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하기 쉬운 착각 가운데 하나입니다. 저도 몇 년전까지는 빠져 있던 착각이고요.
'내가 느낀 것, 내가 생각한 것이 다수의 생각을 대변한다. 그러니 내 기준/취향과 다른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굉장히 많죠.
저같은 경우는 군대에서 모 작품을 보고 '아, 내가 확실히 완전 다수파에는 속하지 않는구나...'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열 명 가운데 여덟 명은 재밌다고 하는 모 작품이 제게는 그냥 그랬거든요.
그럼 제게 있어 재미가 별로였다 하여 그 모 작품이 '구린' 작품이 되는 걸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소설이나 만화, 애니메이션 같은 서브컬쳐들의 가치는 상대적인 거니까요.
모 포털 사이트 장르소설관을 보다보면 꽤 재미있습니다.
똑같은 작품을 두고 어떤 사람은 재밌다는 리뷰를 달고, 어떤 사람은 쓰레기라 욕하고.
쓰레기라 욕하는 사람은 재밌다는 사람을 이해 못하고,
재밌다는 사람은 자기가 재밌게 보는 글에 쓰레기라고 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죠.
- 소위 말하는 빠와 까가 싸우는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남이 쓰레기라 말하면, 자기 자신까지 쓰레기라 욕을 먹은 기분이 들어서가 아닐까 합니다.
제가 가치란 건 상대적인 거구나...하고 크게 느낀 일이 있습니다.
옆 동네 대여점(그나마도 이젠 사라졌...)에 갔을 때 일인데요.
문피아를 비롯한 여러 사이트에서 막장이라고 까이고 까이고 또 까이던 글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여점 단골로 보이는 아저씨가 대여점 업주와 대화하면서 그 책을 집어들더군요.
"책을 쓰려면 이 정도는 써야지. 요새는 이렇게 재미있는 책이 거의 없어서 큰 일이야."
저 일이 있은 후부터 뭐랄까... 전 다른 작품을 볼때 절대적인 판정을 내리는 일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그냥 제 개인적으로 어떻다!라고 받아들이는 선에서 끝난다고 해야 할까요?
한 때 사회적 이슈로까지 떠오른 귀여니씨의 소설들.
옛날에는 저도 한 없이 까기만 했는데, 근래는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어찌되었든 히트했고, 많은 소녀들의 지지를 받은 소설이다. 그렇다면 그 소설에는 그 소녀들의 지지를 이끌어낼만한 무언가가 있지 않았을까? 그 소녀들에게는 다른 무엇보다 가치있는 소설이지 않았을까?
이야기가 좀 새는데...
군에 입대 했을 때 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정말 저랑은 사고방식 자체가 다른 사람들을 여럿 만났거든요.
성장과정의 차이, 생활환경의 차이 등등... 그 많은 변수들이 만들어낸 간극이 정말 어마어마하더군요.
생각과 취향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다시 본제로 돌아가,
전 그래서 타인의 리뷰를 볼 때도, 제가 리뷰를 쓸 때도
이건 그 리뷰어 '개인의 생각'일 뿐이다-는 전제를 깝니다.
가까운 예로, 근래 개봉했다가 욕을 한바가지 먹은 드라큘라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제가 다니는 모 커뮤니티에서는 참으로 가열차게 까였고, 제가 나름 재미있게 봤다고 하니 노골적으로 비꼬면서 어떻게 그런 걸 재미있게 보냐고 까는 인간도 있더군요.
아무튼, 전 그 영화를 꽤 재미있게 봤습니다. 액션이 어설프고 CG가 별로이긴 했지만 설정이 제 취향이었거든요.
횡설수설이 되었는데...
근래 유료 연재를 하며 예전보다 좀 더 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다보니 새삼 다시 떠오른 잡상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덧1)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순 없다. 너무 욕심 부리지 말고 그냥 써라. 너랑 성향이 맞는 사람은 볼 것이고, 아닌 사람은 보지 않을 것이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다."
얼마 전 아버지께서 제게 해주신 말씀입니다. 당시에 글 때문에 정말 고민이 많았거든요.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고요.
맞는 말씀이신 것 같습니다. 생각과 성향이 서로 다른 '모두'를 만족시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죠.
덧2)
물론 모든 리뷰를 ‘이건 그 사람 생각일 뿐이니까’하고 무시하는 건 큰 실수죠.
한 명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건, 침묵하는 백 명이 비슷한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는 거니까요.
Comment '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