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제가 재수 시절 답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어 울분을 토하고자 쓴 글입니다. 지금 와서 다시금 삼수에 도전하려고 하니, 예전의 기억이 아련하게 떠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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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까띵까 띵띵까~ 띵까띵까 띵~!
띠띠띠띠리리링~!!
새벽 5시.
휴대폰의 모닝콜 소리가 울린다.
잠이 덜 깬 눈을 부비적 비비고 일어난다.
일어남과 동시에 TV를 켠다.
매일 보는 CNN뉴스의 앵커가 나와 나에게 샬라샬라 외쳐댄다.
아침에 일어나 집에서 나갈때까지 CNN을 본지도 벌써 10년.
유심히 보는 것도 아니지만, 영어가 귀에 익숙해지기 위해 시작한 일종의 훈련이다.
이 닦고, 면도 하고, 샤워하고, 밥을 먹고, 옷을 입는다.
아침 6시.
집에서 나와 학원으로 출발.
아침 7시.
학원에 도착했다.
캔커피 한잔을 뽑아서 아침 수업이 시작할 때까지 천천히 마신다.
아침 수업이 시작하는 시간은 8시. 그 때까지 1시간 동안 수학문제를 푼다.
...
...
..
..
.
.
오후 3시 40분.
학원 수업이 끝난다.
갈 사람들은 가고, 반 정도는 교실에 남아서 자율학습을 한다.
저녁 먹을 때까지 수학 문제를 푼다.
오후 5시 40분.
저녁 식사 시간.
저녁 먹는 시간이 아까워, 미리 사다 놓은 빵과 우유 한 팩을 영어 듣기를 하면서 먹는다.
이때 소요되는 시간은 대략 10분.
잠시 몸을 일으켜 이리저리 움직이고, 이를 닦는다.
오후 6시.
본격적인 자율학습을 시작한다.
수학문제 틀린 것을 점검하고, 영어 독해를 하며(영어 독해는 Harry Potter를 읽는걸로 대신한다), 과학탐구를 집중적으로 한다.
가끔씩 나 자신도 모르게 이가 뿌득뿌득 갈릴 때가 있다.
내가 대체 왜 이 짓을 해야 하나.
대체 왜? 누구 때문에?
결론은 철저하게 나 자신 때문이다.
기껏 붙어 놓은 대학교 안 간 것도 나고, 재수 하겠다고 비싼 학원비 대가며 고생하는 것도 나다.
가슴 속에 쌓이는 울화가 가끔씩 나의 꼭지를 돌아버리게 한 적도 있다.
작년에도 그랬지만, 이 때 즈음 되면 신경이 굉장히 날카로워 진다.
마치 감량의 막바지에 다다른 권투선수처럼...
밤에 자려고 누우면, 잠은 안오고 옆집에서 떠드는 소리, TV소리, 전화 받는 소리 까지 온갖 잡소리가 다 들린다.
처음엔 환청이려니 했다.
요즘은 더 심해진다.
두통이 온다.
머리가 지끈지끈 해 온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건데, 내가 이 정신으로 대체 어떻게 여자를 만나고 다녔는지 신기하다.(제가 재수 초중반 시절 객기에 여자를 사귀고 다녔었죠... -_-;;)
밤 10시.
자습이 끝나는 시간이자, 학원이 문 닫는 시간이다.
4시간 동안 한번도 일어나지 않은 까닭에 내 허리는 만신창이가 다 됬다.
큰일이다.
서울대도 좋고, 교수도 좋지만 허리 망가져 장래의 내 부부생활(?)에 지장이 있을까봐...
걱정이 태산이다.
지하철 1호선, 노량진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종로 5가 역에서 내린다.
정확히 시간은 18분이 걸린다.
이 시간동안 언어영역 듣기 평가를 한다.
얼추 시간대가 맞아 떨어진다.
시끌시끌한 주변 상황이 듣기 훈련을 하기에는 그만이다.
종로 5가 역에서 집까지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면 40분이 걸린다.
마을버스가 있지만, 운동 삼아 빠르게 걸어간다.
무거운 가방을 매고(정석 3권과, 기타 여러 문제집, 학원 교재, 도시락...) 뛰듯이 걸어가면 한걸음 한걸음이 힘들다.
집 앞에 다다르면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이 때가 내 울화의 절정에 다다르는 시기다.
소리라도 지르고 싶지만, 한밤중이라 그럴수도 없다.
때문에 애꿎은 내 이만 부득부득 갈린다.
눈에는 살기가 스며든다...
밤 11시.
집에 도착한다.
옷을 벗고, 샤워를 한다. 처음에는 뜨거운 물로 온몸을 데우고, 뭉쳐진 근육을 풀어준다. 살갖이 데일 정도로 뜨거운 물로 하는 샤워는 하루의 유일한 낙이다.
마무리는 시릴 정도로 차가운 냉수로 한다.
샤워를 하고, 물 한잔을 마시면 어느새 시간은 11시 30분.
다시 책상에 앉는다.
현대시와 고전 문학을 본다.
신문도 이 때를 이용해 본다.
새벽 1시...
잠이 든다...
요즘은 여름철이라 잠이 들기가 더더욱 힘들다...
정말로 피곤하면, 눈이 말똥말똥 해진다던데, 내가 그 짝인거 같다.
이제 115일 남았다.
더 이상 오르지 않는 모의고사 점수.
더워져만 가는 날씨.
갈수록 힘에 부치는 체력.
주변의 유혹.
이 모든 것들을 이겨 내야만 내가 원하는 곳을 갈수 있으리라...
책상 앞에 내가 까만 매직으로 대문작 만하게 써놓은 글귀!
"맞자! 380점! 가자! 서울대!"
난, 꼭 이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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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참 힘든 나날이었습니다.
그래도 미래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꿈이 있었기에 버텨낼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예전에도 그랬지만, 재수 시절을 이겨낸 저 자신이 지금도 무척이나 자랑스럽고 뿌듯합니다.
많은 후기지수 여러분께 재수하라는 소리가 아니라, 앞으로 수험생이 될 분들, 이제 수능이 코 앞에 닥친 분들...
이 모든 분들께서 확고한 신념과 미래에 대한 꿈이 있다면 모든 것을 이루어 내리라 생각합니다.
흠...
내가 써놓고도 참 멋진 말임에는 틀림이 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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