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에 삼국지 무장10이 나오면서 과연 삼국지가 저렇게까지 분석되고 사랑받아야 할 대상인가에 대한 의문을 가져 자료를 올려 봅니다.
찜찜한 삼국지 열풍(한국일보 2004-01-3)
광복 이후 국내 최고의 베스트셀러는? 1위는 '2종 운전 보통면허 시험문제집'이다. 지금까지 대략 2,000만부가 팔렸다고 한다. 2위가 바로 이문열의 '삼국지'(민음사 발행)이다. 이 책은 1988년 선보인 후 해마다 평균 100만부씩 팔려, 한 달 후면 1,500만부에 이른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창비)나 김용의 '영웅문'(고려원) 등을 진작 앞질렀고 중·고교생의 스테디셀러인 '수학의 정석'이나 '성문기본영어'보다도 많다.
대학입시 면접이나 논술을 앞두고 읽어야 할 기본 교재처럼 정착됐고, 초등학교 6학년생들까지 보고 있다니 그 열풍을 짐작할 만하다. 얼마나 '낙양의 지가'를 올렸으면 이 출판사의 한 간부는 "미안할 정도로 잘 팔린다"고 했을까. 그는 "이문열씨의 문장이 탁월하고,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자신의 의견을 섞어 넣은 평역으로 균형을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나관중의 삼국지 외에도 진수의 정사 삼국지를 토대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 전개함으로써 글 읽는 재미와 함께 처세술, 임기응변의 지혜를 갖게 해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이러한 삼국지 열풍에 대해서 비판과 함께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삼국지를 연구해 온 민경욱(서울대 중문학과 박사과정)씨는 최근 중국 전문 학술지 '중국의 창'에 실은 '삼국지 현상 비판'이란 글에서 "문학사에 거론되는 작품 가운데 최악에 가까운 점수를 받고 있는 삼국지가 중복 출간되고, 학생들이 몰려드는 것은 출판사의 과도한 선전과 잘못된 이해의 결과"라고 비판했다. 또한 한 문학평론가는 "삼국지가 논리적 사고능력을 측정하는 대학논술 시험을 대비한 책이 될 수도 없고, 돼서도 안 된다"며 "앞으로 '삼국지 죽이기' 운동이라도 벌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황석영씨의 '삼국지'(창비 발행)가 출간됐고, 장정일씨의 '삼국지'도 단행본 출간을 앞두고 있어 '삼국지 시장'은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특이한 현상은 특정 삼국지 광고가 나가면 경쟁적 책도 덩달아 잘 팔린다는 점이다. 삼국지 현상 논란과 새 기록 달성을 앞두고, 삼국지를 쓴 또 다른 작가가 남긴 말이 떠오른다. "삼국지가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 나라는 불행한 나라다."
/최진환기자
[강준만의 쓴소리]"삼국지 열풍"의 사회학[한국일보] 2004-01-12
한국일보 1월 3일자에 실린 '찜찜한 삼국지 열풍'이라는 기사 내용이 재미있다. 가장 잘 나가는 삼국지의 경우, 88년에 선보인 이후 1,500만 부 가까이 나갔다고 한다. 출판사측에서 "미안할 정도로 잘 팔린다"고 말하는 게 실감이 난다.
왜 그렇게 잘 팔리는 걸까? 삼국지 자체의 뛰어난 재미와 평역본을 낸 작가들의 탁월한 역량을 빼놓을 순 없겠지만, 아무래도 삼국지를 읽는 것이 '논술 공부'에 도움이 된다는 속설 탓이 제일 큰 것 같다. 그래서 초등학교 6학년생들까지 삼국지 읽기에 뛰어들었을 것이다. 물론 그러한 속설의 확산엔 '출판사의 과도한 선전과 잘못된 이해'가 적잖이 작용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 만으론 의문이 다 풀리지 않는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건 바로 한국인들의 자녀 교육관이다. 이는 주변에서 삼국지를 권하는 사람들의 주된 논거를 뜯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치열한 생존경쟁 체제하에서 산전수전(山戰水戰) 다 겪은 한국의 부모들은 세상이 살벌하며 권모술수가 흘러 넘치는 곳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대학입시 경쟁을 '전쟁'의 수준으로 격화 시키는 데에 부모들이 앞장서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치를 귀신같이 꿰뚫어 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순진무구하고 이타적인 품성을 갖고 있는 자식? 자식을 그렇게 키우고 싶은 부모가 얼마나 될까? 공적 담론을 통해선 사랑의 순수성을 역설하던 지식인도 막상 자기 자식의 혼사에 대해선 웬만한 '마담 뚜' 못지않은 현실적 안목을 갖게 된다는 건 전혀 비밀이 아니지 않은가.
"세상 알 건 알아야지요." 자식에게 삼국지를 읽히는 부모들 가운데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많다. 삼국지를 읽으면 무얼 알 수 있다는 건가? 무엇보다도 삶은 전쟁이요, 처세술과 임기응변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무기라는 걸 알 수 있을 게다. 물론 그 무기를 다루는 법도 배우게 될 것이다.
그걸 배우는 게 나쁜가? 아니다. 문제는 그것이 초등학생 때부터 배워야 할 것은 아니며, 불타는 향학열로 범국민적인 '열풍'까지 불러 일으켜야 할 학습 대상은 아니라는 점일 것이다. 삼국지 평역본을 낸 작가들의 선의는 존중해야 하겠지만, 그 작가들 역시 지금과 같은 열풍에 대해선 다소 곤혹스러워 할 것이다.
"삼국지가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 나라는 불행한 나라다." 삼국지를 쓴 어느 작가는 그렇게 말했다지만, 그건 나라 차원의 이야기일 것이고 개인 차원에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삼국지를 읽어야만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삼국지 열풍은 스쳐 지나가는 에피소드가 아니다. 그건 한국적 삶의 진실의 한 단면을 웅변해주는 것이다. '한국형 발전 모델'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면 그 모델의 첫번째 특성은 '투쟁 지향성'이다. 초고속 성장과 '빨리빨리 문화'는 바로 그런 투쟁 지향성의 산물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투쟁 지향적 발전 패러다임은 전체적인 국부의 증대엔 큰 기여를 해 왔지만, 더 이상 삶의 질은 높이지 못한다. 삶 자체가 격렬한 투쟁의 연속인 바, '무엇을 위한 삶인가'라는 의문에 봉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치판의 마키아벨리즘은 비난하면서 자녀들에겐 마키아벨리즘의 지혜를 가르쳐야만 하는 이중성이 한국적 삶의 본질인지도 모르겠다.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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