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을 가르던 면의 칼이 갑자기 세의 방향을 바꾸어 왼편의 적을 거슬러 찔렀다. 다시, 면은 돌아서서 칼끝을 낮추었다. 좌우를 노리던 면의 칼이 허공으로 치솟아 돌면서 뒤쪽의 적을 쓸어 내렸다.
그리고, 면은 돌아서지 못했다. 다시 돌아서려는 순간, 적의 칼이 면의 오른쪽 허벅지를 찔렀다. 면은 왼쪽 다리로 버티고 서서 자세를 낮추었다. 살아남은 적은 셋이었다. 3명의 적을 앞에 두기 위하여, 면은 거듭 뒤로 물러섰다. 허벅지에서 피가 흘러 신발이 미끈거렸다. 면의 자세는 점점 낮아졌다. 면은 뒤쪽으로 퇴로를 뚫지 못했다. 반쯤 구부러진 면은 칼을 높이 치켜들어 머리 위를 막아냈다.
위로 뛰어오른 적이 내려오면서 면의 머리 위를 갈랐다. 면은 비틀거리면서 피했다. 적의 칼이 땅바닥을 쳤을 때 면의 칼은 다시 나아가 적의 허리를 베었다. 그리고 나서 면의 오른편 다리가 꺽여졌다. 면이 다시 세를 수습하려고 몸을 뒤트는 순간, 적의 칼이 면의 오른쪽 어깨를 갈라내렸다. 면은 칼을 놓치고 제 피 위에 쓰러졌다. 스물한 살이었고, 혼인하지 않았다.
김훈 님의 <칼의 노래> 중 이순신의 아들인 면이 적에게 죽는 모습을 표현한 장면입니다. 아, 저는 언제쯤 이런 작품을 쓸까요? 나지막히 읊어내리는 산문조의 문체가 너무나 마음에 들지만 제가 쓰기에는 성향이 안 맞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몹시 부러운 작품입니다.
소설가 이청준이 이렇게 평을 했습니다.
-소설쟁이로 살아오면서 샘 나는 경우가 드문데, 김훈의 작품은 정말 샘이 났다.
저도 샘이 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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