 정치인들을 비웃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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