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황제의검을 오늘 봤는데.
앞부분이 이해가 안되 더라구요 ㅡ.ㅡ;;
간단하게 해석좀 해주세요 ㅜ_ㅜ 내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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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조(明太組) 주원장(周元璋)에게는 26명의 황자(皇子)들과 16명의
공주(公主)가 있었다 홍무(洪武)25년 4월에 마황후(馬皇后)의 소생인
황태자(皇太子) 표(標)는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주원장은 내심 황태자
가 살아 있을 때부터 고려에서 공녀로 온 적비( 妃)의 소생 주태(朱
)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는 보기드문 왕재(王材)였으며 뛰어난 책
략가였으며 또한 과단성 있는 장수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다른
이변이 없었다면은 연왕(燕王)주태(朱 )가 보위를 이었을 수도 있었
을것이었다 그러나 그해 한림학사(翰林學士) 유삼오(劉三吾)가 "국가
사직의 안온은 무엇보다 법통을 존중하는데 있는것이오니 마땅히 황손
을 동궁전하의 뒤를 잇게 하여 황태손을 삼으심이 가한줄로 압니다"라
고 주청한다 이때 주원장의 나이 65세였고 황손 윤문(允 )의 나이는
겨우 열 살이었다 그해 9월 결국 황손 주윤문을 황태손으로 봉한다 그
의 성정은 사서에서 이르기를 영혜온화(穎慧溫和)하였다 하여 영특하
고 온순하였다 표현한다 이제 열 살된 황손을 쳐다보는 주원장의 내심
은 어떠 했겠는가? 그러나 인간의 운명은 권력으로도 어쩔수 없음이
니 결국 명태조 주원장은 홍무31년 윤5월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
니 그의 나이 71세였으며 주윤문의 나이는 16세였다 유조(遺詔)에 따
라 황태손 윤문이 보위에 오르고 건문제(建文帝)가 되는 것이다 그러
나 이것은 비극의 시작이었다 태조가 죽은 다음 달 호부시랑(戶部侍
郞) 탁경이 상소를 올려 "마땅히 제왕의 세력을 진압하여 앞날의 화근
을 도려내어야 합니다"라고 한다 마침 그때는 연왕(燕王)을 중심으로
제왕들 사이에 밀사가 왕래한다는 소문이 자자하던 때였다 결국 황자
증(黃子證)과 제태(齊泰)를 중심으로 하여 제왕의 세력을 제압하는 삭
번(削藩)을 단행하게 되고 그 첫 번째 희생자가 연왕주태의 동모제(同
母弟)인 주왕(周王) 주숙(朱潚)이었다 연이어 민왕(岷王) 주편(朱
), 상왕(湘王) 주백(朱柏)등 여러 제왕들이 유배를 당하거나 제거된
다 결국 세상의 이목은 제왕들중 가장 강성한 세력을 가지고 있는 북
평(北平)의 연왕 주태에게 쏠린다 남경정부는 곧장 경병문(耿炳文)을
정토대장군(征討大將軍)으로 하는 북벌군을 편성하여 북진하게 하지
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고 이후 이경륭(李景隆)을 사령관으로 하는 60
만 대군을 편성해 보지만 그도 신통치 않았다 백구하(白溝河)에서 시
작된 전쟁이 몇 년의 격전을 거쳐 우여곡절을 겪으며 북평군이 남경
을 장악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1402년 무더운 여름인 7월에 드디어 연
왕은 제위에 오르고 영락제(永樂帝)가 된 것이다 한편 건문제 나이 그
때가 스물이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의 주변
의 신하들과 아버지 표의 스승이었던 송렴(宋濂)에 의해 지하비도로
도망치기에 이르니 연왕측에는 건문제가 궁전에 불을 지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지게 된다 건문제 윤문은 미리 준비해 둔 도
첩(度帖)과 가사(袈裟), 승모(僧帽), 짚신과 약간의 현금을 지니고 한
때 주원장의 비밀호위로 있던 강호의 기인 두명을 찾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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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분. 간단하게 해석좀 부탁 드립니당!
이해가 잘 안되서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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