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나를 망상이라 부른다. 허망할 망(妄)에 생각 상(想)을 쓰는 나는 세상의 이치에 어그러진 생각을 뜻한다. 나는 쓰레기다. 나는 위험한 쓰레기다. 나는 버려지고 밟히고 찢어지는 위험한 쓰레기다. 그러나 나는 살아있다. 그토록 위험한 나는 살아있다. 버려지고 밟히고 찢어져도 나는 살아있다. 사람들은 나의 생명력에 놀라 질문한다. 《너는 어째서 살아 있느냐. 너는 어째서 그런 냉대를 받으며 살아 있느냐.》 나는 대답한다. 《망상(妄想)을 가지지 않은 이는 이미 망자(亡者)이기 때문이라, 당신이 살아 있는 한 나는 죽지 않는다.》
시간이 흘렀다. 나의 존재를 알던 이들은 모두 세월의 흐름 속에 사라져갔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홀로 남게 되었다. 그 이전과의 시간처럼 나는 고독의 잠결에 잠기어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소년이 내게 찾아왔다. 흑발 검은 눈동자가 인상적인 그 소년은 나를 바라본다. 그는 내게 수없는 시간을 넘어 내게 찾아온 최초의 일인(一人). 아니, 그가 나를 찾아주었는지 내가 그를 찾았는지, 지금의 나는 알 수 없다. 과거의 일은 잊혀져가는 것. 존재하지만 또한 존재하지 않는 나 역시 망각은 극복할 수 없는 것. 그래서 기억할 수 없다. 아니, 지금에 와서 그가 나를 찾았는지 내가 그를 찾았는지는 아무래도 좋다. 그는 나에게 다가왔고 나는 그에게 다가갔으며 우리는 만났다. 만났다는 그 사실. 그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만났다. 이 어두운 곳, 외진 곳에 무한의 세월을 홀로 고독히 보내던 내게 그는 다가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사람의 삶에서 두려움 중 하나는 바로 자신이 살아가는 이 순간이 혹시 꿈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절망적인 일을 당했을 때 사람은 ‘꿈은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놀라운 일을 당했을 때 또한 ‘꿈은 아닐까?’라고 생각을 한다. 그리고 기쁜 일을 겪을 때 또한 ‘꿈은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동시에 그 것이 ‘꿈이 아니길’ 바란다.』
『만약 여태까지 살아온 인생이 긴 꿈에 불과하다면, 외부의 충격에서 깨어나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이 꿈 속에서,
「아름다운 숲 속에 멋진 집을 짓고 아름다운 아내와 귀여운 아이들과 행복한 삶을 산다.」
그러다 어느 날 그 꿈에서 깬다.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다만, 그것뿐이다. 허무와 절망과 번민과 고통. 그것들은 한줄기 눈물과 함께 사라져 버린다.』
『꿈이란 그런 것이다. 꿈에서 깨고 나면 꿈속의 세상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린다. 잊어버린다. 그리고 사라져 버린다.』
『꿈속 세상에서 첫 번째로 사랑하던 아내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그리고 세상에서 두 번째로 사랑하던 내 분신, 아이들도 역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모든 것이 사라진다. 친구도 적도 그 어떠한 것도……』
『그러나 깨어나기 전까지는 꿈을 꾸는 자에게 있어 그것이 꿈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꿈은 너무나도 정교하게 만들어져 꿈은 꿈을 낳고 그 꿈은 또다시 꿈을 낳는, 무엇이 진실이며 무엇이 거짓인지 알 수 없는 무한의 혼란을 낳는다. 그래서 ‘존재’하는 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적어도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잊어버리지 않기를. 이 마음속에 사랑하던 아내와 아이들과 밝게 미소 짓는 친구와 이제는 용서하는 원수(怨讐)들 역시 잊어버리지 않기를. 영원히 이 마음속에 간직하고 살아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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