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소설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용어중에 하나가 녹차와 죽엽청이란 술입니다.
그런데 글을 쓰는 작가들중에 이에 대한 이해가 다소 부족한 탓인지 실제와는 달리 좀 어색하게 서술되는 경우가 많아 이에 대해 짧은 상식으로 써보려고 합니다.
녹차 : 백과사전을 찾아보면 "발효시키지 않은 찻잎 (茶葉)으로 만든 차."라고 나와 있습니다.
차의 제조형태에 따른 명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차 제조법이 다양하게 발달하지 못해 대부분의 차들이 발효되지 않은 찻잎으로 만들어지고, 그 것들을 통상적으로 녹차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이러한 녹차라는 용어는 우리나라에서 커피나 다른 음료가 아닌 찻잎으로 만든 차라는 뜻으로 흔하게 쓰이므로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하는 글이라면 전혀 어색하지 않게 사용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 우리나라 차들도 품질이 좋은 차들은 우전차(곡우 이전에 생산된 좋은 찻잎으로 만든 차) 작설차(참새 혀와 같이 작고 품질이 좋은 찻잎으로 만든차라는 뜻)라는 용어로 불리고 있습니다.
또한 찻잎을 채취한 시기와 찻잎의 크기에 따라, 우전/세작/중작/대작으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에는 고대부터 차문화가 발달하고 제조법이 다양해서 차의 분류와 종류가 무척 다양합니다.
제조과정에서 발효를 하지 않은 찻잎으로 만든 차들은 생차(生茶), 제조과정에서 속성 발효공정을 거친 찻잎으로 만든 차들은 숙차(熟茶)라고 분류합니다.
물론 그 중간격인 반생반숙차(半生半熟茶)도 있습니다.
예컨데 그 유명한 보이차(普耳茶)의 경우 생차와 숙차 두가지가 모두 있는데, 생차는 제조과정에서 발효를 안하고 오랜 세월 보관하면서 자연발효를 거쳐 보이차로 완성됩니다. 따라서 이렇게 제조된 제품은 엄청나게 비싸고 명품으로 취급됩니다.
그에 반해 제조과정에서 발효공정을 거쳐 비교적 짧은 기간 숙성하고 출하하는 숙차는 좀더 저렴하고 대중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차의 색상과 특징에 따라 녹차, 백차, 청차, 흑차, 홍차 등으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녹차: 제조과정에서 발효를 하지 않은 녹차는 역시 중국에서도 가장 종류가 많은 차인데, 그 유명한 벽라춘(碧螺春)(강소동정/江蘇洞庭지방에서 생산), 용정(龍井)(절강항주/浙江杭洲지방)을 비롯하여 황산모봉(黃山毛峰)(안휘황산/安輝黃山지방) 등 대표적인 차들만해도 20여가지가 됩니다.
백차(白茶):경발효(輕發酵)를 하는 차 종류입니다. 백호은침(白毫銀針)(복건성/福建省지방)
황차(黃茶):경발효(輕發酵)를 하는 차 종류입니다. 군산은침(君山銀針)(호남성/湖南省지방)
흑차(黑茶):보이차(普耳茶).운남성(雲南省지방). 보이차는 생차가 있는가 하면 숙차도 있고 그 종류가 무척 많습니다.
청차(靑茶)-오룡차(烏龍茶) : 반발효차(半發酵茶)입니다.복건성(福建省)에서 생산되는 철나한(鐵羅漢), 철관음(鐵觀音)등이 유명합니다. 한 때 우리나라에는 대만에서 생산되는 오룡차가 우롱차라는 이름으로 수입되서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이와같이 중국에는 예전부터 수많은 종류의 명차들이 전해내려오고 있으며 같은 명칭의 차라 해도 제조방법이 다양합니다.
예컨대 글 속에서 보이차나 철관음을 마시는 장면을 서술하고 녹차를 즐긴다라고 하면 그 것은 맞지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설사 녹차 종류인 벽라한이나 용정차를 마셨다 하더라도 그 것을 녹차를 마셨다라고 하는 것은 중국인의 관점에서 보면 어색한 서술이 될 것입니다.
예컨데 스카치 위스키를 즐기는 사람에게 저 사람은 증류주를 좋아한다.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보고 저 사람은 발효주를 좋아한다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경우일 것입니다.
녹차 한 잔 마시는거 대충 넘어가지 뭐 시시콜콜 따지냐 하면 할 말 없지만, 차를 마시는 장면은 많은 작가들이 무협소설에 자주 묘사하는 부분이며 그리고 여러 작가들이 작품속에서 벽라한 철관음 등의 명차들을 묘사하고 있어 참고로 올려봅니다.
그리고 녹차 못지 않게 술 마시는 장면에서 자주 등장하는 술이 죽엽청입니다.
언제부터인가 무협소설의 대표적인 술이 죽엽청으로 굳어진 듯 합니다.
대부분의 협객들이 객점에 들어가서는 푸짐한 요리와 함께 죽엽청을 시켜서 호쾌하게 마십니다.
그리고 때로는 절망에 빠진 주인공이 좌절해서 독한 죽엽청주를 몇 명씩 들이키고는 만취하기도 합니다.
죽엽청의 도수가 43도이므로 독한 것으로 묘사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그 맛이 무협소설의 배경설명과는 어울리지가 않습니다.
죽엽청은 그 명칭으로도 알 수 있듯이 대나무잎이 다른 약재 10여가지와 함께 첨가된다고 합니다.
그 대나무잎과 약재들의 첨가에 의한 탓인지 죽엽청은 단 맛이 아주 강합니다.
실제로 제가 마셔본 경험도 그렇고 중국술에 대해 좀 아는 사람들은 다들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영어식으로 표현하자면 드라이한 맛이 아니고 스위트한 그런 맛입니다.
따라서 여성들이 좋아 할 만한 술이고 식사하면서 반주로 입가심하면서 마시기에 적당한 술입니다.
중국인들은 죽엽청을 건강을 위해 마시는 술로 생각한다고 합니다.
호쾌한 협사들이 달짝지근한 술을 마시면서 웅심을 키운다거나 절망에 빠진 주인공이 좌절하면서 달짝지근한 술을 몇병씩 만취가 되도록 마시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죽엽청이 어떻게 우리 무협에서는 협객들이 애호하는 대표적인 술로 자리매김 했을가하는 의문이 듭니다.
죽엽청이 중국을 대표하는 명주들중에 하나이고 애호를 받고 있지만 그 명주들 중에서는 비교적 싼 편에 속합니다.
고급 명주에 속하는 마오타이나 오량액의 10분지1 이하이니까요.
제가 죽엽청을 처음 마셔본 것은 80년대 중반입니다.
아는 사람이 크게 한 턱 낸다고 해서 좋은 중국집에 가서 요리를 시키고 빼갈보다 좀 더 나은 술을 찾으니 그 집에서 권한 술이 죽엽청이어서 그 시절에 처음 맛을 보았습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의 사정은 국내 양조회사들이 패스포트 등의 양주를 외국회사와 합작으로 생산해서 국내 시장에 선보이던 시절이었으나,
외국의 명품주류들은 주류에 대한 수입세금도 엄청 비싸고 수입도 원활하지 못해서 외국의 명주들에 대해서는 박정희가 시바스리갈 먹다가 총 맞고 전두환이 발렌타인을 좋아한다더라는 이야기가 젊은이들의 화제가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어쩌다가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조니워커 몇 잔 얻어 먹으면 몇년간의 추억이 되었구요.
그런 시절에 국가경제가 조금씩 풀리면서 제일 처음으로 수입된 술이 비교적 저렴한 죽엽청이 아닌가 하는 추측입니다.
마오타이라던가 오량액등의 고가 명주들은 그 뒤로도 십수년이 지난 다음에야 거론되었구요.
한마디로 죽엽청은 우리의 제한적인 정보환경에 의해서 그 술의 실체와는 어울리지 않게 우리 무협소설의 대표적인 술로 자리잡게 된 것이지요.
중국의 무협독자들이 알면 웃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무협에서 많이 거론되는 술에 관한 용어가 백주(白酒), 백건아(白乾兒)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하며 아주 값싼 술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네이버에 검색되는 무협사전을 보면,
"백주(白酒) - 중국의 값싸고 독한 술. 우리에게는 빼갈(白 干)로 잘 알려져 있는 술이다."
"백건아(白乾兒) - 중국의 값싸고 독한 술. 우리에게는 빼갈(白 干)로 잘 알려져 있는 술이다. "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오래전에 국내에서 생산되던 주정을 희석해서 제조하던 국산 빼갈 - 중국집에 가면 으례 시키는 저렴한 대중주였습니다. - 이 우리의 뇌리에 인식되어 백주하면 아 싸구려 독한 술 이렇게 인식들을 하는 경향이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것은 잘못된 인식입니다.
위에서 거론된 녹차와 같이 백주라는 용어는 주류의 한 종류를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네이버에서 검색한 백주에 대한 내용입니다.
" 백주(白酒)
고량(高梁) 즉 수수 등의 곡류나 잡곡류를 원재료로 해서 만든 증류주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배갈(白干兒) 즉 고량주라고 하는 중국술은 이 백주를 가리킨다. 중국 술이 독하다고 하는 것은 이 백주를 두고 하는 말로, 보통 알코올 도수가 50~60도가 되고 더욱진한 것은 65도까지 되는 것도 있다. 백주로 유명한 것은 귀저우성에서 생산되는 마오타이(茅台)주, 산시성에서 생산되는 펀(汾)주, 허난성에서 생산되는 두캉(杜康)주 등이다. 그리고 수수, 밀, 옥수수, 찹쌀, 멥쌀 등 5종의 곡물을 재료로 해서 빚은 우구예(五穀液)도 유명하다. "라고 나옵니다.
글 쓴이의 출처 http://www.startour.pe.kr/local/china/china_infom_liquor.htm .
즉 백주라는 용어는 술의 제조방법에 따른 분류로서 중국의 8대 명주중에 가장 고가품인 마오타이(茅台)와 오량액(五穀液) 그리고 중간 가격대인 분주(汾酒)가 모두 백주에 속하며, 또한 우리 주변의 중국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저렴한 북경 이과두주(二過頭酒)가 모두 백주에 속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백주를 마신다라는 표현은 곡물로 제조한 증류주를 마신다와 같이 어색한 것이고 더구나 백주를 싸구려 술로 묘사하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입니다.
마오타이는 중국 명주중에 최고급으로 꼽히는 술이기는 하나 그 제조 역사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고 하니 무협에 사용하기는 어색할 것이나,
최고 가격대인 오량액, 중간 가격대인 분주 등은 모두 역사가 오래된 명주이므로 무협에 사용하면 적당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렴한 가격대의 대중주로서 역사가 오래된 것은 공부가주(孔部家酒)가 있는데, 이 술은 공자 가문에서 전해 내려오는 비법으로 오랜 역사를 가진 술이라고 합니다.
무협은 다른 분야와 달리 작가의 설정이 폭 넓고 자유로운 분야이지만 실제로 현존하는 분야를 서술 할 때에는 좀더 정확하게 알고 쓰는 것이 작가나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 짧은 지식으로 두서 없이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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