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인 용은 어느날 한 소년을 만나고 친구가 됩니다. 그 소년은 왕국의 왕이었지만, 일반인보다 3배 빨리 늙는 조로증 환자.. 순식간에 세월은 흘러가버리고 주인공은 소년의 임종을 지켜보게 되지요.
조로증 때문에 방에서 한 순간도 나온 적이 없던 왕은 주인공밖에 친구가 없었고, 주인공 또한 왕을 진실된 친우로 여깁니다. 임종을 맞는 순간 왕은 주인공이 자신을 그리며 고독해할 것을 생각하고 '자신', 즉 왕이 되어 자신이 미처 누리지 못한 즐거움을 누리라고 합니다.
주인공은 친구를 추모한 뒤, 친구의 유지를 이어받아 친구(왕)가 되기로 하지요.
그리고 주인공은 아카데미에 가서 난봉을 피웁니다...(...)
농담이고, 인간에 흥미를 지닌 용이 아카데미에서 이런저런 사건에 휘말리는 걸 써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서;;
사족. 근데 원래는 안 그랬는데 문체가 어느 순간 바뀌어버렸네요.
능력이 있으면 괜찮은데 능력이 없으니 진짜 허세체가 되어버릴듯;;
사족2. 매번 서장만 쓰고 마네요. 좀 끈기있게 쓰긴 해야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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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나의 친우여, 이 목숨이 종언을 고하기 전 마지막으로 부탁할 것이 있다네.”
군청색 머리칼의 소년은 가만히 서서 침대 위에 편안히 누워있는, 얼굴에 검버섯이 가득한 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인의 가슴은 천천히, 하지만 점진적으로 요동을 줄여가고 있었다. 생기가 사라지는 기척, 죽음에의 막이 올라가는 최후의 증언대.
“무슨 부탁인가?”
그 위에 선 소년은 어려 보였지만 그만큼 늙어보여, 수백 년의 세월이 새겨놓은 비통을 감각하는 듯했다.
“내가 되어주게.”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소년은 자신의 친우가 한 말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었나본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그가 초월자인 용종(龍種)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수명의 십분의 일도 살지 못한 노인의 심중을 파악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나는 네가 될 수 없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
노인은 비꼬는 것이 아닌, 순수한 호기심을 담아 소년에게 질문했다.
“너와 나는 종족이 다르다.”
노인은 인간종이고 소년은 용종이다. 두 종족은 수명도 형태도 크기도 표피도 장기도 다르거니와, 존재를 구성하는 ‘본질’부터가 다르다.
“어느 누구도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네. 세상 사람들은 나의 이름과 직위, 그것에 따라오는 금은보화와 권력과 영토와 신민은 알고 있지만, 내가 진정 어떻게 생겼는지, 내가 진정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내가 진정 몇 살인지, 내가 진정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내가 진정 무슨 병을 앓고 있는지, 심지어는 내가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지도 몰라.”
소년의 황금색 눈동자가 커졌다. 그가 노인을 처음 만났을 때, 그때는 소년이었던 노인은 이 방에서 줄곧 혼자 있었고, 세월이 흘러 청년이 된 노인 역시 이 방에서 줄곧 혼자 있었으며, 생을 마감하려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이 방에서 줄곧 혼자 있었다.
“세 배의 시간이 함축된 세월을 살아오며 내가 유일하게 얻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네일세.”
노인은 그렇게 말하며 주름살이 가득한 손으로 소년의 아름다운 두 손을 약하게 쥐었다. 소년은 노인의 손에서 느껴지는 차가움이 죽음의 다른 이름인 것처럼 느껴져 가슴이 슬며시 아려왔다.
“너에게 내 심장을 한쪽 주겠다.”
용의 심장. 무한한 생명력을 내포하고 있는 천고의 보물에 눈독들이고 있는 사람은 셀 수 없이 많았다. 하지만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자네가 나를 위해 그런 식으로 희생하길 원하지 않아. 애당초… 그게 있다고 살아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은가?”
“음….”
소년은 이를 악 물었다. 마음만 먹으면 하룻밤 만에 왕국을 없애버릴 수도 있는 그였지만, 티끌 같다고 생각했던 한 인간을, 자신의 가장 친애하는 친우를 살리는 것도 불가능했다.
“점점 졸려오는 걸 보니 자네와 말을 나눌 수 있는 시간도 얼마 안 남은 것 같구만.”
“눈을 감지 마라.”
“허허, 나도 그러고 싶네만… 나이는 속이지 못하겠군. 이십년도 채 살지 못한 필멸자가 이딴 소리를 지껄이는 게 자네 입장에서는 기가 차겠지만.”
처음과 비교해서 확연히 목소리의 힘이 빠졌다. 소년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마법을, 비술을, 약을, 의술을 떠올려보았다. 하지만 예전과 같이 지금 역시 해답을 마련할 수는 없었다.
“한정된 시간을 필멸자로서, 인간으로서 살아오면서 느낀 것이 있다네.”
노인은 마지막으로 유언을 남기려는 듯이 절실한 어조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무엇이지?”
“불완전한 우리들은 혼자서는 살아남을 수 없기에 사회를 형성하고 국가를 형성해, 온갖 중첩된 관계 위에 스스로를 세웠지. 나는 처음에는 그런 것들이 나라는 존재를 왜곡하는 족쇄라고 생각했어.”
소년은 노인의 손을 잡은 채로 조용히 경청했다. 하나밖에 없는 창문의 바깥에서는 눈이 허공을 하얗게 채색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네. 관계란 나를 구속하지만, 그 구속은 나를 타인에게 예속시키는 구속이 아니라, 나를 다른 누군가와 이어주는 연대였어. 그때 나는 깨달았지, 내가 느끼는 모든 삶의 감각들과 나라는 존재의 불멸성은, 바로 관계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소년은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지만 차마 노인에게 설명을 요구할 수 없었다. 지금 저렇게 이야기를 하는 노인의 모습이 무척이나 충만해 보였기 때문이다.
“자네가 인간이 아닌 이상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게야. 자네는 태어날 때부터 완전하기에 타인의 존재가 우리만큼 절실하지도 않을뿐더러, 우리가 느끼는 격렬한 감정 또한 느끼지 않겠지.”
노인을 만나기 전의 그였다면 분명 동의했을 터였다. 하지만 노인을 만나고, 그와 관계를 맺으면서, 소년은 인간의 감정이라는 것에 눈을 뜰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내 억지일 수도 있을 거야. 그래도 나는 자네가 나와의 추억만 곱씹길 바라지 않아. 분명 자네는 세월의 힘을 빌어 다시 예전처럼 혼자로 돌아갈 수 있겠지만… 불완전한, 그래서 타인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나는, 자네가 앞으로도 영원히 누군가와 함께 지내기를 원하네.”
지금 노인을 만나기 전의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는 것이 나은 것일까? 과거로 돌아가 지금 자신이 느끼는 싱숭생숭하고 아려오는 느낌을 느끼지 않는 것이 오히려 상책인 것은 아닐까?
“디비니티, 나의 친애하는, 일생의 하나밖에 없는 벗이여. 나는 지금 자네의 선의를 짓밟고, 자네를 나의 망념으로 얽어매려하고 있어. 미안하네, 나의 친우여. 내가 오롯하지 않은 까닭에, 내가 무(無)로 귀의하는 존재이기에, 이제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은 자네의 마음속에 아로새겨진 추억밖에 없다네.”
어두운 방을 금색 입자가 환하게 밝히기 시작했다.
“그래. 나는 지금 자네에게 저주를 걸고 있는 거야.”
일찍이 이 세계를 창조한 여신은 필멸자들에게 생을 부여함과 동시에 죽음을 부여했다.
“자네와 함께 모험을 떠나보고 싶었고, 자네와 함께 낚시를 해보고 싶었고, 자네와 함께 레이디를 꼬셔보고도 싶었고, 자네와 함께 통쾌히 술잔을 기울여보고도 싶었네….”
여신은 앳되게 스러지는 필멸자들을 긍휼히 여기어, 그들이 숭고함 속에서 임종을 맞도록 하였다.
“디비니티, 내가 되어주게…. 내가 되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즐거움과… 슬픔과… 기쁨을… 느껴주게….”
여신의 인도.
여신에게 이끌려서, 육체도 정신도 혼도 잊고, 그저 시공을 숭고하게 비추는, 태양과도 같은 금빛 입자로 환원되어, 필멸자들은 허무로 향해간다.
“레이!”
디비니티는 노인의 이름을 외친다. 아니 레이는 이미 노인이 아니었다. 금빛 입자로 화하는 그는 더 이상 미련이 없다는 듯이 소년의 무구한 미소를 짓는다.
“여…동생을… 부탁…하…네….”
마지막으로 남았던 레이의 얼굴이 금빛 입자로 화해, 여신의 인도 하에 알지 못하는 세계로 향한다.
그 세계가 천국인지 지옥인지는 용종인 디비니티로서도 알 수 없었지만, 만약 이 세계를 창조한 여신이 진정으로 오롯하고 진정으로 자비롭다면…
“너에게 허락된 건 틀림없이 천국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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