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은 흑인노예 였습니다.
프랑스가 대혁명을 일으키긴 했지만, 서인도제도의 흑인들에게까지 자유 평등 박애를 내보일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었죠.
당시 아이티에서 생산되는 설탕의 가치는 엄청나서, 영국에 인도가 있다면 프랑스에는 아이티가 있다...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다시 말해 인도=아이티 였던 셈이죠.
이토록 막대한 부를 안겨주는 아이티였지만, 이 곳에서 삶은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황열병으로 사람이 파리처럼 죽어가기 일쑤인데다, 이곳에 파견되는 관리나 군인들은 다들 죄를 짓고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인간들 밑에서, 지옥같은 환경에서 살게 되었으니 노에생활을 하는 흑인들의 삶은 지옥 그 자체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죽어라고 일하고 사탕수수 찌꺼기로 만든 럼주로 삶을 연명했지요.)
투생 루베르튀르는 프랑스가 혁명정신은 눈꼽만큼도 자신들에게 적용하지 않는 것을 보고 동지를 모아 아이티 해방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프랑스 군은 연패하였고, 결국 프랑스 본국에서는 나폴레옹이 르끌레르 장군을 파견하여 토벌을 하려 듭니다. 그러나 투생 루베르튀르는 여우같은 전략가였고, 프랑스군은 전쟁으로 이길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죠.
그래서 프랑스군은 비겁하게 강화회담을 하자며 그를 끌어냅니다.
당당히 아이티 공화국의 독립을 일구어냈다고 믿은 투생 루베르튀르는 야비한 프랑스인들의 손에 잡혀 처형당하고, 그의 가족도 프랑스로 끌려가 최후를 맞았습니다.
프랑스는 주동자를 처벌하는 선에서 토벌을 끝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이티의 흑인들을 모두 전멸시키기로 작정하고 잡아들였지요.(몽땅 다 죽이고 아프리카에서 새로 노에를 사들일 계획이었습니다.)
프랑스군은 잡아들인 흑인들을 처형선이라고 불린 배에 태워서 바다로 내보냈습니다. 배의 선창에 갖힌 흑인들은 화로에서 피어난 유황가스에 질식되어 숨졌고, 선원들은 이렇게 죽인 흑인들을 바다에 내던졌습니다. 이런 끔찍한 일이 수차례 반복되었지요.
처음엔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무도 몰랐죠. 해안가에 십수만의 흑인들의 시체가 밀려오기 전까지 말입니다.
이 엄청난 대 학살에 반기를 든 프랑스 장교들도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만, 결과적으로 프랑스는 히틀러보다 앞서 인종청소를 행한 폐악국가가 되었죠.
나중에 히틀러가 파리를 점령하고 나폴레옹의 무덤을 아주 정중히 방문했다고 하는데, 아마 그의 입장에서 나폴레옹이 꽤 매혹적인 인물이었을 겁니다. 뭐 스스로 비슷하다 여겼을지 모르겠습니다. 개뿔없는 외국 출신의 촌놈이 강대국의 지도자가 되어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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