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들 말고 인간 말입니다. 인간이란 개념이 좀 애매하지만, 제가 원하는 소설은 인간이 살아있는 소설입니다. 살아서 꿈틀대는 세계속에 살아서 숨쉬는 인간들이 담긴 소설.
솔직한 심정으로 요즘 소설의 풍조가 그렇게 맘에 드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제 취향에 맞지 않는 다는 말입니다. 문장의 완성도. 흐름의 치밀함과 자연스러움. 그런 것이 좋다 나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글을 이것 저것 읽다보니 상당히 많은 무협이 정치소설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 자신의 이익에 맞춰 무림맹이니 사련맹이니 하면서 편 가르고 싸우는데...참 희안하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생각하는 무사는 그렇게 권모술수를 잘 쓰는 존재가 아니었거든요. 다만 어떻게 하면 강해질까를 연구하는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건달이라면 어떻게 하면 약한 놈들 뜯어먹을까 생각하겠죠. 하지만 무사는 건달이 아니니까요. 도대체 무사라는 양반들이 때거지로 모여서 전쟁하듯 치고 받고 싸울 이유가 뭐며, 행여나 큰 싸움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전 강호가 편갈라서 싸울 이유는 뭡니까? 꼭 좌익 우익 갈라서서 대판 싸우고 제살 깎아먹기나 하는 정치판처럼 보이더라구요.
수많은 무공이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같은 무공이라도 어떻게 익히느냐에 따라 분명 달라질 터인데 어떻게 그렇게 정사 딱 갈라서 잘 싸우는지도 신기하더군요.
말이 잠시 곁가지로 빠졌습니다만, 그러니까 저렇게 한뭉탱이로 묶지 말고 그 안에 인간이 보이는 소설을 원합니다. 전국구로 놀필요도 없습니다. 성하나 정해서 그 안에서 모든게 끝나도 됩니다. 굳이 거대한 음모도 없어도 됩니다. '무림에선 과연 저랬을 것이다.'라고 느낄만한 소설이 나타났으면 좋겠습니다.
제 생각에 소설속의 인물이 살아있고 세상이 살아있다면 굳이 거대한 음모가 있을 이유도 없습니다. 굳이 거대한 세력을 다룰 이유도 없습니다. 굳이 전국구로 놀필요도 없습니다. 동내에서 좀 큰 무관 3개가 사이가 안좋아서 벌어지는 일 정도로도 충분히 그림을 그릴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기자기한 맛을 찾는게 아니고 이 쪽은 왜 이렇고 저 쪽은 왜 저렇고 마지막 곳은 또 다른데 그 입장들이 서로 어우러져서 서로 대립하기도 하고 협력하기도 하고, 그것을 굳이 동내 영감들 싸우는 식으로 묘사할게 아니라 전 무림에선 작은 일이지만 이 동내에선 큰 일일 수 있음을 진지하게 보는 그런 소설이 보고 싶습니다. 서로 무사답고 서로 배운바를 실천하기 위해 그런일이 발생한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그런 소설이 있다면 전 무림을 떠들석하게 해야만 이야기가 흘러가는 풍조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지 않을까요? 뭐 사실 사건이 커져도 좋습니다만, 지금처럼 크게 두입장이 있고 그 안에서 이익 따라 하이에나처럼 대립한다 식의 구도는 사양입니다. 무사가 몸만 있으면 되지, 이익 따라 이리저리 재고 한다는 것은 제 무사관에 어긋나서요. (어쩌면 제가 못본 소설 중에 그런 소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만...)
혹여 제가 쓰면 되지 않겠냐고 하시는 분이 있을지 몰라, 말씀드리지만 저는 독자의 재능은 풍부하지만 작가로서의 재능은 많이 부족해서 제가 원하는 것이 무언지도 표현 못하는 사람입니다. 혹시 댓글에 그런 말씀을 하실지 몰라 미리 말씀드립니다.
추신: 혹시 제가 위에 쓴 것과 비슷한 분위기의 소설(어떤 소설인지 제가 써놨지만 애매한 구석이 많아서...)을 아신다면 추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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