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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ersonacon 만능개미
작성
15.06.28 18:03
조회
4,327

제목 : 기상곡

작가 : 취룡

출판사 : 문피아 E북 완결


(편의상 비어를 사용하겠습니다.)


 사실 기상곡 자체는 이미 완독을 한지 오래된 작품이다. 필자 본인이 글 쓰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요즘, 게다가 아직까지도 흐름을 타고 우후죽순으로 나오는 현대물+게임 요소에 싫증을 느끼다보니 자연스럽게 이 소설이 떠오르게 됐고 그것이 이번 감상글을 쓰게 된 계기로까지 이어졌다.


 총 5권 분량의 기상곡은 취룡 작가의 연대기 시리즈 중 한 작품이다. 취룡 작가는 연대기 시리즈를 각각의 독립된 작품으로서 읽어도 문제 없이 재미를 느낄 수 있게끔 쓴다고 말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 작품을 제외하면 서로 적잖게 영향을 주는 연대기 시리즈의 특성이 가장 적게 반영된 작품이 이 기상곡이 아닐까 한다.  

(쓸데없이 말이 길어졌지만, 쉽게 말해서 다른 시리즈를 읽지 않고도 충분한 재미를 보장한다는 의미이다.)


우선은 기상곡의 소개글을 가져와서 설명하겠다.


『103년 전.
하얀 마녀 오즈의 마법사, 양철 나무꾼을 만들다.

100년 전.
세계 최강의 검호 장화 신은 고양이, 주인을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나 오즈의 마법사를 비롯한 동료들과 함께 깊은 숲의 마왕을 무찌르다.

79년 전.
세기의 천재 닥터 제페트 태어나다.

54년 전.
닥터 제페트, 강력한 힘을 지닌 살인 인형들- '최초의 십인'을 만들다.

12년 전.
최후 최강의 살인 인형 피노키오, 신과 같은 자였던 닥터 제페트의 죽음을 선포하다.
세상에 '유산'의 존재가 알려지다.

10년 전.
힐데아 마을이 사라지다.

하얀 마녀와 장화신은 고양이를 찾아 떠나는 칠색의 마녀 도로시와 스케어의 여행.
시작합니다.』


 소설 전체적으론 흔히 볼 수 있는 마왕을 물리치는 용사 이야기지만, 그 흔하디 흔한 클리셰의 용사물을 이렇게까지 배배꼬아낸 상상력은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다. 적절하게 자리 잡은 복선들은 타이밍 맞게 모습을 드러내 빵빵 터져준다. 그것은 글 초반부에서부터 단순한 개그요소로 생각된 장치들이 후반부에서 맹활약하는 것으로도 잘 나타난다.


 다시 줄거리로, 이번엔 좀 더 자세히 들어가보자.


100년 전, 세계를 지배하려고 한 깊은 숲의 마왕을 무찌르기 위해 다섯 용사가 모였다.


리더인 세계 최강의 검호 ‘장화 신은 고양이’

오즈의 마법사이자, 세계 최고의 마법사인 ‘하얀 마녀’

하얀 마녀가 만들어낸 자동인형 ‘양철 나무꾼, 스틸’

그 외의 두 명.

(나머지 두 명은 글의 재미를 반감시킬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여기서 밝히진 않겠다. 사실 글을 읽으며 저 두 명은 과연 어느 동화에서 모티브가 된 캐릭터일까, 어떤 힘을 가졌을까 상상하는 것도 쏠쏠한 재미였다.)


 용사들의 항전으로 마왕을 물리치고 세계엔 평화가 찾아왔다. 그리고 수년 뒤, 세상엔 세기의 천재, ‘닥터 제페트’란 인물이 그가 만든 살인인형 ‘제페트 넘버’들과 함께 등장한다. 단 10기의 제페트 넘버만으로 전쟁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준 닥터 제페트는 다시 종적을 감췄고, 시간이 지난 뒤 나타난 ‘피노키오’는 닥터 제페트의 죽음을 알린다.


 닥터 제페트가 만든 살인인형들은 Z001~Z999까지의 제페트 넘버를 가진다. 살인인형중에서도 최후최강이라 불리는 Z999 피노키오는 나머지 제페트 넘버들이 세계 곳곳에 흩어졌다고 선언했고, 사람들은 주인 없는 제페트 넘버를 차지하기 위해 안간 힘을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깊은 숲의 마왕이 용사들에게 쓰러진 뒤로 100년이 지난 시대,


 칠색의 마녀 ‘도로시’는 10년 전에 그녀의 마을 힐데아를 불태운 하얀 마녀에게 복수하기 위해, Z000이란 존재할 수 없는 제페트 넘버를 가진 허수아비 ‘스케어’는 자신이 정말로 제페트 넘버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한(을 빙자한 도로시에게 달라붙기) 여행을 한다.


 소개글에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이 글은 동화를 비롯한 다양한 요소가 적절하게 녹아들어 있다. 각종 패러디들이 소설 내에선 시리어스한 고유명사로 받아들여져 자연스럽게 웃음을 유도한다.

(가령 모든 커플, 심지어 총과 총알같은 비생명체마저 일단 짝이 됐다하면 모조리 찢어버리는 마법 유파 ‘커플 브레이커’같은 깨알 요소가 곳곳에 등장한다.)


 문체는 굉장히 가볍다. 막힐 구석 없이 술술 읽히면서도 유쾌한 분위기는 암중의 진실이 밝혀지며 다소 딱딱해질 수 있는 상황마저 부드럽게 풀어준다. 단문적인 묘사들은 스피디하면서 힘 있는 임팩트를 주는데, 전개 장치가 한 곳에 딱 맞물린 순간 터진 극적인 묘사들은 몇 번씩이나 소름이 돋게 했다.

 이런 특성들이 있기 때문에 종종 나오는 오글거리는 대사들마저 큰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글에 몰입했던 필자의 느낌으로 말하자면 정말로 한 편의 동화를, 그리고 그 동화 속의 그려진 듯한 용사를 보는 기분이라 손발이 말려드는 장면들마저 오와앙~ 멋져! 하면서 봤던 것 같다. 유치한 장면들이 당연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허용됐다고 할까? (물론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호불호가 갈리긴 한다.)


 반복되는 마왕과 용사의 싸움. 여타 소설이라면 주인공들이 얼떨결에 그 싸움에 휘말린 듯 표현될 테지만, 말했다시피 기상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잘 짜여진 각본처럼 이야기가 전개된다. 운명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이 실은 누군가에 의해 안배되었단 사실, 그런 진실들이 드러나기까지의 개연성과 타이밍은 전혀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캐릭터들도 어느 하나 묻히는 기색없이 적절한 비중을 가지고 균형을 이룬다. 주요 인물들 중에서 매력 없는 캐릭터가 없을 정도다.

 절정의 호구 용사 ‘장화 신은 고양이’마저 필요한 순간엔 더할 나위 없는 간지를 뽐내주었고, 비호감이 극에 다를 정도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피리 부는 사나이’의 때맞춘 등장이 그렇게 반갑기도 했다. 거대한 빙산처럼 차갑고 고고한 키네네의 거울이 수줍게 비녀를 꽂는 모습은 또 어찌나 사랑스러운가?


 5권의 글 전체를 통틀었을 때, 필자는 글 요소중 어느 하나 불필요한 부분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나하나가 글의 완성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었고, 일상적인 흐름마저 원인이 되어 결과를 낳았다.

 마냥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끝내 밝혀진 도로시의 정체라든지, 하얀 마녀를 찾기 위한 여행이 초반엔 상상도 못한 스케일로 커진 점이라든지. 마치 드래곤볼을 찾아나선 손오공의 모험이 어느새 지구의 미래를 건 난장판 싸움이 되는 걸 본 기분이 들었달까?

 물론 애초에 기상곡의 모든 것이 작가에 의해 의도된 만큼 결코 적절한 비유는 아니지만, 필자 개인적으론 글 초반부의 장난스럽고 유쾌한 분위기가 다소 변질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기존의 소설. 뻔한 클리셰에 질린 사람들에게 오랜만에 용사다운 용사, 그것도 지루하지 않으면서 맛깔나게 재해석한 소설 ‘기상곡’을 추천하며, 지금까지도 쉽게 잊혀지지 않는 일부 장면으로 마무리 하겠다.




“그럼 자기 소개를 하지. 나는 스케어다. 지극히 평범한 여행가지.

----------------------

 Z417은 카타리나를 아무렇게나 집어던졌다. 주인인 카멜의 안전을 최우선하기 위해 몸을 앞으로 날렸다. 도로시가 내 쏜 탄환을 몸으로 막으며 도약했다. 단숨에 계단을 뛰어넘으며 오른손에 쥔 랜스를 당겼다.

 스케어는 그것을 보았다.


“지금부터 나는 비범한 여행자.


 스케어는 오른 주먹을 당겼다. 불길에 그슬려 엉망이 된 셔츠 자락이 벌어지며 가슴이 드러났다.

사람의 가슴. 그리고 그 위에 양각된 금색의 문자.


Z000

--------------------------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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