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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무언(先行無言)

작성자
Lv.7 웹진R
작성
14.12.02 15:28
조회
2,565

선행무언(先行無言)

무협, 퓨전 선행무언(先行無言) 자견(自遣)

“흠, 역시 그렇군.”
등하군이 스물이 되었지만, 하늘과 땅에서 아무런 징조가 나타나지 않았다.
조금 실망한 감도 있었지만, 한구석에 안도하는 마음도 있었는데 그가 전설 속의 천살성이니 혈마성 따위가 아니었다는 것이 공식적으로 밝혀진 것이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밤하늘에 별들이 나란히 늘어서며 흉흉한 기운으로 가득하더라도, 아니면 장강의 고아한 물결이 순간 시뻘건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더라도 그가 크게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고개를 끄덕이며 역시 그렇구나 하고 중얼거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렇다는 것은 그가 자신의 인생계획에 대해 크게 손댈 필요가 없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만약 천살성이나 혈마성으로 판명되었다면 그에 걸맞게 살아가야 했으니 당장 집을 불태우고 가족과 식솔들을 죽여야 하지 않았을까.

헛된 망상에 절로 쓴웃음이 지어졌다.
그런 저주를 타고 난 자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알 턱이 없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천살성과 혈마성을 타고 난 것처럼 굴더니 금세 남의 이야기가 되어 버린 것이다.
어쨌든, 뭐를 타고났는지는 모르지만, 이야기책에 나올만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세상을 구할 필요도 없었고 멸망시킬 필요도 없었다.

"훗."
등하군의 입장에서는 재미있게 되어버렸다.

'천하의 으뜸은 불산의 등가장이니 그 이유는 그들이 남들은 하지 못하는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1. 한줄평

   등가의 표행은 백 마디의 말보다 하나의 행동으로 보여준다!


2. 간략 줄거리
   나라가 어려워 거지들의 수가 늘어나 개방이 팔대문파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고, 무력을 겸비한 자가 재력 역시 갖추게 되니 상인들도 싸움 실력으로 거래를 결정하고 무공을 자랑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른바 고수들이 넘쳐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런 혼란스러운 시기에 등하군이라는 이름의 한 사내가 있었으니, 그는 스스로가 하늘의 실수로 이 땅에 내려온 신장이거나 부처가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했을 정도로 엄청난 힘을 타고난 이였다.
   등하군이 스무 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가 등가의 가주가 되어 가문을 이끌게 된다. 광동 불산의 등가장은 상업을 가업으로 삼는 가문이었으나, 자신에게 상인의 기질은 없다고 판단한 등하군은 가업을 정리하고, 새로이 표국을 연다.
   허나 그것은 여타의 평범하고 흔한 표국과는 달랐으니!
   등가의 표행은 백 마디의 말보다 하나의 행동으로 보여준다는 뜻의 등가선행!
   ‘귀하고 특이한 것만을 전문적으로 안전하게 이송하는 것은 물론 값만 맞으면 직접 구해 전한다.’
   등하군과 그의 오랜 친우 아칠. 등가선행을 통해 강호 곳곳을 누비며 두 사람이 겪는 대활극!


3. 캐릭터
   등하군 : 20세, 남자. ‘어렵고 무섭고 대단한 사람.’ 지나치게 과묵한 남자. 무척이나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전부는 지켜줘야 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 혹은 죽여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으로 구분된다는 사고를 지녔다. 웃는 모습이 흡사 마인과 같아 설사 고수가 그 미소를 보게 될지라도 겁을 먹으며, 자신도 모르게 그를 향해 무기를 들게 만든다.
   장아칠 : 21세, 남자. 입에 꿀을 발라놓은 듯 유려한 말솜씨가 일품이다. 등하군을 키워준 유모의 자식으로 평생을 등하군과 함께 했기에 이제는 눈만 마주쳐도 생각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를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며, 어쩌면 등하군이 아직까지 인간의 마음을 잃지 않는 유일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등하군이 가르쳐 준 무공을 연마해 신법의 달인이 되었다. 등가의 총관이며, 등하군과 함께 등가선행에 나서게 된다.


4. 뷰 포인트

   먼지만큼 가볍기 그지없는 소설은 이제 질렸는가? 뻔하고 뻔한 스토리에 신물이 나는가?
   단지 킬링타임용이 아닌 진짜 이야기를 읽고자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꼭 일독을 권하고 싶은 사골 같은 소설이 바로 ‘선행무언’이다. 그만큼 진국이라는 말이다.
‘선행무언’은 사상누각(沙上樓閣)이 아니다. 빈틈없이 촘촘히 엮인 탄탄한 구성은 작가의 내공이 얼마나 깊은지, 또한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열심히 구상하였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여러 소설들을 읽다보면, 설사 프로라고 할지라도 가끔씩 작가들이 본인들의 작품에 넘치는 애정을 쏟아붓다가 특정부분에서 설명이 과해지는 경우를 목도하기도 하는데, ‘선행무언’에서는 그러한 것들을 일절 찾아 볼 수 없다.
   작가는 사족을 달지 않는다.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괜한 쓸데없는 욕심은 내비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전부 글로 표현하여 전하고 있다. 비울 것은 완전히 비움으로써 전체를 완벽히 채우는 것이다. 이 사람은 그런 능력을 가진 작가다.
   한데, 그 때문에 드러나는 아쉬운 점도 분명히 있다. 워낙 사족을 달지 않다 보니 이야기의 초반부는 각 회마다 퍼즐의 한 조각씩만을 툭 던져놓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부족한 퍼즐로는 전체 그림을 한 번에 다 그리며 이해할 수가 없으니 어떻게 보면 불친절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분명 작가는 초반부터 꽤 많은 패들을 숨기고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면, 작중에 주인공은 주변인들로부터 ‘어렵고 무섭고 대단한 사람’이라는 평을 듣는다. 뿐만 아니라 글 전체에서 그가 강한 사내라는 분위기를 잔뜩 조성하고 있으니 분명 틀림없이 강한 것 같긴 한데, 그것만으로는 그렇게까지 부각시켜 놓은 설정들을 다 설명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작가는 여기서 ‘왜’라는 패를 감추고 있다. 그의 힘의 내력이 무엇에서 기원한 것인지, 그가 왜 강한 것인지 궁금하겠지만 부족한 퍼즐 조각들은 회차가 거듭될수록 저절로 모아진다. 퍼즐 조각들을 어느 정도 모아 맞추고 대략적인 윤곽을 잡아나갈 수 있는 부분은 1권이 아니라 2권이 되어서야 만날 수 있다. 아쉽지만 이는 작가가 큰 그림을 그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그 길을 따라가는 동행은 지루하지 않다.
   이야기는 물이 흐르듯이 흐르고, 노랫가락을 듣는 것만 같은 흥이 난다. 꼭 필요한 단어들만을 배치하여 써낸 깔끔한 문장들은 기분 좋을 만큼 높은 가독성을 준다. 
   매력 넘치고 개성 뚜렷한 캐릭터들은 또한 어떠한가. 완전히 상반되는 인격을 지닌 두 남자가 만들어 내는 케미는 진심으로 예술이다. 엄지를 치켜들고 싶을 만큼.


5. 어떤 사람이 읽으면 좋을까?
   ● 구성이 탄탄한 이야기를 읽고 싶으신 분
   ● 눈앞에 그려지고 펼쳐지는 역동적이며 생생한 이야기를 읽고 싶으신 분
   ● 먼치킨류가 불편한 분들에게는 비추




글: Wasabi.L.C (웹진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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