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다가 성애 묘사 부분이 지나치게 자극적으로 나와 버려서,
끙끙 앓다가 그 5천여 자를 모두 지워버리고 다시 쓰기로 했는데...
아무래도 마음을 씻는 게 먼저일 것 같아 집근처 삼청공원을 향해 나섰습니다.
북촌길을 타고 올라가다가 그들을 보았습니다.
젊은 남녀 둘이서 각각 시각장애인들이 쓰는 가늘고 긴 지팡이를 땅에 두들기며 경사진 길을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어찌나 보기 좋고 아름답던지요.
남자분은 스물서너 살 되어 보이고, 여자분은 스물예닐곱 정도 되어 보였습니다.
여자는 좀 왈가닥스런 목소리로 쉼없이 떠들고, 남자는 묵묵히 그것을 들어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겨 내려오는데 두 사람의 표정이 참, 그리 이쁠 수가 없었습니다.
은근한 미소를 품은 남자,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해 도저히 감출 수 없는 여자.
선글라스나 안경을 쓰지 않고 그 두 눈을 모두 드러낸 모습과
그들의 꼿꼿한 허리를 보니 두 사람의 자존감이나 자부심 같은 것을 엿보는 것 같아 더욱 흐뭇했습니다.
사람이 미어 터지는 주말, 휴일의 북촌길에 날씨가 어찌나 사나웠던지 사람들은 모두 사라지고 단 세 사람이 그렇게 조우했습니다.
이 바람 사나운 날 어쩌다가 두 사람이 북촌 투어를 결행하게 되었을지 상상하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나는,
그들만큼 사랑과 행복을 가꾸어 보았는지, 그들만큼 치열하게 살아보았는지, 내 청춘은 과연 무엇을 건너 여기까지 와 버렸을지. 정작 중요한 것은 모두 건너뛰고 엉뚱한 것을 붙잡고자 거짓된 치열함을 핑계삼지는 않았는지.
두 사람의 사랑과 행복이 저 같은 오염된 사람들을 뚫고 꿋꿋하게 지켜지기를, 돈이나 사회적 관계처럼 사소한 것들로 상처받지 않기를 간절하게 빌어보았습니다.
언젠가는 제 글에서 그들의 그 행복한 모습을 인용했으면 좋겠습니다. 두 사람을 인용해도 부끄럽지 않을 글을 썼으면 좋겠습니다. 지금보다 더 자란 언젠가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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