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전혁
작품명 : 월풍
출판사 :
글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평어체를 사용하니 이해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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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풍. 작가인 전혁님이 밝힌 바 있듯이 영화 '사랑의 블랙홀'의 거듭되는 하루에서 소재를 가져온 무협소설이다. 한 달쯤 되자 선호작 1위로 등극하는 기염을 토하며, 많은 사람들 사이에 토론을 불러일으키게 했던 소설.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는 장르문학의 특성상 어떤 이유를 불문하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락 거리는 것만으로 월풍은 베스트셀러다.
과거 구무협이 몇몇 작가의 다작에 의해 주도되었던 시기와 달리 인터넷 글쓰기와 독자가 확보된 이후에 소위 신무협들은 단순한 독자들의 주관적 느낌에 의해 판단되는 것 이상으로 작품 자체, 즉 텍스트의 완성도 역시 중요하다. 그렇기에 참신한 소재를 통해 무협의 틀을 확장시킨다는 측면에서 월풍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재를 차용한다 할 지라도 영화와 월풍이란 작품의 기본적이 스토리 라인이 비슷하다는 점은 문제로 삼을 수 밖에 없다. 누군가 영화는 종착점을 향해 달려가기 위해, 월풍은 시발점에서 출발하기 위해 하루가 반복되는 것이므로 견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면 묻고 싶다.
영화를 본 후에 책을 읽는 동안 영화의 잔상이 남지 않았는가?
수 십번 자살을 하고 자살이 통하지 않는 후에는 무엇인가 배우는 모습이 빌 머레이와 월풍이 오버랩 되지 않았던가? 그렇지 않다면 개인적의 문제이니 사과할 수 밖에.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아니다. 사랑의 블랙홀에서 차용해 온 것이니 만큼 무공을 익히는 과정을 육체의 각인으로 해결하지만 물을 수 밖에 없다. 자살하고도 살아남았다. 그것은 즉 육체가 리셋됨을 말한다. 음률이나 사서오경과 같이 두뇌를 사용한 것들을 익히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같이 시간이 다름을 느낄 수 있는 것으로 미루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글에서나 영화에서 하루가 반복됨을 아는 사람은 주인공 뿐이다. 그러나 실제로 하루에서 같은 일이 계속하여 거듭되지만 그 양상은 조금씩 달라지는 데 이는 주인공의 행태가 변화되는 것에 기인한다. 영화에서 시간이 흘러가는 것은 주인공이 삶에 대한 진지함, 사랑의 열망으로 인해 그런 것으로 볼 수 있으나 다른 측면에서 주위사람들이 주인공으로 인해 행복을 느낄 수 있고, 주인공에 대한 축원(?)을 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실제로 모든 사람들이 반복되는 하루 속에 존재하고 있으나 이를 자각하는 사람은 오로지 주인공일 다름이고 시간에 대한 선택성을 지닐 수 있는 자 역시 주인공일 뿐이란 소리다. 이는 곧 월풍이 두뇌를 사용하는 학문을 익히는 것이 '하루의 저주'속에서도 가능하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무공은 다르다. 자살을 해도 살아난다. 손목을 긁건, 목을 매던 간에 몸은 다시 부활한다. 원상태로. 그렇다면 무공은?? 한차례 논의가 거듭되었지만 결국 작가 본연의 설정으로 유야뮤야 넘어간 측면이 있다. 이 무공에 대한 측면은 월풍이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선천적 결함이라 칭할 수 밖에 없기에 언급없이 넘어갈 수 없다 생각한다.
참신한 소재를 차용하되 이를 적절히 보완해줄 어떤 보완장치가 미비함으로써 무공에 대한 것이 월풍 자체가 가진 선척적 결함이라면 쉽게 예측가능한 스토리 라인은 무협이 가지는 구조적 결함이라 칭할 수 있다.
2권이 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위기에 빠진 사문을 구하게 되면서 전면에 등장하는 월풍, 그와 함께 장문의 절세미녀인 딸과 감정적 교류, 주인공과 대체되는 비열하지만 의심병만 많은 적들. 소위 뻔한 스토리에 뻔한 전개임을 한눈에 눈치챌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는 비단 월풍 자체만의 문제가 아니니 더 이상 파고들 필요가 없다. 다만 여기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기존의 이분법적으로 나뉘는 강호가 당가나 벽력산장 등으로 나뉘었다는 점이다.
작품 내에서 언급했듯이 춘추오패와 비슷하다. 일견 이러한 설정은 신선한 것으로 보일 수 있으나 실상 살펴보면 기존의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즉 춘추오패니 위,촉, 오니 하고 언급하였지만 국가간의 싸움이 아니라 강호세력간의 다툼인 바 절정고수들의 싸움으로 결정되니 거창하게 붙인 것일 따름이다. 뿐 만아니라 많은 무협에서 나타나는 정도의 정도련, 마도의 마교, 사도의 사황성을 곧잘 강호 삼패라는 식으로 얘기하는데 이런 세력이 다섯 개라고 생각하면 다를 바가 무엇인가? 다만 정사의 구분 없이 힘만으로 강호가 제패할 수 있는 정황이라는 것 만이 다를 뿐이다.
3권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북궁천이나 조백 등이 조조나 동탁에 비유될 정도로 제법 많은 인물들의 설정을 삼국지에서 따온 듯 한데 소위 전개될 상황에 대한 기대치를 떨어뜨리는 문제가 야기된다. 아직 많은 등장이 있지 않은 상태이고, 앞으로 주인공과의 대치를 해야할 인물의 성향이 나오자마자 곧장 파악이 되니 글을 읽는 독자로써 김이 샐 수 밖에.
그리고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부분, 손정화나 단리혜의 성격변화가 의외로 빠르다. 많은 히로인이 나오고 히로인의 사회적 위치나 성향이 주인공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전혁님의 작품답게 여인들은 다이나믹하다. 손정화는 예쁘지만 수동적인 여성이었다가 주인공에게 생명을 구함받고 호감을 가진다. 그 후 절망에 빠졌다가 다시 주인공에 의해 구출된 후에 포부를 갖고 군사로써 능력을 자각한다. 단리혜 역시 머리가 매우 뛰어나지만 사랑에 눈먼 여자로 시작하는데 자신의 연인과 대치하는 주인공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입장에서도 그냥 넘어간다. 주인공과의 썸씽이 없었음에도. 그리고 급기야 주인공의 계략에 연인의 아버지에게 의심을 받으면서도 마음이 떠나고 만다. 이렇듯 여성들의 성향이 다이나믹하게 변화하는데 실제 이 변화들 간의 연결고리가 튼튼하질 못하다.
무엇보다 이 월풍이 참신함에서 식상함으로 변화하는 까닭은 강호정벌이라는 구무협스러운 슬로건을 내거는 까닭이다. 즉 독자들이 신무협에서 기대하는 강호에 사는 다양한 개개인의 이야기-개성이 뚜렷한 인물들의 좌충우돌 에피소드-가 아니라 주인공을 중심으로 치고 받고 싸우는 식의 이야기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3권까지 살펴볼 때 뚜렷한 개성을 지닌 조연이 아니라 그저 주인공의 인내(?)와 무공, 성품에 감복하는 수하들과 주인공과 숙적의 강인함과 간악함을 보여주는 것에 그친바 현재까지 소재의 참신함이 제대로 살아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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