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북촌에서 만난 맹인 커플

작성자
Lv.53 한혈
작성
16.04.17 20:50
조회
2,189

글을 쓰다가 성애 묘사 부분이 지나치게 자극적으로 나와 버려서,

끙끙 앓다가 그 5천여 자를 모두 지워버리고 다시 쓰기로 했는데...

아무래도 마음을 씻는 게 먼저일 것 같아 집근처 삼청공원을 향해 나섰습니다.


북촌길을 타고 올라가다가 그들을 보았습니다.

젊은 남녀 둘이서 각각 시각장애인들이 쓰는 가늘고 긴 지팡이를 땅에 두들기며 경사진 길을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어찌나 보기 좋고 아름답던지요.


남자분은 스물서너 살 되어 보이고, 여자분은 스물예닐곱 정도 되어 보였습니다.

여자는 좀 왈가닥스런 목소리로 쉼없이 떠들고, 남자는 묵묵히 그것을 들어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겨 내려오는데 두 사람의 표정이 참, 그리 이쁠 수가 없었습니다.

은근한 미소를 품은 남자,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해 도저히 감출 수 없는 여자.


선글라스나 안경을 쓰지 않고 그 두 눈을 모두 드러낸 모습과

그들의 꼿꼿한 허리를 보니 두 사람의 자존감이나 자부심 같은 것을 엿보는 것 같아 더욱 흐뭇했습니다.


사람이 미어 터지는 주말, 휴일의 북촌길에 날씨가 어찌나 사나웠던지 사람들은 모두 사라지고 단 세 사람이 그렇게 조우했습니다.

이 바람 사나운 날 어쩌다가 두 사람이 북촌 투어를 결행하게 되었을지 상상하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나는,

그들만큼 사랑과 행복을 가꾸어 보았는지, 그들만큼 치열하게 살아보았는지, 내 청춘은 과연 무엇을 건너 여기까지 와 버렸을지. 정작 중요한 것은 모두 건너뛰고 엉뚱한 것을 붙잡고자 거짓된 치열함을 핑계삼지는 않았는지.


두 사람의 사랑과 행복이 저 같은 오염된 사람들을 뚫고 꿋꿋하게 지켜지기를, 돈이나 사회적 관계처럼 사소한 것들로 상처받지 않기를 간절하게 빌어보았습니다.


언젠가는 제 글에서 그들의 그 행복한 모습을 인용했으면 좋겠습니다. 두 사람을 인용해도 부끄럽지 않을 글을 썼으면 좋겠습니다. 지금보다 더 자란 언젠가는 말이죠.




Comment ' 7

  • 작성자
    Lv.93 라라.
    작성일
    16.04.17 21:14
    No. 1

    한혈님 안녕하세요.
    이 게시글을 읽고 커플의 모습을 상상 하면 미소짓게 되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53 한혈
    작성일
    16.04.17 21:20
    No. 2

    아, 앨리스님.
    반갑고 미안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한자락
    작성일
    16.04.17 21:14
    No. 3

    전 꼭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직 글쓰는 실력이 안되어 끊임없이 적고 지우고를 반복합니다. 내가 겪었고 느꼈던 그 이야기를 꼭 남기고 싶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53 한혈
    작성일
    16.04.17 21:21
    No. 4

    누군가에게 절박한 이야기는
    대개 다른 이에게도 큰 울림을 주더군요.
    저도 보고싶습니다, 그 이야기.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2 하이텐
    작성일
    16.04.17 21:40
    No. 5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답글
    작성자
    Lv.53 한혈
    작성일
    16.04.17 21:53
    No. 6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작성자
    Lv.67 홍균
    작성일
    16.04.18 23:59
    No. 7

    멋지네요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강호정담 게시판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229887 [세계일보]고소 4대 천왕? / 이정도면 제도를 이용한 합... +41 Lv.69 흑색 16.04.19 3,292
229886 호주가 원래 영국 죄수들의 유배지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8 Lv.99 만리독행 16.04.19 2,460
229885 식욕. 성욕. +24 Personacon 한자락 16.04.19 2,620
229884 어떤 간호사가 좋나요? +24 Personacon 한자락 16.04.19 2,623
229883 아.. 엄청 속상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4 Personacon 탄쿠키 16.04.19 2,153
229882 귀신 본 이야기. +4 Personacon 한자락 16.04.19 1,771
229881 왜 갑자기 서태지가 떠올랐을까... +12 Lv.53 한혈 16.04.19 1,795
229880 흔할 게임 그래픽 수준 +9 Lv.13 [탈퇴계정] 16.04.18 2,101
229879 마이페이지는 어디있나요?? +2 Lv.35 보이드void 16.04.18 1,537
229878 갑자기 워킹데드같은 생존물 써보고 싶네요. +3 Lv.69 개백수김씨 16.04.18 1,600
229877 직장에서 제 소설을 보시는 분과 조우했습니다(...) +31 Personacon 가디록™ 16.04.18 2,602
229876 닉네임 쩌런님을 위한 추천작 +8 Lv.99 프리저 16.04.18 2,016
229875 닉네임 진상독자님을 위한 추천작품들~ +8 Lv.99 프리저 16.04.18 2,017
229874 소설추천부탁드립니다! +38 Lv.15 쩌런 16.04.18 2,290
229873 공모전은 1년에 한 번인가요? +2 Lv.55 글데코 16.04.18 2,179
229872 날이 우중충한데다 비바람 몰아치니까 문장도 쳐지네요 ㅠ +3 Personacon 탄쿠키 16.04.18 1,849
229871 백준 및 김운영 작가 대필 사건 관련해서 질문. +4 Lv.82 아몰랑랑 16.04.18 3,084
229870 전부 같은 글이다 뭐다 정담에서 말해도.. 너무 극소수의... +5 Lv.54 영비람 16.04.18 1,934
229869 1렙 추천.. +9 Lv.64 라셰느 16.04.18 2,181
229868 점수는 어떨때 올라가는건가요? +11 Lv.64 라셰느 16.04.18 2,060
229867 내일 남양주시까지 다녀와야하네요 ㅠㅠ +23 Personacon 히나(NEW) 16.04.18 2,008
229866 아무 생각 없이 쓰다보니 +4 Lv.14 철종금 16.04.18 1,989
229865 타 싸이트 있다가 완전 이사 왔어요. +24 Lv.35 보이드void 16.04.18 2,380
229864 저도 공모전에 대한 욕심을 버리니 편하긴 하네요. +16 Lv.9 CordNO.0.. 16.04.18 2,023
229863 그러고보니 나이트 언더 하트는 책으로 안나오네요. +1 Personacon 티그리드 16.04.18 1,732
229862 바닥을 뚫고 내핵까지 달려가는..... +6 Lv.82 크림발츠 16.04.18 1,958
229861 공모전에대한 마음을 놓아버리니.. +8 Lv.66 장진백 16.04.18 1,844
229860 신세기 만남 대행*^^* +3 Lv.28 검고양이 16.04.18 1,851
229859 [스팀게임 나눔] Victor Vran +3 Lv.43 패스트 16.04.18 1,787
229858 이번에 유명한 작가네분이 뉴스에 나왔는데 누구인지 아... +13 Lv.54 구경할려고 16.04.18 2,233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genre @title
> @subject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