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어느 여름방학이었습니다
친구의 2학기 등록금에 좀 보태주려고 하숙집을 나와 방학동안
그 친구의 자취방에 거하고 있었던 때 였습니다
가뜩이나 없는 자취살림에 식구가 하나늘어 쌀도 반찬도 다 떨어져
아침부터 굶고 있던 더운 여름날 오후였습니다
저는 부엌을 통하여 쪽문으로 들어오는 약간의 바람을 마시며
배고픔을 달래고 있었습니다
헌데,
뭔가 비릿한 냄새를 접하고 고개를 쳐드는 순간
웬 닭 한마리가 부엌에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그 닭을 본 순간 제가 맨 처음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물론 부엌문을 닫는 것이었습니다
역시 배고픔은 머리보다는 몸으로 느끼는 모양입니다
과연 저 닭이 왜 여기에 왔을까...? 뉘집 닭일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저는 이미 운룡대팔식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제가 경공을 펼치는 것과 동시에 친구 둘은 소리쳤습니다
"문닫앗"
닭을 부엌에 가두고서는 우리 셋은 연신 하이파이브를 쳐댔지만
닭이 스스로 요리가 되어 방안에 들어올리는 만무했습니다
죽은 닭을 요리하는 거야 아무 어려움이 없었지만
닭이 스스로 죽어줄리는 없고 누군가는 손에 피를 묻혀야 했습니다
과연 우리가 가위바위보를 했을까요?
물론 패를 돌렸습니다...아시다시피...밤일낮장이지요
때는 해가 중천에 있었고...저는 일명 메주(?)를 뽑았습니다(사실은 기억안남)
닭은 고분고분 했습니다
왼손으로 가볍게 등을 쓰다듬고 오른손은 미리 역으로 꼬아서는 목을 비틀어
잡았습니다...약 오성의 공력으로 비틀었지만 차마 마지막 내력을 쏟진 못했습니다
마음을 다잡고 눈까지 질끈 감았지만...역시나...
이를 보다못한 친구가 패를 돌린 노고도 무색하게 저를 밀쳐냈습니다
"이리 줘 봠마"
하지만 우리 셋 모두의 손을 거치고도 닭은 무사했습니다
우리는 낙담했습니다...
방생의 공덕을 쌓은 셈치고 우리는 부엌문을 열어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닭은 생문이 열렸음에도 나갈생각을 않는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정중히 나가줄것을 거듭 권유했지만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오히려 철푸덕 하고 주저 앉는 것이었습니다
골골거리는게 아무래도 아까의 핍박으로 인해 내상을 입지 않았나
사료되었습니다
우리는 반색을 하고 저러다 죽으면 그 때 잡자
꼴을 보아하니 저녁 때를 맞춰 주려나보다....하고서는
다시 여름오후에 지쳐 살짝 잠이 들었습니다
서쪽 하늘이 발게질 즈음 우리는 주린배를 느끼고 잠을 깼습니다
정신이 들자마자 부엌쪽문을 향했지만 이미 닭은 온데 간데 없었습니다
헌데...
부엌 바닥에 굴러다니던 슬리퍼위에...
김이 모락모락 날것 같기도 하고
신선한 이슬이 맻혀 있는것 같기도 하고
쥐면 파닥거릴것 같기도 한 싱싱한 닭알이 하나...
그 닭알이 스크램블이 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지만
그 스크램블이 삼등분 되기까지는...좀 걸렸습니다...
물론 모두에게 한 숟갈도 되지 않는 양이었지만
그 맛은...차마 형용할 만한 말이 없군요
다만...그 전에도 이후에도 먹어보지 못한 맛이었습니다
그 닭은 아마 알을 낳을 작정을 하고 장소를 찾아 들어온 모양이지만
우리는 구명지은에 대한 보답으로 두고 간 것이라 믿기로 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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