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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위한 찬가 읽기

작성자
Lv.16 Zinn
작성
07.06.16 23:34
조회
1,531

작가명 : 카이첼

작품명 : 희망을 위한 찬가

출판사 :

희망을 위한 찬가를 읽으며 언제나 리플만 달고 사라져서 내심 항상 카이첼님께 죄송했었습니다. 사실, 감상문을 쓰려고 했습니다만, 처음에는 아직 정확히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지 잘 파악하지 못했고, 이것저것 일이 겹치다보니 연재가 상당히 진행된 오늘에 와서야 미약한 감상문이라도 적게 되었네요. 여튼,  거두절미하고 시작하겠습니다.

1. 아담의 언어와 타자화의 역사

태초에 아담의 언어가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이 아담의 언어는 거울과도 같았습니다. 기표(시니피에)와 기의(시니피앙)의 완전한 일치, 누구나 자신이 발화하고자 하는 것을 한 점의 왜곡 없이 발화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국어도, 일본어도, 영어도, 중국어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존재하였던 것은 온 인류의 언어였던 '아담의 언어'이었을 뿐. 그리하여 인간은 오롯한 소통을 이루어낼 수 있었습니다. 소통의 과정에서 배제되는 자는 존재하지 않았고, 그러므로 타자(他者)역시 존재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인간은 신에 이르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의 이성으로 바벨탑을 쌓고 신의 신성성마저 손에 넣고자 하였지요. 결국, 신은 진노해 인간에게서 아담의 언어를 앗아가버렸습니다. 이제 하나의 언어, 태초의 언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들은 각기 다른 언어를 구사하게 되었고, 의사소통에서 발생하는 불모성은 대립과 투쟁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대립과 투쟁의 결과로 바벨탑 역시 허물어지고 맙니다. 인간은 말이 통하지 않는 타자와 떨어져서 자신의 사회, 자신의 국가를 성립하게 되는 것이죠. 이제 타자의 시대가 시작되게 됩니다. 강자는 약자를 힘으로 강제하여 타자, 즉 노예로 만들어버리고 자신은 주인이 되어 그들을 부리게 되지요.

그리고 이 타자적인 세계는 지금까지 이어져오게 됩니다. 고대의 노예제를 거쳐서, 중세의 봉건제를 거쳐서, 근대의 독점 자본주의를 거쳐서 오늘날의 혼합 자본주의로 말이죠. 노예제에서는 노예가 군장에게 귀속되었으며, 봉건제에서는 농노가 영주에게 귀속되었습니다. 그리고 독점 자본주의에서는 무산계급이 유산계급에게 귀속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날에는 상식 · 미디어와 함께 하는 거대한 자본에 대중이 귀속되고 있습니다.

희망을 위한 찬가는 이런 기반 위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종결되지 않은 타자화의 역사와 그것이 한층 더 첨예화되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 인간적인 모든 희망을 불식시키는 이 모든 것들 위에서요.

2. 인간: 타자적인, 지극히 타자적인

변신시대란 챕터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카프카의「변신」이 등장합니다. 그레고리 잠자, 그는 성실한 회사원이었으나, 어느날 기괴한 벌레로 변신하고, 방안에 갇혀 살다가, 가족들에게 버림받고, 고독 속에서 자살하게 되지요. 이 기묘한 이야기는 언뜻 보면 단순한 환상의 비극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비극은 지극히 현실적인 것입니다.

인간은 관계의 동물이라고 합니다. 즉, 인간은 관계 속에서 성립하는 존재라는 것이죠. 사람을 뜻하는 人이라는 한자어도 두 사람이 서로를 지지하고 있는 모양의 상형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타인과, 그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정체감과 자아상을 발견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상호성의 문제가 그렇고, 설득의 문제가 그렇습니다. 결국 타인을 어떻게 인지하느냐, 타자를 어떻게 규정하느냐가 우리의 정체감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몇몇 사회심리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인간은 타인을 인지하는 과정에서 타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어떤 '패턴(틀)'을 발견해내려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성질 급한 사람이라고 인지할 경우 그 사람이 그의 일상 생활 전반에서 '성질 급할' 것이라고 기대하지요. 그리고 그 기대가 맞지 않으면 자신의 기대(인지)와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불쾌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네, 우리는 타인을 어떤 게슈탈트(형)에 의거해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은결에게 세연을 이루는 게슈탈트는 '소극성'이었습니다. 은결은 소극적인 성격으로 세연을 재단했고, 결국 자신이 그토록이나 증오하던 타자화를 이룩하게 됩니다. 세연은 적극적이기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은결의 게슈탈트를 깨부수기 위해 발걸음을 내딛었으니까요. 작중 언급된 폴 발레리의 구절도 동일합니다. 사르트르의「존재와 무」가 20세기 철학사의 빼놓을 수 없는 지침이 되었듯이, 오해석도 참된 해석이 될 수 있습니다. 타인에게 자신의 기대를 강요하는 것은, 어떤 주관적인 게슈탈트를 형성하는 것은 타인의 가능성을 멸각하고 그를 타자로 만들 뿐이기에, 그리고 그에게 암묵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기에 배제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주관적인 기대, 즉 게슈탈트는 사회에 의해 강요되기도 합니다. 변신시대에 등장하는 회사원의 사념체와 변신에 등장하는 그레고리 잠자. 그들은 모두 사회의 낙오자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가치를 '생산해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희망을 위한 찬가에서는 자본주의의 타자성이 중점적으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수행의 칼럼에서도 그렇고, 은결의 생각에서도 그렇고, 직간접적으로 자본주의가 가져다주는 타자화의 폭력성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최소비용으로 최대효율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생산과정에 투입되는 생산요소(자본, 토지, 노동)가 물화(物化)되어야 합니다. 포디즘적인 생산양식에서 드러나듯이,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에서 조명되듯이, 인간은 단순한 생산 체계의 부속품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인성은 도덕적인 자질과 결부되지만, 타인과의 참된 소통과 결부되지만 '비효율적'입니다. 현장 감독이 힘들어하는 노동자를 전부 다독여주고 휴식시킨다면 생산은 급감하고, 기업은 자유 경쟁 시장에서 도태되고 말 테니까요.

인간은 몰인간화(dehumanization)되고 심지어는 외부 환경마저 구획되고 맙니다. 개발되지 않는 그린 벨트 지역의 토지는 사람들에게 별 관심을 받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이윤'이 되는 개발 지역의 토지일 뿐이니까요. 사람들은 지극히 자연적인 토지에서 '경제성'을 기대하고, 그런 게슈탈트에 기대어 자연을 자원과 비자원의 이원구조로 구획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변신의 비극은 현실적입니다. 타인에게서 경제적인 효율성을 기대하는 개인들의 기대는 자본주의 시대가 현 시대의 시대의식으로서 강요한 것이니까요. 실업자는, 경제적 무능력자는 아웃사이더로, 잉여인간으로 타자화되는 냉혹한 사회. 그리고 부자와 그의 부가 숭상되는 물신주의적인 사회. 20퍼센트의 인구가 전 세계의 80퍼센트의 부를 독차지하는 20대 80의 사회. 이 사회가 오늘날 우리들이 영위하고 있는 '거룩한' 토양이며, 타자화의 산 증인입니다.

3. 손: 타자화를 넘어서

하지만 인간의 희망을 위한 찬가는, 타자화를 넘어설 인간의 여명은 존재할 것입니다.

손, Hands, 手, て.

예, 그것은 수행이, 그리고 은결이 숭고함을 담아 입에 올렸던 '손'이라는 신체 기관입니다. 작중에서 은결과 수행이 나누는 대화는 이런 화두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새는 날개를 통해 하늘을 날 수 있고, 치타는 탄력적인 다리로 밀림을 활보할 수 있지만, 그들은 결국 날개와 다리로 상징되는 신체 기관의 운동에 의해 규정되고 맙니다. 새와 치타는 그들의 신체 기관에 의해 노예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손이 존재합니다. 인간은 손을 통해 자신의 이성을 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는 손의 활동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인간은 자신의 주체적인 이성으로 손을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날개는 날기 위한 목적으로만 존재합니다. 하지만 손은 모든 목적을 위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손을 통해 글을 쓸 수도 있고 공구를 만들 수도 있으며 팔을 긁을 수도 있으며 돌을 조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노동의 과정에서 진정으로 본질적인 것은 노동 주체 자신의 이성과 의지일 뿐이지 타인의 기대도, 그리고 타자의 규정도 아닙니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 자기 자신의 오롯한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손에 의한 노동은 개인의 실존과 연관됩니다. 헤겔과 맑스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그리고 수행의 이름의 유래인 김수행 교수. 우리는 손을 통해서 자신의 진정한 주체성을, 그리고 타자에 기대지 않고, 타자를 억압하지 않고 타자를 넘어설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희망을 위한 찬가가 아닐까합니다. 희망을 찬양하는 노래, 타자화를 넘어서는 숭고한 손과 그것의 노동, 인간적인, 지극히 인간적인 근원을 우리는 마침내 마주한 것입니다.

4. 맺으며

많이 모자라고 비약도 많은 감상문이지만 멈추지 않고 읽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카이첼님께는 발레리를 생각하시면서 너그럽게 보아넘겨주셨으면 하고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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