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나이 10살. 초등학교 4학년 나이에 동네 서점에서 기이한 책 18권을 발견했다. 그 당시로서는 꽤나 두꺼운 책이었으며 그 분량 또한 막대했다. 풍채 좋은 수염기른 중년의 사내가 턱 하니 표지에 그려져 있는 이 기이한 책을 나는 주저없이 사버렸다. 그땐 왜 그랬는지도 모른다.
무협소설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던 나에게 이 영웅문1부는 삼국지와 수호지 다음가는 역사소설(?)이 되어버렸다. 그도 그럴것이, 처음에 송나라 황제 얘기가 나오면서 1부 1권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징기스칸이 등장, 나는 이 소설이 "아하~ 몽고의 역사소설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얼마가 지난 다음에서야 이 영웅문이라는 소설이 '무협소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때가 되었을 즈음 나는 영웅문 3부작을 다 읽고 난 뒤였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흘러 어느덧 내가 무협소설을 읽은지 11년이 되었다.
그 시간 동안 참 적지 않은 소설들을 섭렵했고, 나름대로 무협에 나쁘지 않은 가치관이 정립되었다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재미있는 이야기지만, 요즘 나오는 신무협의 몇몇가지 특성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영웅문과 흡사한 점이 많다.
소위 말하는 신무협이 무려 30년여년의 세월 전에 쓰여진 영웅문과 비슷한 점이 많다니...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까?
내가 신무협의 몇몇 특성과 영웅문이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크게 세가지 이다.
첫째, 주인공은 평범하다(?)
1부의 주인공인 곽정은 인물이 뛰어나지 못하다. 그저 남자답게 생겼을 뿐이다. 게다가 무공에 있어서 절대적인 기재나 무골이 아니다. 오히려 수준 이하의 이해력으로 강남칠괴는 대사막에서 곽정에게 무공을 가르치며 매일을 한숨으로 지내야 했다.
2부의 주인공인 양과는 인물은 제법 뛰어나나 그 또한 책 어디에도 기재에 무골이란 말이 없다. 양과 또한 어린 시절을 불우하게 지내고, 무공에 늦게 입문해 열심히 배우고 또 배웠을 따름이다.
3부의 주인공인 장무기는 아버지가 무당 장문인 장삼봉의 7제자중에 5번째로, 어렸을 때부터 무당의 심법을 배워 곽정이나 양과보다 그 기초가 튼튼하다. 하지만 그 뿐이다. 그는 어렸을 적에 원나라 황실에서 초빙된 고수에게 음한 기운의 장력을 맞은 뒤, 그 음한 기운 때문에 유년시절을 매일을 아파하며 지내야 했다.
보통의 무협소설에서는 나중에 그 음한 기운이 해독되면서 주인공의 신체 어떠한 도움이라도 주어야 얘기가 풀릴텐데 이 소설에서는 그런 점을 찾기가 어렵다.
장무기는 비단 똑똑하지도 않거니와, 그리 잘생기지도 못했으며, 또 성격이 우유부단하여 여러 여자 사이에서 갈등하고 방황한다. 결국 책의 결말에는 그 어떤 여인과도 끝을 맺질 못했다.(조민과 해피엔딩을 암시하는 장면은 보였지만...)
둘째, 기연은 없다(?)
나중에 여러 한국 무협을 섭렵한 다음, 영웅문을 다시 읽었을때, 1부에서 나는 강한 충격을 받았다. 세상에, 이런 무협에 이런 주인공이 다시 어디있을까? 곽정은 결코 똑똑하거나 무공에 배우기 적합한 무골이 아니었다. 예전의 한국 구무협소설 같으면 어떠한 기연을 주고서라도 되도록이면 곽정을 똑똑하고 기재에 무골로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곽정에게는 그 어떠한 기연도 보이질 않는다. 그는 그저 세월 가는데로 열심히 무공에 정진할 뿐이다.
그나마 기연 축에 끼는 것이 도화도에서 노완동과의 만남이다. 그는 노완동과의 만남으로 인해 자신의 무공을 한두 수준 더 위로 진일보 시킨다. 그리고 여기서 모든 무림인들이 희망해 마지않는 구음진경을 배운다.
양과 또한 마찬가지이다.
아주 어린 시절 양부인 구양봉에게 무적의 장법 합마공을 배우나, 어린 시절 배운것이라서 그런지 성장하고서는 더이상 쓰지 않는다(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굉장히 아쉽다) 아내이자 스승인 소용녀에게 무공을 배우는데, 그저 열심히 무공에 매진할 뿐이다. 또 양과는 어렸을 적부터 꾀가 많고 요령이 많아, 무공을 배우는데 있어 그리 열심이 아니었다. 그리고 책의 내용 전개 내내 양과의 무공은 일류 고수의 수준이 아니었다. 그는 무공보다는 그 자신의 지혜과 재치로 일을 풀어나갔다.
더구나 곽부에게 한팔을 잃어 삽시간에 외팔이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김용은 여기서 한팔을 잃은 양과에게 무엇인가 보상을 해주기로 마음을 먹었나 보다. 바로 독고구검의 무공을 양과가 얻는다. 이것이 과연 기연인지 아닌지... 사실 엄밀히 따진다면 기연의 축에는 들지만, 그 전에 양과가 겪은 고초가 너무 컸기에 이정도를 과연 기연이라고 할수 있는건지...
3부작의 주인공들중, 그나마 제대로 된 기연(?) 이라고 말할수 있는게, 바로 장무기가 아닐까? 장무기는 자신의 백부인 금모사왕 사손의 그림자로 인해 어린시절부터 곤경에 자주 빠진다. 자신의 부모 또한 그랬으며 그 자신 또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는다.
자신에게 호의를 가장한 주장령으로부터 배신 당한후 그는 으레 그렇듯, 절벽에서 떨어지지만 절벽 중간 동굴속에서 그는 기연을 얻는다. 바로 자신의 음한 기운을 몰아낼수 있는 동시에 당대 최대의 내공 심법인 구양시공을 얻은 것이다. 원숭이의 뱃가죽 속에 진경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 꽤나 흥미로운 사실이다.
셋째, 일편단심 민들레...
곽정은 오로지 황용만을 바라본다. 그에게는 적지 않은 여인이 있었다. 기억이 자세히 나진 않지만, 대표적으로 화쟁공주가 있었다. 화쟁공주는 대륙의 영웅 징기스칸의 딸로 어렷을 때부터 곽정과 혼인을 약속했다. 그래서 곽정은 항상 '금도부마' 라고 불리운다.
곽정은 화쟁과 툴루이가 자신을 찾아와 황용과 황도주가 보는 앞에서 화살을 꺾으면서 자신의 신의를 알렸고, 그 상처로 황용은 곽정의 곁을 떠난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이부분을 읽으면서 참 마음이 아파왔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의 인연은 꽤나 길고 질겨 결국 둘은 깊은 사랑으로 맺어지고, 화쟁은 쓸쓸하게 그의 곁을 떠난다...
또 전진칠자의 셋째인(이름이 기억나질 않네그려...)여자 도사의 제자도 있고, 양과의 친모가 되는 여인도 있었다.
양과의 인연은 더욱더 파란만장하다.
소용녀가 욕을 당한후, 오해하고 떠난 후 양과는 괴로움에 휩쌓이다가 강호로 출도한다. 그곳에서 그는 육무쌍을 만나고, 그녀의 웃음짓는 매무새가 소용녀와 닮았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그는 그녀의 위험 천만한 상황속에서 그녀를 돕는다. 그리고 금나라의 후손인 공주 완안평 또한 그를 사랑한다. 또 야율제의 동생인 야율...(크윽! 또 생각이 안나다니..) 또한 그를 마음속에 연모한다.
그리고 가장 애처로운 것은 공손녹악...
이 여인은 그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많은 영웅문의 팬으로부터 소용녀 못지 않은 사랑을 받는 여인이다. 결국 사랑하는 님을 위해 아낌없이 목숨을 던지는 그녀의 죽음은 무씨 형제에게 시집간 완안평과 야율... 에 비해 훨씬 값져 보인다.
그리고 육무쌍의 의누나이자 황약사의 제자인 정영 또한 마음속으로 양과를 사모한다. 결국 육무쌍과 정영은 십몇년의 세월을 양과만을 기다리면서 산다.
아아~ 실로 여복이 철철 넘쳐 흐르는 양과가 아닐까!
마지막으로 장무기의 여인들은 모두 굵직굵직한 주연급의 여인들이다. 처음에는 적대적인 관계였으나 끝내 그를 사랑하고 끝끝내 그와 맺어지는 조민. 어렸을 적 장무기에게 밥을 떠 먹여준 인연으로 그와 결혼식 까지 올리게 되는 주지약. 장무기에게 무적의 무공 건곤대나이를 익히게 도움을 준 소소. 그녀의 외사촌 동생이자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이 가득한 은...(아! 또 이름이 생각 나질 않는구나...이 한심한 기억력이여...)
곽정이나 양과에 비해 유난히 그 성격이 우유부단한 장무기는 처음에는 자신의 외사촌 동생인지도 모르는 여인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또 소소와 헤어질때는 소소를 끌어안고 입맞춤을 하며 순간의 욕정에 대사를 그르칠뻔하고, 주지약과는 결혼식 까지 올리고 맹세의 맞절을 할 순간에 조민을 따라가서, 주지약의 가슴에 일생일대의 한을 심어준다.
허허~
실로 무협의 모든것을 담고 있는 영웅문이여...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흘러도 무협으로서의 그 가치는 영원히 빛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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